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오 Dec 12. 2021

'청소년지도사' 아빠는 '청소년' 자녀에게 배운다!

청소년 아들의 반장선거


나는 현재 육아휴직 중이다. 13년간 청소년지도사의 삶을 살다가 지난 2월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3월부터 휴직 상태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아이들 돌봄의 문제가 심각했기에 주저하지 않고 휴직을 신청하게 되었다. 많은 분들의 배려와 도움, 응원 속에 순조롭게 육아휴직을 이어가고 있다. 덕분에 그동안 경험할 수 없었던 아이들과의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고, 가정주부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멀리서 바라보는 청소년 현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번 휴직으로 내가 얻게 된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래서 이곳에 육아휴직 중에 일어난 이야기 또는 생각을 나눠보려고 한다. 기록은 기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지도사'는 늘 '청소년'에게 배운다!>는 글을 쓴 이후, 나는 우리 집 아이들과의 일화가 생각났다. 마냥 어려 보였던 그 아이들은 어느덧 자라 청소년이라 불릴만한 나이가 되었다. 청소년지도사가 청소년에게 배운다고 말한 것처럼 부모도 아이들에게 삶을 배우는 듯하다. 따라서 이번 글을 청소년지도사의 에피소드라고 보는 것보다 청소년지도사 아빠가 청소년 아이들을 통해 삶을 배운 에피소드 나열이라고 보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에피소드 1


달 전 학교에 다녀온 아들이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공책을 펴고 뭔가를 열심히 적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단순한 낙서가 아닌 '4학년 2반 여러분,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학급회장 선거를 위한 자기소개 글이었다.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지난 1학기 코로나로 인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막무가내로 학급회장 도전을 권유했다가 아쉽게 당선되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공지를 보고도 별다른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아들의 모습이 고마웠다.


학급회장 선거 당일 하교시간, 아들이 평소보다 큰 소리로 아빠를 부르며 문을 열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겼구나 생각했지만 짐짓 모른 체하며 물어보니 '학급 부회장'이 되었다고 자랑을 했다. 기특한 마음을 가득 담아 칭찬해줬는데 아들은 "회장이 될 수 있었는데..." 라며 웃으며 당선소감을 말했다.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회장이 된 친구와 아들이 투표 결과 1표 차이였는데 아들이 자신을 안 뽑고 회장이 된 친구를 뽑았다는 것이다. 왜 그랬는지 물어보니 그 아이의 공약이 더 좋아 보였다고. 그래서 그 친구가 회장이 되었으면 했다고.


괜히 아쉬워서 한소리 해야 하나 싶다가 아들의 답변을 듣고 보니 객관적으로 투표에 참여한 아들의 모습이 자기 목소리만 내세우는 어른들보다 더 나아 보였다. 욕심부려 회장이 되는 것보다 소신껏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부회장 당선을 기뻐하는 아들이 멋있고 자랑스러웠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비로서 청소년지도사로서 더 깊은 생각을 펼치고 더 멀리 바라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것을 쟁취하려 했던 지난날의 과오가 떠올랐다. 아들의 속 깊은 판단은 아마도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때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객관적인 시야, 자기 주도성에 대한 가치관이 소중하게 정립되리라 기대가 되기도 한다.


아들의 학급 부회장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아빠는 오늘   아이에게 삶을 배웠다. 



#에피소드 2


어느 날 딸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학교에 보낼 순 없었다.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해열제를 먹이고 급히 병원에 다녀온 후 집에서 하루 종일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지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아빠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오히려 즐기는 듯했다.


나는 집에 있으면서 종일 아이의 체온을 체크하고 밥과 약을 먹이는 것은 물론 학원 일정을 정리하며 집안일을 쉼 없이 했다. 집에 있으면 늘 할 일이 줄지 않는다.


그러다 조용히 책도 보고 인형도 가지고 놀던 아이가 갑자기 내게 이말을 내게 건넸다.   


- 딸) 아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게 뭔지 알아?   

- 나) 우리 딸이 아빠한테는 가장 소중하지,

- 딸) 아니야. 바로 나 자신이야.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한 거야.


어디서 들었는지, 어떤 책에서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지 못한 아이의 한마디가 내게 위로가 되었다. 소중한 자신을 잘 돌보라는 아이의 메시지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하루 종일 아픈 자신을 돌보느라 정신없이 집안일을 하는 내 모습이 아이가 보기에 좋지 않았나 보다. 나는 하고 있던 집안일을 멈추고 아이를 꼭 아주었다. 이후 나는 아이와 같이 책을 읽다가 낮잠을 한숨 자기도 하며 남은 하루를 아이의 컨디션 회복을 위해 보냈다. 그리고 아이의 말을 곱씹었다.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야. 나 자신.



#그래서 아빠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힘겹지만 이렇게 뜻하지 않게 마주하게 되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아빠는 오늘도 힘을 얻는다. 그렇게 삶을 배우고 감탄하며 새로운 하루에 감사한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아빠도 성장하는구나를 느끼며


_by 레오_
이전 07화 청소년의 홀로서기, 청소년지도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