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괜찮아지지 않는 것이 있다.
상실.
사람, 혹은 물건.
누구인가, 무엇인가를 잃은 상실감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예전으로 돌릴 수 없기에 처음 마음이 될 수 없다.
어렸을 때 곰돌이 동전 지갑이 있었다.
500원 동전만 모아 꽤 묵직한 것이 제법 돈이 되었다.
하필 언제 필요할지 모른다는 쓸데없는 준비성이 일을 만들었다.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다가 무게에 밀려 함께 툭 떨어졌나 보다.
며칠 동안 매일 같은 길을 반복하여 찾아보았지만 영영 내 손으로 곰돌이 지갑은 돌아오지 않았다.
물건을 잃은 슬픔도 사람을 잃은 슬픔은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을 것이다.
가을이 유난히 아픈 이유는 마음 한쪽을 도려내어 이별한 사람을 온전히 떠나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해 중 가장 풍성한 이맘때 우리 가족은 세상이 무너지는 일을 겪었다.
엄마가 떠난 후, 엄마를 더 많이 생각했다.
잊어야 한다고, 그래야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시간을 돌려 보았다.
엄마가 생각날 때에는 계절이 바뀌고 그때 되면, 가족 모두 추억이 깃든 장소나 음식을 보면 여지없이 생각이 났다.
엄마가 해 준 음식을 다시 먹을 수 없기에 그 서러운 마음이 복받치기도 했다,
엄마가 해 주던 음식으로 엄마를 기억하면서 정작 엄마가 좋아하던 음식은 뭐였지.
한 여름 가족들 눈치 보며 제대로 먹지 못 했던 콩국수, 가을빛을 닮은 단감, 그리고..
뭐가 있었지,
항상 가족들을 위해서 음식을 해 준 엄마를 위해 거의 해 준 적이 없었다.
물론, 교통사고 후 설탕과 소금을 구분하기 어려워 엄마가 직접 음식을 할 수 없어서 의도치 않게 밥상을 받았지만 엄마는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스파르타식으로 한 가지를 잘할 때까지 계속 같은 반찬을 하게 했다.
그래서 지금 엄마 음식과 비슷하게 맛을 내는지도 모르겠다.
딱 한번 우리 4남매가 엄마 생일상을 차린 적이 있었다.
6학년 때, 동생들과 엄마의 깜짝 생일상을 준비하기로 했다.
몇 주부터 용돈을 모아 케이크와 엄마가 좋아하는 떡, 메밀묵을 사고 마요네즈로 버무린 샐러드를 하기로 했다.
공부하고 있나 보면 넷이 모여 작당을 하고 있으니 이미 들킨 깜짝 생일 파티이었다.
케이크도, 떡도 좋았고 메밀묵도 있는 양념에 참기름을 잔뜩 뿌려 먹을 만했다.
문제는 샐러드였다.
하필 엄마가 좋아하는 물렁물렁한 황도 복숭아를 껍질을 벗기고 잘라 마요네즈를 뿌려 계속 저으니 점점 곤죽이 되었다.
세상에 없던 숟가락으로 먹는 샐러드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우리가 준비한 것을 맛있게 먹었고 친척들이 오거나 동네 아주머니들(대부분 동년배라 동네 아주머니가 곧 친구 엄마였다.)한테 처음 받은 생일상을 자랑했다.
시장이나 마트에 단감이 수북수북 쌓여 있는 것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나고 사가도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언제까지나 괜찮아지지 않을 일을 단감의 계절에 또 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