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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Apr 29. 2024

청양 (아젤리아)

청양꽃나무 이야기


새하얀 꽃이 탐스럽게 핀 작은 나무

청양을 만난 날은 첫아이를 낳고 사흘 만에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첫날이었다.

남편은 첫 아이가 태어난 기쁨을 뭔가 뜻깊은 표현으로 하고 싶었다고 했다.

식물을 잔뜩 키우는 이상한 새댁이었던 나의 취미생활에 물들고 있던 것일까?

식물 키우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스스로 식물에 의미를 두고 샀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남편이 식물 화분을 산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나는 꽃다발보다 더 좋았고, 기뻤다.


청양의 그 흰빛은 진주빛 같기도 했고, 금방 내려앉아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눈 같기도 했다.

‘뭐가 묻은 건가?’

흰꽃잎을 문질러 보니 거슬리지 않는 연핑크색의 줄무늬가 한 줄 있었다.

아이와 함께 키워지고, 봄빛처럼 화사하게 백일을 지나고 돌을 지나며 함께 살았다.

아이의 생일이면 어김없이 꽃을 피웠다.

꼭 첫아이와 같았다.


철쭉일까?

정보의 바다가 없던 시절이므로 화원에 가거나 꽃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만나면 물었다.

엄마도 모르셨던걸 보면 개량종 서양 철쭉이 흔치 않았던 것 같다.

아주 나중에 외국에 살던 사촌언니가 보더니 아젤리아 같다고 했다.

여기저기 이름을 찾다가 나는 “청양꽃나무”인 것으로 이름을 정착했고,

남편은 “흰꽃”이라고 했다.

엄마는 아이의 이름을 붙여 “ㅇㅇ이 나무”라고 불렀다.


외국 살이 동안 손주를 보듯이 친정엄마는 정성껏 청양을 돌봐주셨다.

돌아와서도 계속 청양은 내게서 보다 더 오랜 시간을 외할머니 손에서 크며 쑥쑥 싱싱하게 자랐다.

매년 아이 생일 즈음이면 탐스러운 꽃을 보여주어 엄마를 기쁘게 했었다.

치매의 엄마는 날짜를 기억 못 했지만 꽃이 피면

“ㅇㅇ이 생일이구나”  그렇게 인지하셨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후에야 청양은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청양은 3년 동안 꽃을 피우지 않았었다.

환경이 바뀌고, 내 손에 의한 보살핌이 많이 달랐으니 적응기간이었겠지만 나는 의미를 두었다.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는구나’

청양에게 내 마음이 이입되었다.​


돌아온지 4년차에 청양꽃이 피었다

우리 집에 돌아온 지 4년 차에 청양꽃이 피었다.

하지만 청양은 해가 갈수록 꽃 수가 적어지고, 몇 개 안 되는 잎은 바싹 마르고 있었다.

급기야 화분엔 거미줄까지 쳐있었는데 그 와중에 꽃망울을 만들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마지막을 향하는 몸짓으로 보였다.

꽃망울이 아까우니 꽃을 피운 뒤 이듬해 봄에 분갈이를 하려 했으나 날이 갈수록 조급한 생각이 들었다.

특단의 조치..

큰 화분이 꽉 차는 좁은 다용도실 공간에서 작은 숟갈로 살살 흙을 퍼내고 얼마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살살 흔들어보니 쑥 빠진다.

뿌리 주변의 흙은 돌처럼 굳고 뿌리가 거의 없었다.

흙을 모두 털어내니 바싹 마른 뿌리가 뚝뚝 부러지고 살아있는 뿌리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아..”

사실 너무 늦었다는 걸 그 순간 알았다.

살 수 있는 희망이 반반의 확률이나 있을지 아니면 10퍼센트쯤 아니면 1퍼센트쯤을 기대해 보며 새흙을 작은 토분에 담아 정성껏 새집을 마련해 주었다.

20년을 넘게 산 청양은 식생 최대의 고비를 맞아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다.


난 식물의 생명력이 참 강하다고 믿는다.

뿌리 한줄기로도 살아나고, 가지 한 개로도 뿌리와 잎을 만들며 살아난다.

미련한 내 마음은 살아날 거란 믿음이 100퍼센트였다.

모든 일은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거니까..

“청양, 힘내라. 잘 살아보자!”

한편으론 보낼 때가 되면 질척거리지 말고 보내주자고 마음먹었다.


2023년 연말에 청양이 죽었다.

많은 식물이 죽어나갔지만 청양이 죽은 것은 정말 마음이 이상했다.

여러 날 동안 마음이 쓰이고 찜찜했다.

다짐도 소용없이 작은 가지 하나를 잡고 매달렸다. 쿨하지 못하고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매달리듯 대단히 질척거렸다.

청양을 보면 자식과 엄마가 동시에 생각나는 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간관계속의 미련은 부모 자식과의 관계가 이성을 잃을 정도로 가장 지독하다.

내 엄마가 그랬고, 내가 그런다.


우리의 청양은

티끌 하나 없는 흰 눈 같은 꽃잎에 연분홍의 점을 살짝 찍거나 가느다란 붓에 연분홍의 물감을 묻혀 힘을 빼며 획을 그은 듯했다.


청양꽃이 없는 허전한 아이 생일이 지나갔다. 꼭 다시 사고 싶어 화원을 돌아다녀도 맘에 드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성묘길에 언제나 꽃다발을 사는 단골 꽃가게가 있다. 지난 3월 엄마의 제삿날..

7년 만에 처음으로 그 꽃가게의 문이 닫혀있었다. 닫힌 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오셨다.

“아이 참! 아주머니가 어디 가셨지? 어쩌지 “

어쩔 수 없이 유리창에 이라고 쓰여있는 바로 옆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꽃다발이 가격이 너무너무 비쌌다. 가만히 둘러보니 작은 화분들이 보였다.

그중에 발견된 청양!!

엄마에게 가져갈 분홍 데이지 화분 하나와 아기처럼 귀여운 청양을 샀다.

차에 타니 남편이 말한다.

“뭐야? 그 흰꽃을 또 샀어?”

이름을 알려줘도 남편은 여전히 흰꽃이라고 말했다.

청양은 아이가 생각나고, “ㅇㅇ이 꽃”이라고 말하던 엄마생각이 난다.

“청양이 없으니 너무 쓸쓸해 “


아마도 청양이 우리 집에 다시 오려고 하늘꽃집이 문을 닫았나 보다.

엄마의 꽃을 사러 갔다가 딱 맘에 드는 청양을 만나다니 혹시 엄마도 너무 아까워 나를 편의점으로 이끌었을까?

또 또 의미 부여한다.

엄마에겐 데이지를..
분홍색 선이 그어진 백설같은 흰빛의 청양 청양이 돌아왔다


* 식물 키우기에 대하여 *


 < 아젤리아 >

철쭉을 서양에서 개량하여 아젤리아가 되었고,

대표적으로 빨강(미션벨), 분홍(캘리포니아선셋), 흰색(청양)이 있다.


꽃 : 다년생으로 주로 겨울에 꽃핀다.

꽃말 : 사랑의 즐거움

물 주기 : 청양을 한번 죽여본 경험에 의하면 과습은 좋지 않다.



식생(植生)의 물 주기도

인생(人生)을 채우는 물 주기에도

과한 것은 부족함만 못하다





* 행복한 월요일이 시작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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