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석과 밍밍한 것은 다르다.
얼음 두 개를 넣고,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오렌지주스를 따른다.
사방 2센티미터의 정육면체 얼음 두 개는
계속 시원함을 유지시켜 준다.
유리잔에 뽀얗게 서리가 어리면 살살 저어준다. 얼음은 딸랑하고 청명한 소리를 낸다.
1밀리미터만큼 옅어지면 오렌지주스 첫 모금을 마신다.
어느새 얼음 두 개가 다 녹아 2센티미터만큼 오렌지주스는 옅어졌다.
유리잔엔 어디서 왔는지 모를 투명한 물방울이 가득 맺혔다.유리잔을 타고 흘러내린 물방울이 바닥을 적신다. 이제 지체할 수 없다. 가장 좋아하는 만큼 옅어졌지만 차가움을 유지하고 있는 오렌지주스를 한입에 털어 넣는다.
원샷!
내가 일어설 힘이 생겼다.
얼음 넣은 오렌지주스의 아류작으로 얼음 넣은 자몽주스도 있다.
그리고,
인생의 고독을 위로해 주는 얼음 넣은 붉은 와인도 아주 좋아한다.
쌉싸름한 세미 드라이한 것으로..
묵직하고 쨍한 쓴 맛이 부드러워지면 몸도 마음도 유(柔)해진다.
와인엔 2센티미터 정육각형 얼음 한개를 넣어야한다.
너무 많이 희석 되는것은 위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딱 한개의 얼음이 알맞다.
그러고 보니 와인을 마신 것이 마신 지 아주 오래되었다.
고독하지 않은 건 아닌데...
더위를 몹시 타지만 포기하지 않는건 뜨거운 원두커피다.
몇년에 한번쯤 진짜 특별한 어느 날에 시나몬 가루를 넣은 카푸치노를 마시지만
설탕도 우유도 아무것도 섞지 않은 원두커피는 사랑 그 자체다.
고유한 커피의 향기를 충분히 느끼며 뜨거운 맛이 자연스럽게 식어서 차가운 맛의 커피가 될때까지 마시는 것은
내 유일한 취미생활이자 온전히 혼자서 감정 사치를 부리는 일이다.
폭염에 지쳐 아이스 아메리카를 주문할때 주문대 앞에서 한참을 고민한다.
커피의 종류가 아닌 뜨거움과 차가움의 고민일 뿐이다.
얼마전에 간 카페에서 커피 얼음이 들어간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신박했지만 SoSo.
밍밍해지지 않지만 뭔가 날카로운 다른 맛이 느껴졌으며 차가움에선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맹물 얼음으로 희석되어 밍밍해지는 아이스 아메리카를 좋아하지 않는건 얼음때문이다.
“커피는 뜨거워야 제 맛이지. 난 뭐든 밍밍한건 재미없어서 싫거든.“
녹아들지만 분명히 얼음은 그 안에 존재한다.
각진 네모가 부드러워지며 은은하게 향을 내며 옅어지지만 결코 밍밍하지 않게 나이 들어가는 삶을 원한다.
글쓰기는 인생을 동반하고 있다.
뚜걱거리는 것 같은 내 삶과 내 글이 서서히 날카로움을 다듬어 가며 부드럽게 희석되기를 소원한다.
옅어진 향기속에 존재하는 얼음처럼.
* 유-하다 (柔하다)
형용사.
1. 부드럽고 순하다.
2. 걱정이 없다.
Dear. You.
유~한 주말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