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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 없는 토란국

엄마의 음식 맛.

by 그사이


1부. 게장에 대하여.

내가 절대 하지 않는 두 가지 요리가 있다. 게장과 토란국이다.


엄마는 가락시장이나 소래 포구에 가서 갓 잡은 게를 사다가 몇 겹의 목장갑을 끼고 손질했다.

꽃게로는 하루 이틀 안에 먹을 양만큼의 빨간 양념 게장을 만들고, 작아서 살이 없어 보이는 싱싱한 돌게로는 간장게장을 담갔다.

뽀글뽀글 남은 숨을 내뱉는 간장 속의 게들을 본다. 그 잔인한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더 이상 기포가 올라오지 않으면 자리를 떴다. '끝났구나.'

어릴 때는 끔찍한 감정들을 가지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이었을까.

엽기적인 현장을 목격하고서도 나는 양념게장보다 간장 게장을 좋아했다. 잘 숙성된 게의 향과 은은한 단맛이 돌며 적당히 짭짤한 간장게장을 오독오독 꼭꼭 씹어먹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 맛이 일품이었다.

아무튼 엄마는 그렇게 펄펄 살아 날뛰는 게가 아니면 배탈이 날 수도 있고, 단맛을 내는 것은 설탕만이 아니라고 했다. 싱싱한 것이 아니면 게 살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단 맛을 낼 수가 없다고 하는 말을 어린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잡는 즉시 급속 냉동한 게를 이용하여 게장을 담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만들지 못하니 가끔 생각이 날 때 사 먹게 된다. 그런데 순수한 게살의 향과 단맛을 못 느낀 채 게장을 먹으며 그런 적이 없지만 늘 탈이 날까 두려웠다. 양념 게장은 인위적인 달고 매운 양념을 빨아먹다가 입안이 헐어버리고, 간장게장 맛은 내가 비릿한 빈 게딱지를 그릇으로 간장에 밥을 비벼먹고 있는 건가 싶을 지경이었다. 먹지 않아도 무관한 음식이니 이젠 게장을 먹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게장을 먹어보진 않았지만 원하는 맛을 찾지 못했다. 하긴 내가 원하는 맛이란 엄마의 음식 맛인데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늬들이 게맛을 앓아?”

신구 아저씨의 말이 기가 막히게 내 심장에 와닿았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광고 카피다.


원스 어폰 어 타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만큼 기억나지 않는 아주아주 오래전에..

나는 수산시장에서 가을 꽃게 한 상자를 뭐에 홀린 듯 샀다. 그런데 도저히 사나운 게를 손질할 수가 없었고, 씻지도 못하고 그대로 찜통에 넣어 버렸다. 뚜껑을 열고 나올듯한 소리에 내 심장이 쿵쾅거리고 부들부들 손을 떨며 뚜껑을 잡고 있으니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조용해졌다. ‘끝났구나.’

게껍데기를 닦으며 발라준 게살을 아이들이 맛있게 게눈 감추듯 먹었으나 나는 먹을 수가 없었다. 떨어진 부스러기를 입에 넣으니 고난으로 탄생된 게찜은 그렇게 다디달았다.

금방 죽어 싱싱하다는 꽃게로 탕을 끓이면 아이들이 참 잘 먹었다. 하지만 내겐 죽은 게의 비릿한 맛이 느껴졌고, 그마저도 만들지 않게 되었다.

산 게를 손질하지 못하는 건 다만 내 손이 다칠 것을 걱정해서는 아니었다.

간혹 많은 육고기와 생선들에서 죽음의 비릿한 냄새가 난다. 그럴 때 요리를 하며 숨을 참기도 한다. 그중 필사적으로 서로의 다리를 물어뜯으며 독이 오른 죽음을 목전에 둔 꽃게들을 보면서 손질하는 것을 차마 할 수가 없다. 나는 다시는 산 꽃게를 사지 않았고, 게요리는 우리 집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예전에 읽고 아주 충격적이었던 시 한 편을 적어본다.

간장 게장
지영환

간장처럼 짠 새벽을 끓여
게장을 만드는 어머니
나는 그 어머니의 단지를
쉽사리 열어 보지 못한다
나는 간장처럼 캄캄한 아랫목에서
어린 게처럼 뒤척거리고

게들이 모두 잠수하는 정오
대청마루에 어머니는 왜 옆으로만
주무시나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햇볕에
등은 딱딱하게 말라가고
뱃속이 비어 가는 시간에




2부. 토란 없는 토란국.

우리 집은 차례를 지내는 큰 집이 아니었는데 추석이면 엄마는 토란국을 커다란 솥에 끓였다.

추석을 앞둔 날, 엄마는 동대문 시장이나 경동시장에서 시커멓고 균일하게 동그란 뿌리를 사 왔다. 식재료를 손질한다던 엄마는 빨래할 때나 쓰는 빨간 고무장갑을 장착했다. 처음 토란을 손질하게 되었을 때 맨손으로 다듬고 난 후 옻이 오른 것처럼 손이 온통 빨갛게 부풀고 쓰라려서 여러 날은 아주 혼난 경험이 있다고 하셨다. 고무장갑을 손 닦듯 깨끗이 닦고 나서 시커먼 겉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팔팔 끓는 소금물에 꽤 한참을 삶았다. 그러고 나면 비둘기 색을 닮은 알토란들이 삶아져 나왔다. 찬물에 씻고 뜨거운 기가 빠지면 물에 담가 냉장고에 보관했다.

그리고 다음날은 가장 큰 솥을 꺼내 양지와 사태를 고아 고깃국을 끓였다. 육수가 완성되면 고기를 건져 먹기 좋게 손으로 뜯고, 무와 다시마, 황태를 넣어 본격적으로 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손질해 둔 토란을 넣어 함께 끓인다. 손수 까서 빨간 절구에 빻은 마늘을 넣고, 오래된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푹푹 한참을 끓이면 토란국이 완성된다. 아마도 유년시절 엄마가 먹었던 외할머니의 맛일 거라고 생각된다.


탕국 안의 동그란 회색 토란을 숟가락으로 반을 가르면 하얀 속살이 나오고, 미끈한 표면을 씹으면 살캉하며 갈라진다. 그러면 하지감자처럼 포근한 식감이 느껴지며 정성 들인 육수가 베어 구수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감자도 아닌 것이 고구마는 더더욱 아닌 것이. 그렇다고 무도 아닌 것이. 토란은 그런 맛이다.

맨 손으로 만지면 손이 아리다는 토란을 넣어 만드는 토란국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국 한 솥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몇 날 며칠을 먹어도 싫단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래서 만드셨던 것일 테다.


결혼을 하고 맞은 첫 명절은 추석이었다. 갓 시집온 아무것도 모르던 새댁이 차례에 쓰일 탕국에 관여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완성된 탕국엔 토란이 들어있지 않아 실망을 했다. 추석엔 토란국인데..

"어머니, 탕국에 토란은 안 넣으세요?"

"응. 식구들이 다 싫어해. 그거 미끄덩거리고 무슨 맛이냐고.'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너 토란 먹니?"

"네. 좋아해요."

'그렇구나.'라고 시어머니는 생각하셨나 보다.

별 일이 없었음에도 바짝 신경을 쓰며 긴장했던 새댁은 돌덩이를 삼킨 채 친정집으로 향했다.

(돌덩이에 대해서 전에 쓴 적이 있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엔 토란국이 올라왔다. 국 한술을 넘기자 온몸의 긴장이 이완됐다.

"O 서방, 토란 먹나?"

"아.. 아.. 니 요.." 남편이 토란을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여 우스웠다.

'그렇구나.'라고 엄마는 생각하셨을 거다.

집으로 돌아갈 때 국을 김치통 한가득 담아 챙겨주셨다. 둘이 살던 집에 혼자 남은 엄마가 토란을 손질하고 오랜 시간 국을 끓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어 눈물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엄마는 추석마다 내게 토란국을 끓여주셨다.

"먹을 사람도 없는데 힘들게 왜 이렇게 많이 끓였어?"

"너 좋아하잖니."라고 엄마가 말했다.


이듬해에 시어머님은 탕국에 토란을 넣으셨다. 감동적이었으나 모든 친척들이 탕국 속 토란을 보고 한 마디씩 했고, 내 혀에 닿는 토란의 맛은 따끔거리고 아릿했다. 이후 내가 차례를 모시게 되어서도 시댁 차례상에 토란국을 끓인 적은 없었다.

잘못하다간 손이 불타는 것 같다는 공포감이 심어진 식재료인 생 토란을 사서 손질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몇 년 전 하얗게 손질되어 진공팩에 담겨있는 토란을 사서 국에 넣어 보았다. 식감은 제각각이고, 특유의 흙향도 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추석이면 토란 없는 토란국을 끓인다. 시댁 차례상에 오르던 탕국과는 뭔가 다름이 있다. 아침에 눈을 떠 시작한 국 끓이기는 점심때가 되어야 끝이 난다. 이 맛들이 모두 토란 속에 스며들어야 하는데 아쉽다. 아이들이 맛있다고 감탄을 하며 뭇국도 아니고 북엇국도 아닌 국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글쎄.. 토란 없는 토란국?"

그런데 설컹하며 씹히는 푹 무른 무에서 마치 흙내음 나는 토란 맛이 느껴진다. 내 유년 시절의 맛.


엄마는 무섭지 않았을까? 살아 펄떡이는 게가 손이 불처럼 달아오르는 토란이.

자식을 먹이고 살리기 위해 무서움과 두려움을 감수했을 엄마를 안고 토닥이고 싶다.

내가 아는 음식맛에 대한 엄마의 철학을 이제는 이해한다. 그러나 앞으로도 게장은 못 만들 것 같다.

과연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토란을 손질할 순 있을까. 그 맛의 기억을 더 잃기 전에..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돌덩어리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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