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늄의 그늘에 두다
엄마의 집을 정리하는 것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어 아주 어려웠다.
오래된 사은품으로 받은 바가지 하나 오이지 누름돌 하나도 얼마나 깨끗하고 정갈한지..
꽃들을 수정시킬 때 쓰던 베란다의 작은 그림물감용 붓의 손잡이도 금방 산 것처럼 반짝거렸다.
목욕탕까지도 매일 걸레질을 하던 분이셨으니 그럴만하다.
제일 먼저 가까운 가족들이 선택을 하고, 다음은 사촌언니의 교회에 필요한 분들께 드릴 물건을 정하고 마지막 정리를 했다.
그래도 물건들의 처분은 쉬운 편이었다.
살아있는 생명인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식물들이 엄마를 잃고 덩그러니 남았다.
내 머릿속엔 엄마의 베란다 정원이 큰 걱정이었다.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식물들이 있었다.
장례식을 다 치르고 정신없는 49제의 시간을 보낸 후 식물들이 눈에 들어왔을 땐 살아있는 식물들이 더 많이 줄어있었다.
남아있는 식물들의 살아내려는 생명의 의지에 놀라움을 느꼈다.
그러나 올확장형의 우리 집에 모두 가져올 수가 없으니 고민 중이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고인의 물건을 탐탁지않게 생각하기도 하는데 게다가 한동안 돌봄이 없어 볼품없어진 화분을 누가 좋다고 하겠나..
엄마의 첫 조카인 사촌언니가 “화분 몇 개 내가 가져가도 되니? 이모 본 듯이 키우고 싶어”
언니의 집으로 엄마가 정말 오랫동안 키웠던 오렌지꽃이 탐스러운 군자란과 우아함으로 최고인 관음죽을 실어다 주었다.
지금 그 나무들이 잘 지내는지를 확인할 필요는 없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엄마를 그리워하고 기억해 줄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다는 사실은 자꾸만 혼자가 되려던 마음에 큰 의지가 되었다.
열 살 차이가 나는 큰 언니의 그날의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고맙고,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나는 작은 화분 세 개를 가져왔다. 화분은 세 개였으나 식물은 네 종류였다.
아몬드페페와 흰꽃나도 샤프란
십이지권
대엽풍란
모두 이름을 몰랐고, 그렇게 예쁘지도 않았고, 단지 화분이 작아서였다. 순서는 이름을 알게 된 순이다.
십이지권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불과 1년도 안되었다.
이 다육과의 식물은 우리 집으로 온 지 올해로 7년 차에 들어간다. 이름은 그냥 다육이였다.
비누에게 “멍멍아~”
고양이에게 “나비야~”
하는 격이었으니 나는 참 너무했다.
우리 집으로 온 십이지권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의 십이지권은 깨끗한 하얀 줄무늬가 있는 연초록색의 모습에 귀여운 자구를 달고 있었다.
자구는 아주 작고, 연초록빛이 아주 예뻤다.
(자구 : 모체의 뿌리에서 싹이 돋아 새로운 개체로 자라는 것)
그대로 한 2년쯤 두니 자구가 모체만큼 너무 커져서 마음에 조급함이 들어 분리를 해야 했다.
나는 분갈이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모체와 자구를 무자비하게 뜯어낸 후 다른 식물이 죽어나간 화분에 심어주었다.
무식한 분갈이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구는 죽어버렸다. 다행히 모체는 죽지 않고 살고 있었다.
다육이는 선인장이고, 선인장은 본디 해가 쨍쨍한 사막에 사는 것이 아닌가?
잘해줄 마음으로 창가의 제일 앞자리에 위치시켜 사시사철 땡볕을 쬐게 하였다.
본체 십이지권은 점점 마르며 점점 갈색이 되고, 잿빛이 되어갔다.
죽지 않았고, 새로운 검은 잎을 하나씩 내밀고 있었다.
드디어 검색 시작!
검색을 하다가 이름도 알게 되었다.
다육이의 진짜 이름은 십이지권
작은데 뭔가 용맹해 보이는 이름이었다. ‘12개의 손가락 같다는 뜻인가? 한밤중에 혹시 무술을 하려나?’
아무튼 중요한 것은 십이지권은 직사광선을 보면 시커멓게 변하지만 죽는 건 아니라고 한다.
‘휴, 다행이다 ‘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엄마는 소파옆 작은 탁자에 십이지권을 두었었다.
그래서 예쁜 초록이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초록색의 십이지권이 보고 싶었다.
햇빛을 피해 무성하게 잎이 우거진 제라늄의 아래 간헐적으로 빛이 드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줬다.
한 달이 지나고 칙칙한 기운이 돌던 잎의 끝에서부터 살짝 초록의 기운이 느껴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금씩 초록이 돌아오고 있다.
신기하다..
봄쯤 되어 흰 줄무늬가 있는 예쁜 연초록의 십이지권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글의 초안은 12월에 작성되었다)
봄이 되었고,
십이지권은 내 소원을 들어주었다.
* 식물 키우기에 대하여 *
<십이지권>
십이지권 키우기 실패 (실수와 이유)
나는 다육과의 식물과 맞지 않았다.
식물이 목말라할 때 물을 주고 싶어 안달이 났으니 물 주기를 잊고 살아도 되는 식물인 다육이는 재미가 없었다.
조바심으로 주었던 물은 다육이들을 물러서 죽게 만들었다.
모체 십이지권은 분갈이를 여러 차례 했는데 처음엔 배수가 안 되는 흙이 가득 찬 큰 화분에 옮겨주었다.
오랫동안 뿌리가 건조되지 않은 축축한 상태에서 계속 물을 주었다. 죽지 않은 것이 용했다.
하이드로 볼을 섞어준 것도, 우드칩에 심어준 것도 곰팡이가 생기고 좋지 않았다.
지금은 원래의 작은 화분에 제라늄 전용 흙과 펄라이트를 1:1로 심어 주니 화분 크기도 적당하며 배수도 건조도 잘 되었다.
자구를 옮겨 심을 때 물이 많이 필요로 하던 임파첸스가 살던 큰 화분의 흙에 그대로 심어줬다.
뿌리에 큰 상처가 난 자구에게 분갈이 후 바로 물도 흠뻑 주었다. 죽을 수밖에 없었다.
“자구야, 미안해“
십이지권 잘 키우기
분류 : 알로에 과의 다육식물
흙 : 배수가 잘되는 흙을 사용하여 뿌리의 통풍과 건조가 잘 되어야 한다. (분갈이흙:펄라이트=1:2 정도가 경험상 좋았다)
물 주기 : 3주이상 잊고 지낸다. 흙이 완전히 마르고 2~3일 후에 준다. 비성장기인 여름과 겨울엔 단수를 해도 된다.
비료 주기 : 필요치 않으나 필요할 경우 봄이나 가을 중 건강할 때 액체의 영양제를 준다.
꽃 : 여름에 긴 줄기가 나와 소박한 꽃이 핀다.
십이지권에게 바라는 나의 소망
언젠가 새로운 자구를 만나 십이지권의 가족을 늘리고, 꽃을 만날 수 있기를..
* 행복한 월요일이 시작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