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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Apr 01. 2024

Prologue (프롤로그)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는

내일 종말이 와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고 알려졌지만 그 말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중학생쯤이었다.

선생님께선 세상의 마지막이 오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니 너네는 딴생각 말고 열심히 공부나 해”

하지만 나는 ‘사람이 산다는 건 식물과 함께 해야 미래가 존재한다는 뜻 아닌가? 나도 사과나무를 심어야지!’ 그런 딴생각을 했다.

선생님은 심었다가 중요했고, 나는 사과나무가 중요했다.


단순한 나는 누가 그 말을 했는지, 그 뜻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슨 연유에서든 <철학자 스피노자>와 <사과나무를 심었다>가 연결된 것이 중요했다.

스피노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자연을 중시했다는 이유뿐이다.


식물과 더불어 사는 일이 가치 있음을 매일 몸과 마음으로 느낀다.

나 역시 내일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씨앗을 심고, 몇 안 되는 식물들에게 물을 줄 것이다.

초록의 식물은 말없이 뜻을 전한다. 물론 초록이 아닌 식물도 마찬가지다.

식물은 존재의 의미, 변치 않는 마음과 생명의 강인감에 대해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맑은 공기는 덤으로 얹어준다.

순수한 영향력을 말없이 전해주는 식물 그리고 자연의 조용한 힘이 참 신기하다.

젖은 솜위에 일일초의 씨앗을 불리기 시작 (3월22일)
(4월 1일) 뿌리가 나왔다. 식목일에 심어줄 예정이다.

나를 지탱하는 힘은 하루를 시작하는 첫 번째 루틴인 몇 안 되는 식물들을 멍하고 바라보는 일에서 비롯한다.

어린 시절부터 식물이 항상 함께였다.

버릇이 되고 습관이 되어 식물이 없으면 허전하고 활기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주 어린 시절에 엄마는 허약한 내가 걱정이 되어 나의 사주팔자를 보았다고 한다.

나의 사주팔자엔 나무가 없어 뿌리 없이 흔들리는 삶을 살게 될 수 있다며 뭔가 글이 새겨진 조그만 나무조각을 만들어 주시며 평생 간직하라고 하셨다.

그런 논리는 전혀 이해가 안 되었지만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 어떤 반항도 하지 않고, 지금껏 화장대 어딘가에 나무조각을 두고 있다. (어딨 는지 찾아봐야겠다)

그 나무조각의 탓인지.. 엄마의 걱정 덕분인지..

생각보다 나는 고집이 센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 몸집도 산만큼 커졌다.

글씨가 새겨진 나무조각 그리고 식물과 책이 늘 곁에 있었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 글을 귀로 듣기도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탈퇴를 했다.

어쩌면 종이 책은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 좋은지도 모른다.

샤라락~ 넘겨지는 순간의 손과 귀로 전해지는 나무의 느낌이 좋아서 자꾸만 책욕심을 낸다.

요즘 손 닿는 곳에 있는 책들과 엄마가 주신 작은 나무조각

식물을 보면 궁금하고, 이름이 알고 싶어 진다.

내가 아는 식물이 그리 많지는 않고, 키우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

스피노자도, 글쓰기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언제나 무엇을 잘 모르고, 부족한 채 사는 나는 혹시 정말 사주에 나무가.. 그 나무의 뿌리가 없는 탓인가?’

다른 사람의 인생과 미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렇게 선입견이 생겨버리니까 말이다.

한번 생겨버린 미래에 대한 선입견은 성실하지 못했던 일의 결과에 탓하기 좋은 구실이 될 뿐이다.


미래를 알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미리 알아서 바뀌어진 것이 아니고, 미리 알았던 미래가 틀렸던 것으로 생각한다.

앞일을 모른 채 갑작스럽게 오르고 내리며 닥쳐오는 희로애락을 느끼게 되는 것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싶도록 끌어들이는 매력이다.

롤러코스터를 타지 못하지만 나는 스릴 있는 삶을 좋아한다.

다 알고, 평온하게 다 잘하는 삶은 재미없을 것 같다. (너무 많이 재밌으니 좀 지치긴 한다)

지친 나는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을 오늘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체한다.

그리고 생명의 힘을 가진 작은 꽃씨를 심으며 식물에게 물을 주고, 말을 건네면 오늘 하루치의 평온을 얻는다.

오늘이 모이면 미래가 된다고 식물이 소리 없이 말을 전한다.

씨앗이 자라면 하얀 일일초꽃이 핀다. 미래는 아름답다.

매일매일 나에게 조용하지만 강한 힘을 주는 몇 안 되는 아는 식물, 알고 싶은 식물들,

그리고 나와 상관없이 저기에 서있는 식물들과 더불어 사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미리 말했듯 나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이 아니지만

언제나 이 식물은 이래서 귀하고,  저 식물을 저래서 소중하다는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정을 준다.


식물 키우기는 미련과 집착의 최고봉인 것 같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일이다.

왜 붙잡고 늘어지며 새 잎이 나오길 기다리는가?

식물들은 내 마음을 알 것만 같다.

하염없이 기다리다 보면 식물은 연둣빛 손을 내밀어준다.

뭔가를 기다리는 것은 설렘이고, 희망이다.


오늘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예쁜 말을 해주며 기다리면 반드시 미래가 온다.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해보니 언젠가는 반드시 되었다.

사주팔자 따위에 지배당하지 말고, 식물을 키우자.

식물 키우기는 어떤 일보다 배신 없이 보람과 명확한 성취감을 준다.

식물이 죽는 것이 두렵다면 두 개를 키우면 된다.

키운다는 것은 살리고자 함이니 고의적이 아니라면 절대로 동시에 두 개가 모두 죽지 않는다.

한 개가 죽으면 또 하나를 들여 두 개를 키우면 어떤 것은 반드시 살아있다.


마침 식목일이 있는 주간이고, 봄도 되었으니 키우기 딱 좋은 시기다.

나를 위한 작은 식물 두 개를 들이자. 예쁜 미래를 선물 받게 될 것이다.

집앞 항아리집엔 예쁜 꽃모종이 잔뜩 들어왔다. 매일 유혹을 느낀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식물을 키우고 또 키우자

“난 식물만 키우면 다 죽여서 안 키워!”라고 말하지 말자.

식물 키우기는

어떤 일보다 배신 없이 보람과 명확한 성취감을 준다.

식물은

살아갈 명분을 가르쳐준다



식물의 위대한 힐링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연재일을 지친 일요일로 할까 생각하다가 응원의 힘이 필요한 월요일로 정한다.

‘월요일에 연재글을 발행하려면 주말에 할 일이 생긴 셈이네. 하지 말까?’

“그래도 하자!”


모두 힘찬 한 주를 시작하시길 바라며

초록의 기운을 받으세요~^^


* 행복한 월요일이 시작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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