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15일이면 그동안 청소년활동으로 만났던 청소년들이 수련관을 방문한다. 스승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메시지를 가득 담아 손에는 꽃과 작은 선물이 들려있다. 나는 반갑게 맞이하며 아이들과 신나게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나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진정한 스승인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내가 청소년에게 더 많이 배운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몇 가지 에피소드를 떠올려본다.
#첫 번째 에피소드
2017년 겨울, 난 우리 기관 청소년운영위원회 위원장과 간식으로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청소년운영위원회 연말 활동을 준비하기 위함의 목적도 있었지만 입시 준비로 활동을 잠시 멈추기로 했기에 그 아쉬움에 대화를 더 많이 나누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매콤한 떡볶이를 먹으면서 우린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개인적인 대화부터 청소년운영위원회를 거쳐 청소년정책까지. 그러다 청소년운영위원회 활동 외에도 자원봉사활동과 동아리 활동까지 청소년활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위원장의 진로가 궁금해졌다.
- 나)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학은 어떤 학과를 가고 싶니? - 위원장) 전 정책학과(정치외교학과)를 가고 싶어요! - 나) 오호! 그동안 정책에 관심이 많았으니 어울리는 걸! 근데 그 학과에 가서 어떤 일 하고 싶어? - 위원장) 선생님! 전 직업 때문이 아니라 더 깊은 학문을 배우고 싶어서 가려고 하는 건데요.
"아, 그렇지. 대학은 직업학교가 아니지. 더 큰 학문을 배우는 곳이지" 정신이 번쩍 났다. 청소년을 가르치려는 생각으로 다가간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거꾸로 청소년에게 뭔가를 배운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그 울림이 더 컸다. 그러면서 난 그동안 그렇게 살지 못했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하게 되었고 이후 청소년에게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
"선생님! 이곳은 금연구역인데요!" 청소년운영위원회 활동에 참여하는 중학생 청소년 한 명이 나를 수련관 내 외부 벤치 앞으로 데려가서 불쑥 던진 한마디였다. 그것은 청소년기관 내에서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해 분개이기도 했고 문제의 고발이기도 했으며 나에게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 청소년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청소년활동에 참여했던 이른바 '수련관 키즈'였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수련관 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더니 청소년운영위원회로 그 활동의 범위를 넓혀나간 청소년이기 때문에 수련관 직원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청소년운영위원회에서 그의 주된 관심사는 바로 '청소년시설이 청소년 공간으로 잘 활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모니터링 활동이었다. 청소년 참여를 보장하고 청소년의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적 기구인 '청소년운영위원회'의 위원다운 마음가짐이었다.
나이가 어리긴 했지만 난 그에게서 청소년의 눈높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더불어 잘못된 것을 그대로 나 두지 않고 고치려는 주인의식, 청소년운영위원회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기관 내 문제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또래 청소년들과 의견을 주고받는 과감성과 비판적 사고 능력까지. 그에게서 내게는 없는 다양한 역량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주장과 노력 덕분에 수련관 외부 벤치는 금연구역을 알리는 현수막이 설치되었고 이후 담배 꽁차의 양이 차츰차츰 줄어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기관 내 잘못된 안내판, 안전장치 보완, 청소 및 방역 강화, 휴카페 내 청소년운영위원회 추천 도서 비치 등이 모니터링 이후 하나씩 변화 나갔다. 그런 모습을 청소년운영위원회의 다른 위원들도 보고 배우고 있었고 덩달아 나도 역시나 배울 수 있었다.
#세 번째 에피소드
2020년 연말, 2030 혁신리더 MOA 활동을 함께 했던 리더 한분과 연락을 나누다 그가 최근 책을 한 권 발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31명의 청소년이 말하는 0924 청소년 이야기 <<청소년, 청소년을 말하다>>라는 책이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는 선뜻 책 선물을 하겠다고 했고 며칠 뒤 그 책을 읽어볼 수 있었다.
책 속에는 평범하기도 하고 또는 비범하기도 한 이야기가 31가지로 펼쳐져 있었다. 그 당당함을 무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꺼내 준 청소년들에게 고마웠고 한편으로는 뭔가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기회가 제한된 상황을 물려준 것 같아서 미안했다. 그러면서 책 속의 31가지 스승을 만난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자신의 삶에 솔직한 청소년의 삶이 나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준 것에 대해 감사했다.
특히 책 속의 31명은 내게 방황해도 괜찮다고, 넘어져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해줬다. 넘어질 게 무서워서, 실패하는 것이 두려웠던 나에게 무모한 도전이라도 일단 한번 해보라고 용기를 주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난 그 이후 과감하게 책 쓰는 작가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패해도 괜찮고 넘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그렇게 청소년은 내게(청소년지도사에게) 스승이 되었다.
에피소드에는 미쳐 밝히지 못한 수많은 청소년들이 내 인생에 존재해왔다. 이곳에 모두 담지 못함이 아쉽지만 마음속에는 늘 깊이 새겨져 있다. 그들이 보여준 많은 가르침으로 난 오늘도 청소년지도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내 삶이 그들과 함께해서 찬란할 것이다. 어제가 감사했고 오늘이 사랑스럽고 내일이 기대된다. 마치 청소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