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명절이란
허리가 찌뿌둥하고 불편하다.
삐끗한 적도 없고, 심한 운동을 한 적은 더더욱 없는데 왜 그럴까?
‘아하, 추석이 다가오는구나.’
일주일 날씨를 보고 좋은 날을 잡아 성묘를 다녀왔다.
시아버님께 동태 전, 사과, 배, 왕대추, 용대리에서 산 북어포, 떡집 깨송편, 술
엄마에겐 호박전, 사과, 배, 왕대추, 용대리에서 산 북어포, 떡집 콩송편, 물
내가 만든 것은 동태전과 호박전이 전부다. 그리고 세일로 산 호주산 부챗살에 칼집을 넣어 양념장에 재워 적고기를 대신했다. 꼼꼼히 칼집을 넣었더니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고 타원형으로 예쁘게 구워졌다. 고기를 구울 때 ‘이건 엄마 거, 이건 아버님 거..’ 속엣말을 하며 구웠다.
"명절음식은 결국 산사람이 먹게 되니 산 사람이 먹기 좋도록 하면 되는 거야. “라고 어머님은 말씀하셨고, 나는 그 원칙을 지킨다.
제사와 차례가 없어진 우리 집은 성묘로 예를 다하면 명절행사는 끝난다.
“사돈지간은 멀리 살아야 한다”는 옛말이 있다. 무슨 뜻일까 가만 생각해 본다.
옛날옛날 옛날에 부모입장에서 자녀의 결혼이란 “공들여 키운 내 딸을 남에게 주는 것”에 비중이 큰 제도였다. 차라리 안 보고 사는 것이 편했으리라 짐작된다. 며느리를 본 편에서도 마음이 편하진 않았을테니 서로 거리가 먼 사돈집이 더 좋았을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는 일가친척이 한 곳에 뿌리내리고 사는 시대가 아니니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지켜야 하는 선산의 의미도 그리 크지 않다. 최근엔 선산을 없애고 추모공원 시설로 모시는 경우를 종종 본다.
우리는 오가기 적당한 거리인 같은 추모공원에 양가 부모님을 모셨다. 나들이 한 번으로 시댁과 친정을 모두 다녀올 수 있다. 그리고 부담되지 않는 적당한 노동으로 명절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니 마음에 공간이 생겼다. 그 여유만큼 고인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으로 채워졌다. 우리는 부담을 좋음으로 바꾸었다.
물론 그 과정이 무리하지 않도록 가족 간의 충분한 대화와 이해가 필요한 일이다.
꽃을 좋아하시는 것은 엄마와 아버님 그리고 나의 공통점이다. 우리는 언제나 꽃을 주고 받는 순간이 참 행복했다.
늘 가는 꽃집에 들러 꽃다발 두 개를 사면 성묘준비는 완벽해진다.
입구에서 가까운 아버님께 먼저 들러 술잔을 기울이고 난 후 인사를 한다. 생전에 왜 술 한잔 따라드리지 못했을까... “아버님, 겨울에 또 올게요.” (아버님은 쓸쓸하게 추운 날 떠나셨다.)
그리고 엄마에게 간다. 쨍한 해를 정면으로 받아내며 돗자리 위에서 신발도 벗고 다리를 쭉 뻗고 앉아있는다. 남편이 일어나자고 절대 먼저 말하지 않는 건 배려라고 생각된다. 생대추는 가을이면 엄마가 꼭 한 보따리를 사다 줬다. "우리 사위가 좋아하잖냐.."
친정이기 때문인지 5분쯤을 더 앉아있다가 일어나 인사를 한다. “Bye. see ya. mommy.” (엄마는 내가 같잖은 영어를 쓰면 참 재밌어했다.)
마음이 애틋해져 자꾸만 가고 싶어 집니다.
그리운 당신에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확실히 명절은 명절이다. 적고기 양념 글이 조회수 2000이 되었다고 브런치 알림이 뜬다.
"내가 뭐라고 썼더라?"
사실 레시피는 매번 바뀌고, 물가나 트렌드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서 가끔 내 요리법이 낯설 때도 있다.
(이번만 해도 적고기를 수입산 부챗살로 만들었으니.)
걱정되는 마음에 레시피 글로 들어가 본다. 그 안에 레시피와 함께 잊고 있던 글이 한편 들어있다.
글을 세상으로 꺼내주기로 한다. 설에 썼던 글이었던가 보다.
연휴가 시작하기도 전에 명절 행사가 끝났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나는 왜 피곤한 거지?"
어쩔 수 없이 명절이란..
- 호불호(好不好)가 나뉘는 산적고기 이야기 - (2024년 2월 4일.)
시어머님은 살아있는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스테이크용 등심부위로 적고기를 만드셨다.
두툼하고 기름기와 양념 때문에 타지 않게 굽기가 매우 어려웠지만 부드러운 갈비구이 같기도 해서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입맛이란 모두 취향이 다르겠지만 나는 기름기가 적고 씹을수록 심심하면서도 감칠맛이 도는 산적고기를 선호하여 구울 때 모양도 잡기 좋은 홍두깨 부위로 사용해서 만든다. 제사음식을 만드는 권리가 내게 주어지니 나의 호(好)에 맞춰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아주 좋은 점이 있다.
학교 가정시간에 배운 음식과 맞는 소고기 부위는 외우기가 귀찮았는데 꼭 시험에 나왔다. 특히 홍두깨살이 산적용인 것은 학력고사에도 종종 출제되기도 했다. 별 걸 다 암기해야 했었기 때문에 아는 것이지 나는 요리전문가도 아니다. (본의 아니게 학력고사 세대임을 증명했네)
홍두깨살은 우둔살과 붙어있으니 굳이 구별할 필요 없이 같다고 보면 되고, 기름기가 적어 장조림을 할 때도 사용한다.
제사용을 음식을 마련할 때는 간을 보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짜게 되면 낭패이므로 간을 세지 않게 심심하게 하는 것이 좋다.
제사용이 아닐 경우 두툼한 고기부위를 좋아한다면 스테이크용 고기를 사용해도 좋다.
그럴 때는 마늘과 달고 짠 간을 조금 더 추가하고, 두툼한 만큼 재우는 시간을 좀 더 두는 것이 좋다. 먹을 때 바로 구워 먹으면 맛있는 반찬이 된다.
“남의 잔치에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한다는 말은 오지랖이고, 주제넘는다는 뜻이다.
남의 집 제사 음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각 집안마다의 풍습과 전통에 맞춰 예를 갖추면 되는 것이지 남의 제사상 음식에 대해
“저런 음식을 왜 올리냐? 왜 그렇게 만드느냐?” 하는 것은 큰 실례이다.
역시 가정인지, 국어인지 수업시간에 배웠다.
고물가 시대인 만큼 간소하고 정성스럽게 예를 갖추면서 가족 간의 화목을 도모하는 것이 명절의 참모습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연스러운 순리대로 할 것..
모두가 행복한 설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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