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을 풀고 난 오후에 특별히 할 일도 없다. 그래서 오후에는 북한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시내관광을 나섰다. 처음으로 들를 곳이 모란봉지구에 김일성 동상이다. 만수대(萬壽臺) 언덕에 있는 황동으로 만든 김일성 동상은 북한 인민들의 필수적인 참배 성지이다. 이곳은 승리거리와 만수대거리가 교차하는 곳으로 보통강과 대동강의 사이에 끼여 있어서 마치 섬처럼 보이는 곳이다. 평양지하철 통일역 근처이다. 높지는 않지만 만수대 언덕 위에는 엄청 크기를 자랑하는 조선혁명박물관 건물이 버티고 있다. 현재의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김일성 주석 탄생 60돌을 기념하면서 만수대 언덕 위로 옮겨 개관한 것이다. 만수대 대기념비와 조선혁명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의 총면적은 24만여 m²에 달한단다. 혁명박물관 건물 앞 벽에는 천연색 화강석을 붙여 형상화한 백두산 벽화(길이 70m, 높이 12.85m)가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김일성 동상 앞에서>
<김일성 동상>
그 앞에 김일성 주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김일성 주석의 동상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는 김일성 주석의 혁명 역사와 업적을 집대성하여 보여주는 두 개의 탑 군상이 서 있다. 총건평이 약 54,000m²인 혁명박물관 안에는 진열 연장길이 4,500m에 달하는 90여 개의 진열 전시실들이 있다. 혁명박물관에는 또한 보천보 전투를 형상화한 대형 반경화(半徑畵) 전시실과 6·25 전쟁시기의 1211 고지 전투를 재현한 대형 반경화(半徑畵) 전시실 등이 있다고 한다. 반경화란 생소하게 들리는데, 반달형의 방 안 벽면에 배경 그림을 그리고 그것에 맞추어 각종 모양을 만들어 놓으면 그림과 조금 떨어져 약간 높은 곳에서 굽어보면 현실 속의 경치와 비슷한 실감을 주도록 하는 기법으로 제작한 그림이다. 그들의 자랑스러운 안내를 듣는 것으로로 끝내고, 우리는 시간 관계상 박물관에 입장하지 않는 것으로 했다.
<보천보 전투 승리 기념탑>
<보천보 전투 승리 기념탑>
만수대 언덕에서 시내를 굽어보는 김일성 동상은 1972년 김일성 생일을 기념해 세운 것으로 몸 높이만 20m의 동상으로 황금분을 칠하였다.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과 워싱턴 기념탑을 능가한다고 자랑이 늘어졌다. 동상의 배경인 백두산 벽화 돌 모자이크는 폭 70m에 높이가 12.85m이다. 동상 양측의 기념탑은 보전보 전투 승리 기념탑으로, 탑의 높이는 각각 22.5.m이다. 조각 군상의 높이는 평균 5m로 한 변의 길이는 50m, 전부 합하면 200m란다. 이 탑은 마치 포르투갈의 리스본에 있는 벨렝 발견기념비와 흡사한 구조이다. 벨렝 기념비가 신대륙을 찾아 나서는 미지의 항해에 대한 것을 형상화한 것인데 반해 이 탑은 전쟁을 형상화한 것이다. 군상들의 배치나 사선으로 비스듬한 구조가 닮은 꼴이다. 안내원의 말로는 김일성 동상에는 하루 24시간 1년 365일 한시도 꽃이 끊이지 않는 곳이란다. 우리가 당도했을 때, 많은 북측 참배객들은 대열을 이루어서 절도 있게 계단을 올라 꽃다발을 헌정하고 묵념을 하고 내려온다. 그 안내원 말처럼 참배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94년 김일성 사망 후 현재까지 10년간 참배객이 연인원으로 1억 1천만 명을 넘었단다. 동상 근처에 천리마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고 큰 도로를 건너면 모란봉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매일 아침 평양의 첫 햇살이 동상에 먼저 비치면 금빛이 만 줄기로 반사된다고 한다.
<조선혁명박물관 및 김일성 동상 앞 광장 모습>
<조선혁명박물관>
<조선혁명박물관 : 벽화는 백두산 모습을 화강암 모자이크>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동상은 유사시에 자동 승강 장치를 가동하여 안전하게 지하로 내려서 마치 비행기처럼 격납시킬 수 있다고 한다. 동상이 인간 보다 더 소중한 그들이다. 여기서 드디어 문제가 발생되었다. 그들을 우리더러 일렬로 줄을 서서 마치 북한 주민처럼 절도 있게 참배를 하라고 종용했다. 우리가 동상에 참배를 못하겠다고 하자 벌컥 화를 내면 그럼 버스 차량을 운행하지 않겠다고 했다. 동상 근처에서 사진 촬영도 못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정말 막무가내였다. 우리 일행 중 일부는 그 말에 참배가 별거인가 그냥 앞에 가서 도열해 서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금삿갓은 도열해서 참배하는 모양은 하지 못하겠다고 버텼다. 우리가 관광하러 왔지 동상에 참배하러 온 건 아니지 않으냐고 따졌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참배에 동의하는 사람 일부만이 도열해서 참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유로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이들이 또 트집을 잡았다. 참배하러 오면서 꽃다발도 한 송이 없이 왔다고 핀잔이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1년 365일 꽃이 떨어지지 않는데, 우리 한 팀 꽃 없다고 별거냐고 농담으로 한 마디 던지면서 넘어갔다. 정말 꽃다발과 화분들이 많았다. 겨울에는 어떤지 물으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겨울도 마찬가지란다. 동상 앞에서 절을 하고 헌화를 하는 것은 평양의 신혼부부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결혼식 절차가 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