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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Jan 17. 2022

청소년은 사실 혼자서도 잘해요!

'자기 조직 학습환경'에 관하여

자기 조직 학습환경

청소년문화의집으로 발령받고 열흘 가량이 흐르고 나니 제법 이 공간이 익숙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근무하다 보니 청소년수련관에 오는 청소년은 대부분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 방문한다면 문화의집은 공간을 누리고 즐기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기관에 방문하는 청소년은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어도 제집처럼 자주 이곳을 들락날락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 덕분에 자주 방문하는 청소년의 얼굴과 이름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 기관에 자주 놀러 오는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 A군은 나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이곳의 직원이니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며 나를 반갑게 당황시켰다. 기존에 이곳에 근무하던 선생님께서 그 아이의 특성을 말씀해 주기도 하고 그 이후로도 한두 번 더 놀러 와서 그 아이의 이름을 외우고 오면 반갑게 대해줬는데 오늘은 오자마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 A군) 선생님, 제가 월요일에 왔는데, 문이 잠겨있던데요.
- 나) 직원이면서 문집의 쉬는 날도 제대로 모르면 어떡해! 월요일은 문 닫는 날이라구!
- A군) 직원이긴 하지만 다 알 순 없죠.
- 나) (웃으며) 다음부턴 실수하지 말고, 외우고 있어야 해!
- A군) 네!


A군의 방문은 언제나 유쾌하고 즐겁다. 오늘도 짧은 대화 덕분에 문화의집에 활기가 도는 듯싶었다. A군은 언제나 그렇듯 손 소독을 하고 방명록을 쓰면서 콘솔 게임기로 눈길을 두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이미 다른 친구들의 차지했던 상황이었고 10분 정도가 남은 대기시간을 조금 지루해했다. 그래서 그런지 A군은 다시 내게 말을 걸어왔다.

- A군) 선생님! 전 직원이니까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일을 하면 될까요?
- 나) 그럼! 넌 직원이니 쌤이랑 함께 일을 해야지!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무엇을 하면 좋을까 보자! 음... 보드게임 정리할 수 있겠어?
- A군) 그럼요! 해볼게요!

우리 기관의 보드게임은 꽤나 많았다. 다양한 종류의 보드게임은 이용자들과의 놀이 한 판을 즐기고 난 후 원래의 자리에 있지 않을 때도 있었고 또 보드게임 속 아이템(이를테면 주사위나 카드, 말 등)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닐 때도 있어서 가끔 선생님들과 그것들을 정리하곤 했는데 A군의 일감 요청과 함께 나의 시야에 그것이 걸려든 것이었다. 어렵진 않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정리하긴 간단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난 방법을 알려주고 잠시 자리를 비우고 사무실에 들어와 하고 있던 A군이 오기 전에 하던 업무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게 5분 정도가 흐르니 A군이 지나가단 다른 선생님에게 자신의 업무 수행능력(보드게임 정리)을 뽐내고 있는 게 아닌가. 귀를 기울여 들어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A군) 선생님! (보드게임을 가리키며) 이거 제가 다 정리한 거예요!
- B선생님) 우와! 잘했는데 ^^
- A군) 이거 남자 선생님한테 꼭 알려주셔야 해요! 제가 했다고
- B선생님) 알겠어. 꼭 전할게~

이 이야기를 듣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난 자리를 박차고 보드게임 주변으로 향해 A군의 업적을 치하하는, 또는 정성을 다해 격려하는 말을 던졌다. 너무 잘했다. 역시 직원답다. A군이 없으면 어떻게 할 거냐 등등등.. 선생님들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한 A군에게 사무실에서 간식을 가져와 고마운 마음과 기특한 마음을 함께 전했다. 그랬더니 A군은 이후 시키지 않은 시설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콘솔 게임기의 차례가 다가와 오랫동안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스스로 그것들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면서 내게 또 이렇게 말했다.


- A군) 선생님! 책장에는 먼지가 있구요. 게임기 뒤편에도 청소가 필요할 것 같아요.
- 나) 아, 그랬구나. 선생님들하고 대청소를 한번 해야겠는걸
- A군) 네! 대청소할 때 저를 꼭 불러주세요! 저는 직원이니까요!!
- 나) 그럼 그럼. 네가 없으면 안 되지!!! ^^


A군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으니 불현듯 예전에 EBS에서 보았던 영상 하나가 생각났다. <EBS 지식채널e 공부,셀프,성공적> 이란 영상이었는데 인도의 한 교수가 [호기심은 과연 학습능력을 어디까지 미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빈민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했던 내용이었다.


컴퓨터 사용은커녕 영어도 모르던 아이들은 놀랍게도 몇 개월이 흐르자 컴퓨터 사용 능력을 스스로 깨쳤고 그것을 본 교수는 DNA 정보가 들어있는 컴퓨터를 또다시 설치하고 옆에는 성인 한 명이 마치 할머니처럼 "와, 어떻게 그걸 다했니?", "내가 너만 한 나이였을 때는 못했을 거야"라는 말을 던지며 격려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전문 교사에게 배운 아이들 이상의 결과를 나타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호기심만으로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학습 방식을 [자기 조직 학습환경]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이 바로 내가 하고 있는 <청소년지도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 했다. A군 옆에서 칭찬하고 격려했더니 그가 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펼쳐나가는 모습이 어쩐지 인도의 아이들과 같다는 생각도 더불어 하게 되었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동기를 유발한다는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단어들 앞에 꽤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청소년지도사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답을 얻은 느낌이다. 어떤 대단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것, 그것을 통해 청소년과 세상을 마주하게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어쩌면 너무나 기본적인 두 가지, <호기심 유발>과 <동기부여>가 충분치 않다면 그마저도 무용지물일 것! 그렇기에 그런 기회를 자주 제공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이후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할 것들이라는 사실에 신발 끈을 바짝 조여 본다.    


_by 레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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