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홀로서기는 곧 정체성 혼란의 시기, 청지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오랜만에 함박눈을 구경했다. 도로가 미끄러워 걷기 힘들었지만 거리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눈을 모으고 던지며 노는 모습이 반가웠다. 내리는 눈을 구경하고 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보이는 눈놀이 광경을 보다가 불현듯 몇 년 전 '청소년 스키캠프'가 떠올랐다.
대부분의 청소년기관(청소년 수련시설)은 여름엔 물, 겨울엔 눈을 테마로 다양한 프로그램 만든다. 프로그램의 소비자라 할 수 있는 청소년이 원하고 있었고 그만큼 좋은 주제가 없었기에 현장의 청소년지도사들도 마땅히 그러한 프로그램을 펼치는 것에 대해 연구하며 고민하며 기획하곤 했다. 우리 기관도 그러한 추세에 따라 꽤 오랜 기간, 여름엔 워터파크 - 겨울엔 스키장으로 떠났는데 내가 떠올랐던 그날의 기억은 바로 하얀 설경이 배경이었던 스키장에서의 '청소년 스키캠프'였다.
초등학교 고학년(4~6학년) 40명을 데리고 갔던 '청소년 스키캠프'는 2박 3일 일정으로 운영되었다. 그때는 코로나 팬데믹 전이였기에 감염병에 대한 걱정보다 안전사고에 대한 준비가 더 우선이었다. 보통의 야외 캠프에서 이 정도 인원이면 지도사의 수는 3명 정도일 텐데 스키캠프라는 특별하면서도 주의가 요구되는 프로그램 덕분에 청소년지도자는 4명, 스키강사(캐빈) 3명, 스키장 담당 직원 1명이 우리 아이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스키를 탈 수 있도록 옷을 갈아입으며 장비를 착용했고 이어서 준비운동을 시작으로 스키장 내에서 생길만한 다양하고 무서운 사고를 미리 방지하며 장비 안내와 슬로프 내에서의 주의사항을 꽤 자주 큰소리로 전달하고 또 전달했다. 스키 강사가 슬로프 내에서 초급, 중급반으로 교급을 나누어 아이들을 3개의 모둠으로 나누어 스키교육을 진행해야 했기에 우리 지도사들도 3개 모둠으로 나누어 한 모둠씩 담당했고 함께 장비를 착용하고 아이들과 함께 교육 현장으로 이동했다. 남은 지도사 한 명은 혹시 모를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며 스키장 이곳저곳을 오고 가며 아이들 사진도 찍어주고 행정도 처리하며 돌아다니는 역할을 수행했다.
도착과 함께 시작된 스키 강습은 다행히도 별문제 없이 안전하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야간 프로그램(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는 것도 모두 안전하고 즐겁게 진행되었다. 4명의 지도사 중 유일한 남자 지도사였던 난 남자아이들 케어와 스키 중급반 전담, 그리고 전반적인 안전을 담당했다. 순간순간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특이사항 없이 첫째 날 일정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미리 배정된 인원에 따라 적게는 6명 많게는 8명의 청소년이 한방을 숙소를 함께 사용했다. 숙소에 들어간 참가 청소년들에게 짐을 정리하고 세면 할 것을 우선 주문했다. 이어서 방장을 선출하고 그 안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설명하며 아이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했다. 혹시 몸이 불편한 친구들은 없는지, 감기에 걸리거나 동상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은 없는지, 숙소 안에서 겉도는 친구들은 없는지 등에 대해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이른바 점호가 이루어진 것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훌륭하게 공동체 생활을 잘하고 있었다. 별 문제없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지도사 숙소로 돌아오면서 조금 긴장이 풀어질 정도로 말이다.
아이들처럼 나도 내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마치고 난 뒤 시간을 보니 10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한번 숙소를 돌면서 취침 안내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누군가 내 숙소에 노크를 하며 나를 찾았다. 나가보았더니 이번 캠프에 참여한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 A군이었다. 표정을 보니 뭔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점호 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없었던 것 같았는데 표정만으로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고 아이를 내 숙소 안으로 들어오게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이가 날 찾아오는 경우는 보통 소화제나 밴드 등의 구급약을 요구하거나 간식이나 물 등이 필요해서일 텐데 A군은 다른 이유였다. 그 아이는 내게 울먹거리며 "선생님, 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처음엔 같은 방 아이들과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가끔 친한 친구들과 같은 모둠이나 같은 숙소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기에 그것은 당연한 추론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 경우가 달랐다. 숙소 친구들과의 문제도 아니었고 몸이 아픈 것도 아닌 정말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스키장이 있던 강원도부터 A군의 집까지는 최소 2시간 반을 차로 달려가야 할 거리였다. 아니 거리는 둘째치고 가고 싶다고 떼를 쓴다고 단번에 갈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작지 않은 체구의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캠프 중 집에 가고 싶다고 엉엉 우는 모습은 수년간 캠프와 야영을 경험했던 내게 매우 생경한 광경이었다. 간식을 주고 따뜻한 물을 마시게 하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괜찮다고 다독거렸음에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고 그저 '엄마가 보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만을 반복했다. 어르고 달래는데 한계를 느꼈고 무엇보다 A군의 문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이 A군의 어머니와 늦은 밤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청소년의 자기 성장과 주도적인 활동을 위해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청소년활동에서 부모님과 연락을 취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전화연결을 하자마자 A군의 어머니는 마치 내 전화를 기다렸다는 듯이 연락을 받아주셨다. A군에 대한 걱정보다 밤새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나를 더 걱정하시며 미안해하시며 말이다. 전화연결은 나의 상황설명에 이어 울고 있는 A군을 거쳐 다시 내게 돌아왔다. 그러면서 A군이 왜 이렇게 집에 가고 싶어 하는지 설명해주셨다. 초등학교 6학년, 나이로는 13살이 될 때까지 A군은 단 한 번도 부모의 품을 벗어나 본 적 없었다고 한다. 그 흔한 친척이나 할머니 집, 친구네 집에서 머물다가도 잠을 잘 시간에는 다시 집으로 오거나 어머니 옆에서 잠을 잤다는 것이다. 그래서 캠프를 보낼 때 A의 외부 취침에 대해 걱정이 있었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한참을 통화하던 어머니는 결국 A군의 아버지와 함께 스키장이 있는 강원도로 A군을 데리러 오신다고 하셨다. 더 이상 캠프 운영의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이유와 함께 A군의 문제 해결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는 것이 어머니의 주장이셨다. 하지만 난 그 의견에 반대했다. 캠프 운영은 나를 포함한 다른 선생님들의 지도로 별일 없을 것이고 A군의 문제 해결의 답은 부모의 등장보다 경험의 축적이 더 필요하고 효과적이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당장의 문제는 부모의 도움을 받으면 벗어날 수 있겠지만 A군의 성장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최선을 다해서 내 의견을 전했고 오랜 시간 통화 끝에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혹시나 A군이 너무 힘들면 전화는 한두 번 더 할 수 있겠지만 이곳에 오실 생각은 마시고 집에 계셔달라고 부탁드렸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며 A군을 내 방에 데리고 잠을 잘 것이며 밤새 예의 주시하겠다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이제 남은 것은 A군과 나와의 취침시간이었다.
전화 끝나고 난 A군에게 상황 설명을 다시 하고 잠시 다른 아이들의 숙소를 둘러봤다. 같은 방에 있던 A군의 친구들에게는 A군이 몸이 좋지 않아 선생님이 곁에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른 선생님들과 이 상황을 공유했다. 내 숙소에서 A군과 나와 둘이 자면서 내가 전담 마크할 것인데 혹시 모르니 밤중에 남자아이들의 숙소 점검을 교차로 한 번씩 더 해달라는 요청을 더했다. 그리고 곧바로 홀로 남아있는 A군이 있는 나의 숙소로 서둘러 돌아와 그 어린 친구를 어르고 달래며 밤을 보냈다.
A군은 울다가 잠에 들고 잠에 들었다가 깨서 또 울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덩달아 나도 아이를 보고 괜찮은지 확인했다가 선잠에 들기를 반복했다. 울면서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하고 또 집에 가겠다는 A군에게 언젠가부터 내 이야기는 잔소리로 들리고 있음을 알아챈 후엔 더 이상의 말보다는 옆에 두고 등을 두드리고 물을 건네주는 일 정도가 밤새 내가 A에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오랜 밤이 흐르고 흘러 해가 밝았다.
스키캠프는 다른 캠프보다 유독 신경 쓸 것이고 많고 안전사고도 빈번했기에 비몽사몽 되며 아침을 맞이한 A군이 캠프 스케줄에 제대로 합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며 아침 식사 후 컨디션을 확인했더니 밤 중에 내내 울던 사람은 누구냐는 듯 아무 일 없이 일정을 소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어서 진행된 오전 스키와 점심식사, 오후 스키까지도 A군은 너무도 편안하고 즐겁게 친구들과 생활하고 스키도 잘 타고 다녔다.
둘째 날 저녁, 그는 아무 문제없이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하루 일정을 무사히 보낸 A군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혹시 오늘 밤에는 친구들과 같이 잘 수 있는지 따로 불러 물어보았다. 어제 그렇게 울고 난리를 부렸음에도 부모님이 오시지 않아 내게 약간의 심통이 난 상태였지만 밤새 또 친구들 옆에서 눈물을 훔치며 잠자리에 드는 것은 부끄러울 것 같은지 내 숙소로 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울어도 괜찮고 잠을 자다가 선생님과 밤새 이야기해도 괜찮아. 단 부모님은 오늘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해."라고 전하며 A를 다시 한번 내 숙소로 데리고 왔다.
모두가 잠자리에 들 시간, A군의 울음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과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나는 한번 더 A군의 어머니 찬스를 쓸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하면서 A군은 울었고 A군의 어머니는 여전히 걱정하고 있었으나 나는 이번 캠프가 끝나고 나면 A가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어제와 같은 상황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A군은 전화 내내 울먹거렸지만 다행히도 울음의 크기는 점점 작아졌고 부모님과의 늦은 밤 통화 내용도 어제보다 긍정적이었다. 나는 A군의 어머니에게 오늘 일과에 대한 A군의 상황과 컨디션을 설명했고 그것은 또 한 번의 의지와 또 한 번의 설득으로 이어졌다. 전화 찬스 이후 A군은 훌쩍거리며 남은 울음을 토해내는 등 쉽사리 잠에 들진 못했지만 어젯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피로감과 오늘 하루 일정의 고단함 덕분인지 전날보다 깊게 잠에 빠져들었다. 덕분에 나도 A군 옆에서 깊게 잠에 들 수 있었다.
캠프 일정을 무사히 마친 후, 난 건강하고 무사히 캠프를 마친 A군를 옆에 두고 A군의 어머니와 대면할 수 있었다. A군의 어머니는 나의 수고로움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해주셨고 나는 캠프에 잘 적응하고 함께해온 A군을 칭찬하며 격려하는 말로 응답해 드렸다. 그러면서 힘들고 어려웠겠지만 A군을 한두 번 더 캠프에 참여시켰으면 좋겠다는 요청의 말씀을 더했다. A군의 사회성 발달을 위해서 첫째 날 밤보다 두 번째 밤이 조금 더 나았던 것처럼 홀로 서는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고, 믿고 보내주시라고 말이다. A군의 어미니는 내 말에 동의하며 A군의 손을 잡고 인사를 해주셨다. A군은 여전히 자신과 부모와의 만남을 내가 가로막았다고 생각해서 내게 앙금이 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치부를 보였던 것이 부끄러웠던 것인지 하는 둥 마는 둥 내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A군이 떠난 후, 난 캠프 지도자들과 평가회의를 하면서 내가 했던 언행에 혹시나 모를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고 또 확인했다. 선의로 했던 말과 행동이 민감한 사춘기 시기의 청소년에게 도움은커녕 걸림돌이 되지 않았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피드백과 감사하다고 적어주신 A군의 부모님의 문자 덕분에 청소년지도사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또 감사한 시간이었다.
청소년은 개인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시기적으로 자아가 형성되고 사회성이 개발될 시점이다. Eri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에 따르면 12~18세를 '정체감 대 역할 혼미'의 단계라고 말하며 청소년이 독립을 주장하는 동시에 안정과 보살핌을 원하는 시기라고 한다. 급격한 심리적 - 육체적 변화가 사춘기라는 단어와 함께 혼란스럽기 때문인데 이를 방치하거나 부모나 보호자가 너무 품 안에 두려고 했을 때 청소년은 정체감에 혼란(identity diffusion)을 느끼거나 유실(identity foreclosure) 또는 유예(identity moratorium)될 수 있으니 보호자나 지도교사(청소년지도사)의 특별한 관심과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소년지도사는 이전 글에서 말한 것처럼 청소년 활동을 통해 청소년을 만난다. 즉 청소년활동은 청소년지도사와 청소년을 잇는 매개체이자 도구인데 이것을 잘 활용하면 청소년이 자아를 형성하고 사회를 만나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무 의미가 없거나 혹은 자아 형성에 장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청소년이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또는 도전하는 이 중요한 시기에 청소년지도사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청소년의 홀로서기 도우미가 되느냐 아니면 장애물이 되느냐의 순간을 바라보고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족할 수 있었겠지만 난 2박 3일 스키캠프를 매게로 40명의 청소년에게, 특히 나와 함께 긴긴밤을 보낸 A군에게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가정과 학교에서 제공하기 힘든 자립과 사회성 발달, 공동체 의식 등을 경험하게 했고 어렵고 힘든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기회도 손을 잡고 함께 지나왔다. A군이 추후 나에게 감사인사를 하거나 찾아오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이번 캠프를 통해 스스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독립된 자신의 자아를 확인하고 자기 삶의 가치와 목표를 능동적으로 찾아나가는 정체감 성취(identity achievement)의 순간에 청소년 스키캠프가 조그이나마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바람이지만 청소년지도사의 삶을 살아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청소년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청소년이 사회성을 개발하고 자아정체성을 갖도록 함께 하는 것이. 청소년이 홀로서기를 시작할 때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난 청소년지도사로서 내 역할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그것을 무사히 잘 완수할 수 있도록 오늘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청소년의 홀로서기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말이다.
_by 레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