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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흉물 랜드마크, 류경호텔

금삿갓 평양 방문기

by 금삿갓

호텔에서 방을 배정받아서 여장을 풀고, 8층에 있는 나의 객실 베란다를 나서니 대동강 쪽으로 멀리까지 평양 시내가 내려다 보였다. 호텔 주변에는 오래된 아파트들이 외벽이 많이 훼손된 채 밀집해서 있고, 왼쪽으로는 짓다가 만 류경호텔이 커다란 콘크리트 삼각형 흉물처럼 버티고 있었다. 이 호텔은 1989년에 프랑스 기술진으로 건축을 시작하여 골조공사만 완료한 후 1992년에 자금난으로 공사를 중단한 것으로 설계 높이가 330m 정도 되고 105층이란다. 계획상 약 3,700개의 객실을 갖고 있고, 다양한 크기의 연회장들이 설계되었다고 하나 당시는 콘크리트 골조만 피라미드 모양으로 덩그러니 서 있었다. 북측은 누군가 빨리 인수하여 완공하기를 바라지만, 현재와 같은 평양의 폐쇄성으로 인해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으리라. 관광대국도 아닌 은둔의 나라에서 3천 개의 객실을 가진 호텔이라니 상상하기 힘들다.

<당시 류경호텔 모습>

우리 일행이 갔을 때는 일부 공사가 재개되어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기도 했다. 북한 보위부의 안내원 말에 따르면 북한에도 휴대폰을 보급하고 있는데, 이동통신의 사업권을 이집트의 오라스콤이라는 통신사가 낙찰을 받았단다. 그들은 북한에 이동통신 사업을 도입하는 대가로 류경호텔 상층부 개발권을 받았단다. 워낙 규모가 큰 호텔을 10년 이상 골조만으로 방치를 해 놓고 있어서 골조 자체도 허물어지고, 철근이 드러나는 등 위험해서 북측도 고육책으로 그렇게 한 모양이다. 오라스콤 입장에서도 그 호텔 전체를 개발할 엄두도 안 나고, 개발한다 해도 호텔 수요도 그리 많지 않은 관계로 일부 가능성이 있는 부분만 시험 삼아 해 보는 것이란다. 북한에서 우리가 휴대하고 간 모바일폰은 통신 두절로 무용지물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가지고 간 디지털 카메라만이 최고의 휴대물이다. 안내원들이 연신 디지털 카메라를 만져보곤 했다.

<골조만 덩그러니>
<평양시내와 류경호텔>

이 건물의 탄생 배경은 그야말로 남북한이 자존심을 걸고 한판의 승부수를 내려는 싸움의 한 면모를 보여준다. 첫 번째 대결은 대학에서 이루어졌다. 북한이 1972년에 김일성대학에 22층짜리 건물을 완공하자, 남한에서는 영남대학교 경산캠퍼스에 23층짜리 도서관을 지었다. 그 이후 남한이 1985년에 당시 아시아 최고층 빌딩인 63 빌딩과 1986년에 해외인 싱가포르에 웨스틴 스탠퍼드 호텔을 연거푸 짓자, 자존심이 상한 김정은이 감정적으로 100층이 넘는 류경호텔을 건설하려는 악수를 두게 된다. 그 외에도 남한이 올림픽을 유치와 잠실종합운동장을 건설하자 북한은 1989년에 능라도 5·1 경기장을 완공하게 되는 것이다. 당시 북한의 1인당 GDP가 2천 불 정도였다. 그런데 이 호텔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비용이 당시에 7.5억 불로 GDP의 2% 이상을 여기에 쏟아부어야 했다. 그 돈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국민들의 고혈을 짜고, 각종 사업성(호텔, 카지노, 유흥시설 등)을 미끼로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고 했지만 결국 실패한 것이다.

<골조 상층부>
<류경호텔 골조 모습>

총투자 자금의 1/3 정도도 마련을 못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모자라 2년 안에 완공한다는 초스피드 계획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그러나 예기치 못하게 가장 믿고 지원을 받던 우방인 소련이 1992년에 붕괴되고 수 개의 국가로 갈라지자 북한 경제는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공사가 중단된 콘크리트 흉물은 그 후 북한의 각고의 노력으로 2016년에 외관에 유리가 덧 씌워져서 겉보기는 완공된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에 공사 재개를 위해 각국에 의사타진을 하였고, 그중 중국의 기술진도 참가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판단에 따르면 단기간 급조 공조에 의한 골조가 부실하고, 건물 전체의 하중을 못 이기고 지반이 침하되어 마치 피사의 사탑 모양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고 한다. 워낙 건물의 구조가 피라미드처럼 삼각형이라서 어느 정도 기울어져도 붕괴의 위험은 없는가 보다. 내장공사를 하지 않아서인지, 운영 경비가 없어서 인지 몰라도 북한은 지금까지도 그들의 자랑거리인 류경호텔을 사용하거나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주영체육관 쪽에서 바라본 류경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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