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은 다음으로 개선문(凱旋門)으로 향했다. 평양의 개선문은 모란봉구역 개선문 광장에 있는 엄청 큰 석조 건축물이다. 파리의 개선문처럼 디자인된 것으로 파리 개선문보다 10m 높단다. 김일성이 1925년 항일운동을 위해 조국을 떠났다가 1945년에 돌아온 것을 기념하여 그 연도가 남쪽 면에 커다랗게 조각되어 있다. 사방으로 문이 나서 차들이 통행을 하며, 김일성의 찬가들이 새겨져 있다. 개선문 옆에 김일성 경기장이 있고, 지하철 개선문역이 있다. 평양 개선문은 12개의 방과 난간, 감시용 난간과 엘리베이터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자랑만 들었을 뿐 내부나 개선문 위로 올라가 보지는 못하게 했다.
<방송탑과 북한 학생들이 타고온 버스들>
<북한 안내원과 함께>
개선문은 1982년 4월 14일에 김일성의 독립운동 업적을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하고, 1945년에 김일성이 평양 입성 후 개선연설을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김일성경기장 옆에 세운 기념물이다. 나폴레옹이 건설한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투알 개선문에서 영감을 받았다. 10,500개의 화강석으로 축조되었으며, 지붕은 3층의 합각지붕 스타일로 한옥 형상이다. 기둥 남쪽과 북쪽 면 윗부분에 김일성의 노래 가사가 적혀 있다. 동서 쪽 기둥에는 백두산이 조각되어 있다. 남쪽 면에는 김일성이 조국 독립을 위해 고향집을 떠난 해인 1925년과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해인 1945년이 조각되어 있다. 북쪽 면에 있는 부조상(浮彫像) ‘김일성장군 만세’, ‘조국해방 만세!’는 개선 연설을 하는 김일성에게 환호하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남쪽 면에 있는 부조상(浮彫像) ‘장군님을 우러러’, ‘새 조국 건설에로’는 김일성이 제시한 건당(建黨), 건국(建國), 건군(建軍) 노선에 따라 새 조국 건설에 앞장서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 개선문은 북한의 체제 선전을 위한 조형물에 지나지 않는다. 개선문이란 군대가 출정하여 승리하고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건축물이다. 김일성의 항일운동이 얼마만큼 사실인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일본에 승리한 것은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의 승리 아니었던가? 김일성이 독자적으로 승리한 것은 결코 아닐텐데 우상화 작업의 일환일 뿐이다.
<왼쪽으로 김정일 선전 붉은 문구가 보인다>
<개선문 : 1925~1945가 보인다>
<개선문>
<개선문>
<개선문역 앞 도로의 전차>
개선문 광장 한편에는 다른 지역에서 동원된 학생들이 열심히 8·15 기념행사를 위한 연습을 하고 있고, 그들이 타고 온 관광버스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 뒤쪽으로 평양 방송의 방송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금삿갓은 빨강 치마에 남색 저고리를 차려입은 북한의 안내원과 함께 사진을 찍어 보았다. 개선문 건너편에 지하철 개선문역의 낡은 역사가 있었고, 거리에는 전차가 천천히 지나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