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기오는 산중 도시이기 때문에 바다를 가려면 산을 내려가야 한다. 산속에만 계속 있는 게 무료하여 우리는 하루를 잡아서 해변에 가기로 했다. 물론 수영복이나 낚시 도구 같은 것도 없지만 그냥 매일 산속에서 지내는 것보다 필리핀의 바다에서 바다 냄새를 느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당연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갈아타는 불편함과 많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택시를 대절내서 가는 방안을 택했다. 숙소의 주인인 Ditas와 협의를 한 결과, 개인 승합차를 소유한 사람을 소개받았고 1일 사용하는데 4,000페소가 소요된다고 했다. 지도상으로 해변은 바기오에서 1시간 반 이상을 내려가면 평지가 나오고, 바닷가로 접근할 수 있었다. Ditas는 필리핀의 일반적인 해변은 사용하기가 불편하니 해변 리조트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자기가 잘 아는 리조트가 2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으니 그곳으로 가라고 했다.
<리조트 주차장>
<출입구>
<리조트 간판>
<숙소 모습>
바기오는 뱅겟(Banguet) 주이고 바다 쪽은 다른 주(州)인 라 유니온(La Union) 주이다. 그곳에 아구(Agoo)라는 읍 단위 되는 지자체가 있고, 북쪽으로 아링가이(Aringay) 강을 건너서 아링가이 읍(邑)이 있다. Ditas가 소개해 준 리조트는 아링가이 읍에 위치한다. 아구 읍에도 아구 에코파크 해변이 있었는데 일반적인 편의 시설이 없어서 캠핑을 할 수밖에 없단다. 필리핀은 해변을 개인들이 소유하면서 개인 리조트를 만들어서 일반에게 대여하는 형식으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갈 곳은 개인이 운영하는 By the Shore Resort였다.
<간이 시설들>
숙소에서 아침 9시에 승합차 운전기사를 만나서 해변 비치 리조트로 출발했다. 마르코스 하이웨이를 거쳐서 산을 내려가는데 가파른 절벽 길을 꾸불꾸불 천천히 내려간다. 길옆으로는 낭떠러지와 열대우림의 숲들이 펼쳐져 있다. 정말 이곳은 산 계곡과 봉우리마다 집들이 계단식으로 들어서 있어서 아슬아슬해 보인다. 1시간 반 이상을 달려서 내려오니 아구(Agoo)라는 우리나라 읍 정도의 마을에 당도하고, 여기를 거쳐서 북쪽으로 목적지를 향해 간다. 길가의 마을에는 오토바이 택시인 트라이시클들이 많이 다녀서 교통 체증의 원인이 되고 있었다. 바기오는 산악지라서 이를 금지하고 있는데, 평지에는 어디를 가나 이런 교통수단이 대부분이다. 화려한 장식을 한 것도 있고 심지어 에어컨을 장착한 것도 있단다.
<야외 수영장>
<바다가 보이는 풍경>
<바다와 야외수영장>
<파괴된 해변>
두 시간 정도 걸려서 우리의 목적지 By the Shore Resort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그런 리조트가 아니고 펜션 정도의 규모라고 생각하면 맞겠다. 바닷가를 끼고 이런 개인이 운영하는 리조트가 서너 개가 나란히 있었다. 바닷가의 모래사장은 공유를 하지만 모래사장 바로 뒤편의 땅을 개인들이 개발 건축하여 리조트로 쓰는 것이다. 숙소와 음식점, 수영장, 간단한 놀이시설, 샤워장 등을 구비하여 손님을 받는 스타일이다. 입장료가 1인당 350페소이다.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왔으니 안 들어갈 수도 없고, 기분이 나빴지만 어쩔 수 없다. 리조트에 숙박을 하지 않고 낮 시간을 쉬다가 돌아갈 거라서 구비된 시설과 주변을 둘러보았다. 야외 수영장과 음식점 겸 카페, 숙소, 정원, 야외 샤워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고, 바다의 해변을 보니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섬이 맞나 할 정도로 우리나라 서해안 같은 물 색깔이었다. 갯벌도 없는 것 같은데 기대했던 쪽빛이나 하늘색 물이 아니라서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고 푼 생각이 싹 가셨다. 보라카이, 세부, 수빅, 아포 등등 이제까지 가본 필리핀의 바다가 아닌 보령 앞바다다.
<멍 때리는 덕은>
<Killing Time>
<해변 모습>>
현장에는 필리핀 현지인 가족들이 피서를 와서 쉬고 있었다. 아주 한적하고 조용한 곳으로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기는 좋은 장소처럼 보였다. 여기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호텔식 현대화된 파라디소(Paradiso) 호텔 리조트도 있었다. 우리 일행 모두 실망해서 그냥 모래사장에서 맨발 걷기를 하려고 나갔다. 그런데 모래사장의 상태도 별로였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태풍이 지나갔는지, 각종 쓰레기와 나뭇가지들이 뒤 엉겨 있어서 도저히 맨발 걷기가 불가능했다. 원래 맨발 걷기는 바닷물에 촉촉이 젖은 모래 위를 걷는 것이 접지(接地 : Earthing)가 잘되어서 몸 안의 나쁜 전류나 활성 산소가 땅으로 빠져나간다는 설이 있다. 우리 팀 중 맨발 걷기의 달인인 송재의 강력한 이론이다. 전자테스트기까지 휴대하여 전류의 세기와 영향 등을 검증해 주면서 맨발 걷기를 권장하지만 오늘 여기서는 불가능하다. 자칫 가시나 날카로운 것을 밟아서 상처를 위험이 높았다.
<카페 겸 음식점>
거금을 들여서 승합차를 대절하여 왔건만 마땅히 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어린이 수영장 같은 조그만 야외 수영장에서 팬티차림으로 놀 수도 없었다. 그냥 야외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나 마시면서 멍 때리는 것이 최고 있다. 그런데 이곳의 온도는 바기오와 사뭇 다르게 30도를 넘어간다. 그늘의 카페에 있지만 땀이 날 정도이니 다시 바기오가 그립다. 야외라서 에어컨은 없고 그냥 선풍기가 고작이다. 무료(無聊)하여 점심 식사만 하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