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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Apr 08. 2024

엄마의 정원

작은 사파리 같았던 마당


어릴 적 살던 집은 단독주택이었고, 마당이 있었다.

그때는 아파트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내가 아는 사람들은 전부 개인주택에 살았다.

실제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은 열아홉 살 때였다.


개인주택은 한옥과 양옥이 있었는데 대부분 작던 크던 마당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열쇠를 잊고 나온 날에 남자들은 좀 힘들지만 담장에 오르고 훌쩍 뛰어넘을 수 있었다

작정하면 넘을 수 있는 담장 위엔 도둑방지를 위한 뾰쪽한 철심이 박혀있거나 어느 집은 병을 깨서 시멘트로 발라 붙였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실내로 들어가기 전 마당을 만났다.

많은 집들이 관리하기 쉽도록 콘크리트로 바른 매끈한 마당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김장독 두 개 정도는 묻을만한 흙으로 이루어진 한쪽 공간을 남겨두었었다.

그 마당엔 강아지의 집도 있었고, 수돗가가 있어서 허드렛일을 하기에도 좋았으며 여름철엔 커다란 붉은색의 고무통에 물을 한가득 받아서 물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곳을 우린 마당이라고 불렀다.

우리 집은 양옥 2층집이었다.

모두가 가진 마당이라 부르는 그곳에 우리 집은 정원이 있었다.

우리 집엔 김장독 뭍을 흙구역 옆에 작은 수돗가 공간을 제외하면 그 외엔 수풀이 우거져있었고, 구석구석 빈틈이 없었다.

그 마당엔 동물도 함께 살았다.

강아지 뽀삐와 쫑의 집이 있었고,  중곡동 애지아줌마 집에서 데려온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고양이는 집안팎을 드나들며 살았다.

네모난 새장엔 청계천의 가게에서 사 온 초록색 앵무새와 하얀색 백문조 한쌍을 키웠다.

수돗가 가까운 쪽으로 1미터 정도 크기에 깊이는 무릎정도 되는 작고 낮은 동그란 연못을 파서 방수공사를 하고 예쁜 돌로 모양을 낸 연못에 주황색과 검은색의 금붕어를 키우셨는데 겨울엔 강아지도 새도 금붕어도 모두 실내로 옮겨 키우셨다.

우리 집 강아지 뽀삐는 짖지도 않고 가만히 엎드려 새를 보는 것을 좋아했고, 눈 속에 파묻혀 노는 것도 좋아했다. 고양이는 쥐는 잡아도 금붕어는 건드리지 않았다.

모두 사이좋게 살았다.

개나리는 밖에서도 보이도록 담장에 심어져 있었고
진달래 꽃잎은 점이 없고, 꽃잎에 점이 있는것은 철쭉이라는 구별법과 진달래는 식용이고, 철쭉은 먹으면 안된다고도 엄마가 말해주었다.

대문옆 담 쪽엔 봄에 꽃을 피우는 흰 목련 나무와 빨간 넝쿨 장미와 개나리가 심어져 있어서  담장 위의 뾰족한 철심을 빨간 장미의 넝쿨이 타고 자라며 오월이면 빨간 장미가 담 넘어 밖에서도 아주 예쁘게 보였다.  보기 싫은 철심은 감춰졌고, 넝쿨 장미가 품고 있는 가시는 절대 얕보면 안 되는 보안장치였다.

귀한 색이라고 좋아하셨던 자색 목련나무는 집과 가까운 위치에 심어서 마루에서 전체가 열리는 창문을 활짝 열면 정면에 보였다.

그 옆으론 연보라와 흰색의 라일락이 있었다.

항상 창문을 열어두는 여름철이면 나는 그 창문 턱에 걸터앉아 나무와 꽃들과 하늘을 보는 일을 좋아했다.

라일락의 꽃향기가 솔솔 나는 그 자리는 그야말로 멍 때리기 좋은 최고의 명당이었다.

자색목련나무 옆으론 처음엔 어른들 키만 한 대추나무 한그루를 심었는데 해를 거듭하면 튼실하게 자라 나중엔 2층에서 기다란 막대기로 쳐서 대추를 따야 할 정도로 커지고 맛도 좋았으며 수확량도 많았다.

그 옆으론 앵두나무가 있었는데 앵두는 예쁘기만 했지 수확도 좋지 않았고, 어린 내입엔 달지 않은 앵두맛이 별로였다.

향기로운 라일락
귀한 자색 목련 꽃을 만나면 아주 반갑다.

식물을 밟지 않고 걷기 위해 편평하고 커다란 빨간 타일을 깔아 둔 길옆으로 주목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엄마는 동그란 모양을 유지하려고 봄가을에 가지치기를 했다. 겨울이면 빨간 열매가 열려 눈이 덮이면 아주 예쁜 겨울나무가 되었다.

빨간 열매는 아주 작은 네모가 뚫려있고, 그 안에 까만 씨앗이 보였는데 앵두보다 맛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걱정이 많은 나는 아무거나 먹진 않았다.

옆집과 붙은 담 아래로는 적당한 높이에 돌을 쌓아 단차의 높이를 주었다. 담 쪽엔 노란 장미와 분홍장미가 심어져 있었다.

정겨운 담장의 넝쿨장미
노랑장미
최근엔 품종이 참 다양해졌다. 엄마가 좋아하셨을것 같다. 안젤라 장미

땅에 가까이 붙어 자라며 계절별 다른 꽃이 피는 갖가지 알록달록한 꽃과 작은 식물의 심어져 있었다.

빨간 맨드라미, 노랑과 흰색의 팬지, 알록달록한 채송화,

약국에서 백반을 사다가 꽃과 함께 콩콩 찧어서 손톱 위에 올리고 잎으로 감싼 다음 면실로 돌돌 감아 한동안 두면 손톱을 빨갛게 물들이던 봉선화,

클로버처럼 생긴 연초록 잎 사이에서 하늘하늘한 연분홍의 꽃이 피는 사랑초,

현관 앞 작은 화분들엔 내 눈에 삐죽삐죽 예쁘게 보이지 않았고, 어쩌다 스치면 따가웠던 각종 선인장들이 있었다.

봄철엔 달래와 연둣빛 돌나물도 돌틈에서 자라면  예뻤다. 그 돌나물을 뜯어 물김치를 담그시면 참 맛있었다.

상추, 깻잎, 고추, 오이 같은 채소는 따로 커다란 화분에 심어 옥상 위에서 키우시며 식탁에 먹거리로 올랐다.

채송화, 베고니아, 메리골드..길에서 만나는 정원의 꽃들

많은 식물들이 심어져 있어 엄청 넓어 보이지만 편평하게 놓인 돌의 시작점에서 끝까지 가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건 마음먹으면 30초가 채 안 걸리는 짧은 길이였다.

나는 어떤 꽃이 피었는지 학교 가기 전에 둘러보기도 했고, 혼자 일찍 깬 일요일 아침 고요한 시간에 종종 왔다 갔다 하며 식물들을 구경했는데 각종 식물들의 내음이 향기로웠고, 그 시간이 참 평화롭고 좋았다.

도둑은 담장을 넘을 순 없었으나 각종 열매와 꽃이 있는 우리 집 마당엔 참새나 제비, 까치등의 새들이 마음대로 날아들어 새소리도 다양하게 들려왔다.


나는 가끔 심심해서 물을 줘봤을 뿐이었다.

호스 끝에서 물줄기가 쏴악 하고 퍼져 나가면 습한 숲 속의 향기가 느껴지며 무지개가 생겨나는 것이 신기했다.

동식물이 함께 공존하며 사는 작은 사파리 같은 그 빈틈없던 정원은

필요 없는 잡초를 뽑고 가지를 치고 병들지 않게 관리하는 모든 일은 엄마의 몫이었고, 또한 엄마의 즐거움과 기쁨이었다.

외국에서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에게 ‘Green Thumb’을 갖었다고 한다. 엄마는 그런 분이었다.




엄마는 연세가 드시면서 개인주택을 관리하는 것이 힘들어서였는지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어 했고, 내 나이 스물둘에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나중에 소식을 들으니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은 그 정원에 시멘트를 깔아 다목적의 넓은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집을 팔 때 엄마는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이 나무는 이래서 예쁘고, 저 꽃은 저래서 귀하고 집자랑보다 정원 자랑을 하시는 것을 보았다.

풀 한 포기에도 애정 어린 눈으로 보며 15년을 하나씩 하나씩 심고, 키웠을 그 정원이 얼마나 아까웠을까?


엄마는 화단에 심었던 아끼는 작은 식물들 몇 가지를 화분에 옮겨 심어 아파트로 함께 이사를 했다.

겨울에도 식물들을 위해 베란다엔 항상 창문을 조금 열어 공기가 순환되게 하였고, 어느 때는 창문은 열어둔 채 밤동안만 커다란 비닐로 이불처럼 덮어주기도 하고, 봄철엔 가느다란 그림 그리는 붓을 두고 꽃이 피면 그 붓으로 벌, 나비가 날아다니듯 수분을 해주기도 하셨다.


엄마는 아파트 베란다에 다시 그 환경에 맞는 숲을 만들었다.

딱 한장 남아있던 사진. 엄마를 잃은 화분들..힘들어 이미 많이 정리를 하셨던 마지막 모습의 베란다 정원


누군가 사진을 찍을 때 배경으로만 남아있는 사진뿐이어서 사진을 올릴 수가 없다.

엄마의 온전한 정원만 찍은 사진으로 남아있지 않은 것이 아쉽다.

사진을 보니 돌길의 길이가 5미터 폭은 3미터 남짓으로 보인다.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이 심어져 있었는지 미스터리하다.

지금처럼 핸드폰으로 맘껏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면 아마도 엄마의 정원을 백만 장쯤 사진을 찍었을 것 같다.

미놀타 카메라는 내 손에 닿을 수 없는 장롱 깊숙이 숨겨져 있었고,

어쩌면 우린 늘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처럼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마당은 늘 우리 곁에 있을 줄 알았다.

불과 30~40년 정도의 시간 동안 우리나라는 참 빠르고 편리한 시대로 변하며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들이 많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위로 무섭게 치솟고 번쩍이는 외형을 갖은 아파트가 왜 좋은지 모르겠다.

울타리 안에서 하늘을 보고 숨을 쉴 수 있는 마당도 없는 집이 왜 그렇게 비싸며 무엇이 그리 좋을까?


우리가 응답하라의 시리즈물을 보며 추억과 감상에 젖고, 그 시대를 살지 않았어도 공감하며 사람 사는 훈훈함을 느꼈던 것은

사람은 무생물이 아니고, 생물들과 더불어 살 때 가치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대문을 열면 초록의 정원이 나타났던 너무도 생생한 그 작은 마당이 있던 집이 생각난다.

신기하게도 작은 아이의 태몽은 그 집에서 낚시를 하는 꿈이었다.

지금도 그리운 그 마당집 꿈을 꾼다.


그 작은 정원의 정성껏 가꾸어진 식물들과 맘대로 자라난 식물들은 내 마음의 바닥에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나는 생물들과 오순도순 살고 싶다. 항상 작은 마당을 가진 집에 사는 날을 꿈꾸지만..

지금은 그저 길에서 만나는 엄마의 식물들이 참 반갑다.

엄마는 여기저기에 계시는 것 같다.




* 행복한 월요일이 시작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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