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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고랭 이래. 고뤠?

요알못 남자의 요리

by 그사이


그, 토요일 저녁 식사 준비가 시작된 것은 수요일이었다.


"마트에 왔는데 사갈 거 있어?"

"콩나물 한 봉지만 사다 줘."

여자가 꼭 필요한 감자와 양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요리를 모를 뿐 아니라 식재료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남자가 감자와 양파를 사기 위해서 수십 번의 전화를 할게 분명하다. 수요일에 빨간 장미 대신 남자가 들고 온 것은 숙주 한 봉지와 콩나물 한 봉지였다.


남자가 요즘 빠져있는 요리는 나시고랭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우 숙주 볶음밥이라는 편이 맞는다.

둘이 먹게 된 저녁에 쇼츠를 유심히 보더니 만든 나시고랭이 현지에서 먹어 본 적 없지만 제법 그럴듯했다.

젓갈 향이 나는 적당한 간과 달걀의 고소함, 아삭거리는 숙주의 식감이 좋았다. "오! 제법인걸."

맛있다고 호들갑스럽게 칭찬을 해줬는데 조금 걱정이 됐다.

남자가 무엇을 만들었을 때 맛있든 없든 칭찬을 해주는 편이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한번 맛있다고 말하면 질려서 꼴 보기 싫어질 때까지 그것을 반복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 아이들에게 한 번 더 해줬고, 둘이 먹는 저녁에 한 번 더 해주었다.

같은 레시피라고 했는데 맛이 조금 달라져 있었으나 여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었으니 칭찬해 주었다. 처음보다 더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남자의 어깨가 솟은 것이 불안했다.


남자가 수요일에 마트를 간 것은 오직 숙주를 구입하기 위함이었다. 의기양양하게 콩나물 심부름까지 완수했다. 자랑스러운 듯 한 말투로 토요일 4인용 저녁밥을 자신이 담당하겠다고 한다. 토요일이면 숙주를 사두기엔 좀 이른데..

오죽하면 변절의 대명사인 신숙주를 숙주나물에 빗대어 말했을까?

그만큼 숙주는 생으로도 나물이 되어서도 상하기 쉬운 식재료여서 꼭 필요한 날에 사니 평소 집에 구비되어있지 않다. 남자가 왜 집에 숙주를 사두지 않느냐고 불만을 말할 때 이유를 가르쳐 주지 않은 게 문제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드디어 토요일 오후 5시.

남자는 숙주를 씻고 당근과 양파를 아주 조금 써는 사전준비를 하는데 저녁밥 먹을 한 시간을 앞두고 시작한다.

"양이 많으니 부담이 되는걸. 일찍 준비를 해야겠어. 볶는 건 간단하니까.."

자신감 넘치는 솟은 어깨는 여전했다.

"참! 숙주를 먼저 꺼내봐, 상태가 어떤지.."

그렇게 말하고는 안 보는 게 속 편하니 여자는 방안으로 피신했다.


"우어어! “

“왜 그래? 손가락 베었어?”

“숙주에서 날개가 나왔어!"

”뭐? 벌레 생겼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들여다보니 사둔지 며칠 지난 숙주에서 싹이 커져 있었다.

"숙주를 너무 일찍 사다 뒀더라. 그런데 생긴 건 그래도 먹어도 돼."

"오늘은 내가 다른 거 할게. 그건 다음 주에 해 먹자."

"아냐. 금방 다듬을 수 있어."

남자가 태어나 처음 만난 숙주의 갈색 싹이 영 낯설고 마음에 안 들었는지 꼼꼼히 날개를 떼어내기 시작한다.

"아이고, 어깨야."

큰 덩치에 쭈그리고 집중했으니 그도 그렇겠지. 어깨가 조금 내려갔나?

무려 1시간 반이 걸려 숙주를 다듬고 나서 예상치 못한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남자는 한 번에 2인분 밖에는 할 줄 모른다며 2인분씩 두 번을 만들면 된다며 별거 아니라고 자신했다.

날개 달린 숙주와의 전쟁으로 이미 힘을 소진한 남자가 2인분의 소스를 만들고 아이들의 밥을 해주었다. 7시.

"맛있냐? 맛있어?"

"응.. 전과는 다른 맛인데 맛있어."


남자는 이미 두 시간이 넘게 부엌에 서 있다.

이제 다시 2인분의 볶음밥을 해야 하는 남자의 어깨는 한껏 내려앉았고, 심통스러운 말투로 탓을 시작한다.

싹이 난 숙주와 달걀, 조금 질은 밥, 병에서 잘 나오지 않는 굴소스가 욕을 먹었다. 여자는 앉은자리와 마음이 불편했고, 배가 고팠다. 7시 30분.

"우리 건 내가 할까?"

"진짜?"

"그래. 내가 할 테니 잠깐 앉아있어. 숙주를 이렇게 손질 잘해뒀으니 금방 하겠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잔치상이라도 차려낸 것 같은 부엌의 설거지를 하고 나니 9시에 가까웠다.


남자가 말한다.

"밥 먹었는데 왜 배가 고픈 것 같지? 컵라면 있나?"

여자가 참았던 마음의 소리를 질렀다.

다시는 내 부엌에 들어오지 마!


처음 만든 나시고렝. (그릇 가장자리를 닦는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시고랭은 그날 이후 남자의 애정을 잃었다. 이제 다시는 하지 않으니 여자의 마음이 편하다.

어제, 남자가 묻는다.

"오징어 있어?"

오징어라니 갑자기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왜 오징어가 필요한 건지 알고 싶지 않다.

'제발 하지 마. 그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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