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 꼬막

겨울의 맛

by 그사이



바람이 쌩하고 코끝이 찡한 계절이 오면 꼬막의 계절이다.

시장 해물가게는 물론이거니와 집 앞 구멍가게에도 시커먼 자갈돌 같이 생긴 꼬막을 팔았다.

손잡이가 달린 커단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 한 바가지에 얼마 그렇게 팔았다. 일시적으로 파는 꼬막은 구멍가게의 한 계절 효자상품이었다. 가게 안으로 들이지도 않고서 꼬막, 감자, 고구마 때로는 나무 궤짝에 담긴 꽁꽁 언 냉동 갈치나 동태를 팔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가게 앞 물건이 밤이면 온데간데없는 것처럼 사라졌다.

“새벽같이 멀리 가서 사 왔을 텐데 저걸 못 팔면 상해서 버려야 해. “

엄마는 늘 시장이 아닌 골목만 돌아서면 있는 구멍가게에서 두 바가지쯤을 샀고, 가게 주인은 단골이라며 덤을 한 바가지를 더 주었다. 그런데도 덤을 한 줌이라도 더 달라는 엄마가 뭔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슬쩍 뒤로 물러서곤 했다. 결국 엄마가 감당해야 할 꼬막의 무게는 멀리서 사 오기도 엄두가 안 날 정도로 엄청났다. 철없던 나는 엄마가 덤에 욕심이 났거나 무거운 것이 구멍가게에서 사는 이유였을 거라 생각했었다.

꼬막을 살 때는 한 줌이라도 더 주었으면 싶었은 게 사람마음인데 돌아와 커다란 양푼에 쏟아 놓으면 꼬막인지 채석장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일 지옥이 시작된다.

그 순간 엄마는 후회했을까?


시간이 이르지만 엄마는 부지런히 저녁 반찬을 준비한다. 찬물에 꼬막을 씻고 삶아 껍데기 반쪽을 열고, 그 위에 미리 준비한 짭짤한 양념장을 병아리 눈물만큼씩 올려 가지런히 접시에 놓았다.

겨울 햇님도 서둘러 저녁밥을 하러 갔는지 금세 깜깜해진다. 겨울밤이 깜깜해지고서야 돌덩이 같던 꼬막이 근사한 요리로 변신했다. 얼마나 공이 들어가는 음식인지도 모른 채 나는 껍데기 까는 것에 손하나를 안 보태고서 양심 없이 홀랑홀랑 잘도 먹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한 특별 반찬은 눈 깜짝할 새 없어지고 어느새 상위엔 빈 껍데기 반쪽이 수북이 쌓이고, 휑한 접시가 드러난다. 먹으면서도 흘깃 곁눈질로 본 엄마는 몇 개 먹지도 않을걸 왜 그렇게 덤에 욕심을 내며 샀을까 싶었다.

"먹는 건 금세네. 겨울이 가기 전에 또 해줄게." 하며 엄마가 웃는다.


감칠맛 나는 조개와 짭짤한 양념장의 조합인 양념 꼬막은 알싸한 한 겨울의 맛이다.

어느 날, 목련의 꽃봉오리에 솜털이 돋아나고 바람에 훈훈함이 깃들기 시작하면 꼬막의 계절이 끝난다.


철없는 꼬마가 철이 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른이 되고 나니 꼬막이 철이 없어져버렸다.

지금이야 제철이 무색할 만큼 식재료들을 구할 수 있지만 난 여전히 제철에 가장 맛이 좋게 여겨진다.

마트에 가면 꼬막이 거의 사시사철 나오지만 11월에서 1월 정도에만 두어 번 사 먹게 된다.

매대 위 꼬막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한 봉지를 사고야 말았다. 모두 까서 비빔밥을 해 먹더라도 일이 많은데 계산대로 가는 동안 내려놓을까 내내 고민을 했다. 일하기 싫은데 괜히 사나?

문득 기억 속에 양념장을 얹은 꼬막을 내 아이들에게 해줘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려졌다.

'뭐 힘들어 죽겠어? 한 번쯤은 만들어 주자.'


저녁밥을 먹을 시간이 멀었지만 꼬막을 씻기 시작한다. 마침 시들어가는 달래가 있으니 쫑쫑 썰어 넣어 향긋하고 짭짤한 양념장을 만들고 반쪽 껍질만 깐 꼬막 위에 티스푼으로 조금씩 올렸다. 완성되었으니 생색을 내야지. 생전 처음 만든 양념꼬막이 대형을 잃기 전에 얼른 사진을 찍어 퇴근시간이 다된 아이에게 보낸다.

”우와! 뭐야? 샀어?"

"사긴 어디서 사니. 엄마가 만들었지."

"이거 집에서 해 먹는 반찬이야? “

집에 돌아온 아이들이 홀랑홀랑 집어 먹더니 금세 접시가 드러난다. 간 보느라 서너 개를 집어 먹었을 뿐이었다. 꼬막도 알맞게 삶아지고 양념장도 맛있게 되었는데도 밥상에서 손이 가지 않는다. 왠지 배가 부르다.


이런 마음이었구나. 엄마는..

한 번 더 해줄게.
겨울이 가기 전에.


삶은 꼬막을 껍질 반쪽을 까고, 달래 듬뿍 양념장을 만둘어 올린다.
저녁에 찍어 사진이 칙칙하지만 맛은 있으니 “아~~"




정말 오래간만의 맛집 글이네요. 올해는 부엌에 불을 좀 지펴야 할 텐데요.

혹시 꼬막 비빔밥 레시피가 있나 하고 보니 없네요. 달래장이라도 궁금하시다면..

꼬막 비빔밥은 여기 있군요. 허접한 글인데 필요하시다면..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