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오 Dec 09. 2021

모니터를 보지 말고 '청소년'을 바라보자!

그 메모는 아직도 내 책상에 붙어있다.

출처 : pixabay


#어느 날 내 모니터에 메모지 한 장이 붙었다.


<모니터를 보지 말고 청소년을 바라보자!>      


10년 전 어느 날, 난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작은 메모장에 이렇게 글을 적어 모니터 앞에 붙여놓았다.


메모를 쓰기 불과 몇 시간 전, 입사 한지 채 1년도 되지 않던 나를 만나러 교복을 입은 청소년 한 명이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내 책상 옆에 자리했다. 오늘 학교 급식의 맛이 어땠고, 이번 가을 축제 때 자신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요즘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은 어쩌고 저쩌고 등등을 쉼 없이 떠들어댔다. 보고서가 한참 밀려 오늘도 야근을 해야 할 나를 앞에 두고.    

 

한참을 떠들던 그 아이는 내 반응이 영 시원찮았는지 평소보다 일찍 귀가했는데 아이가 떠난 자리를 정리하다 문득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현실을 자각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청소년수련관이고 나는 청소년지도사이며 내가 만나고 함께 하는 주체가 바로 청소년임을 망각했다는 과오를 저지름을 깨달았다. 청소년은 청소년수련시설(수련관)의 주인이고 나는 그들을 위해 지금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차, 그런 내가 청소년을 등한시하다니...      


아이와 대화 나누는 내내(아니 아이가 혼자 이야기하는 내내, 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난 모니터에 시선을 두고 있고 손은 키보드를 향해 있었으며 아이와 제대로 된 눈 맞춤을 하지 못했다. 아이가 상처를 받았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과 함께 일단 나 스스로의 각성이 필요했다. 냉수 한잔을 마시고 내게 던지는 메시지를 모니터에 붙이는 행위를 한 것은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이자 결심이고 명령이자 주문이었다.     


#10년 뒤, 내 자리에는 여전히 그 메모가 붙어있다.


10년 정도가 지난 지금, 나는 그 전보다 훨씬 빠르게 업무를 처리하는 요령이 생기긴 생겼고 청소년지도사라는 직업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내 자리에는 여전히 그 메모가 붙어 있다. 아니 내 마음에 그 문장이 계속해서 자리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그 메모는 내 초심이고 나의 성찰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청소년과 함께하지 못하는 청소년지도사는 영혼이 사라진 빈 껍데이기일 뿐이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청소년을 만나는 시간에는 하던 일을 잠시 중지하려고 노력한다. 청소년을 마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 시간을 마음껏 대화하고 소통하는 데 활용하는 것이 문서작업보다 더 값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청소년지도사는 청소년으로 인해 살아간다는 것을.


_by 레오_
이전 05화 '청소년지도사'는 늘 '청소년'에게 배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