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이모의 덕담
제주로 떠난 그들이 내게 사진을 보내왔다.
가장자리에 얼굴이 3분의 1쯤이 나온 제주란 글씨가 적힌 공항이 배경인 사진.
흑돼지 구이 사진.
돌문어 볶음 사진.
고기국수 사진.
고등어구이 사진.
커피와 함께 손에 든 한라봉 떡 사진..
제주의 맛이 물씬 느껴지는 사진이다.
나는 그들이 제주로 떠날 때 날아올 사진을 기대하며 설레었다.
맑은 하늘처럼 푸른 바다, 높은 파도가 치는 회색이어도 좋은 짠내가 날 것 같은 바다 사진.
편백나무나 비자나무가 하늘까지 치솟은 향이 날 것 같은 숲의 사진.
행복한 미소를 짓는 그들의 모습이 담긴 웃음소리가 들릴 것 같은 사진..
뜻 모를 의문의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프레임 밖의 모습이 더 보일 것 같아서 사진을 살짝 드래그하여 당겨보지만 소용이 없다. 보이는 것 이상의 정보가 없다. 내 행동이 바보 같은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난다.
바쁜 일정 속 시간을 쪼개어 보내온 몇 장의 사진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신들이 경험하는 가장 좋은 순간을 보낸 것이기도 하겠지만 엄마의 관심사인 먹거리가 가장 기쁘게 해줄거라고 기대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설마 내가 바라는 것이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밥 밥 밥..
가족들에게 보인 나는 밥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종종 거리며 부엌을 맴돌고, 밥 먹었어? 오늘은 뭘 먹었어? 저녁으론 뭘 먹고 싶어?라고 묻는 내가 그렇게 보였을 법하다.
어쩌면 그들 탓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타인에게 보이는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비치는 건지 이상한 기분이 들며 궁금해진다.
조금 어깃장 나는 마음이 들다가 한마디 한다.
모르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내가 좋아하는 건 너의 프레임 밖에 있단다.
나는 밥 보다 바다가 더 좋아.
나는 밥 보다 숲이 더 좋아.
나는 떡봉지 보다 너의 손이 등장한 것에 감지덕지한단다. 너의 얼굴이었다면 더 좋겠지.
“몰랐나 본데 나는 그런 사람이야. 엄마는. “
갑자기 날아온 사진을 보다가 레시피를 올리려고 작성 중이던 글을 휴지통에 넣어버린다. 왠지 글에서 행복이 느껴지지 않았다.
“에휴, 자식이란 그런 거구나.” 중요한 걸 뒤늦게야 알았던 내가 그랬듯이.
생각해 보니 엄마는 무엇이 좋은지 내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 마음이 지금 내 마음이었을 것 같다.
오래전 결혼식 날을 코앞에 두었을 때 막내 이모가 내 손을 잡고 바짝 곁으로 앉게 하더니
“있잖니. 너희가 동갑친구였지만 얘, 쟤, 야 서로 그런 말은 하지 말고 부드럽게 말을 해. 말을 가볍게 하면 관계가 가벼워지는 거야. 그리고 진짜 중요한 건 남자는 말을 안 하면 아무것도 몰라. 옆구리 찔러서라도 절을 받아야 해. 알았지?”
엄마와 달리 언제나 재밌게 말하는 막내 이모가 하신 말씀이 이제 보니 아주 귀한 덕담이었다.
나는 우스개 소리라 여기며 귓등으로 들었는지 긴 날 동안 그렇게 살지 못했다.
막내 이모의 관계를 만드는 비책은 비단 부부간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자식, 친구, 산책길에 잠시 만나는 사람과도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이제 말을 하고 살기로 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꼭 하고싶은 말을 하면 모두 조금 더 행복해지는 지름길인 것을 항상 기억하기로 한다.
다짐은 하지만 잘 말하고 살지는 모르겠다.
어딜 가면 얼굴 사진 좀 보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