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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가을바람 May 01. 2022

인생 첫 국수

음식에 흐르는 시간


 봄이 제법 여물어 가는 4월과 5월을 지나고 있다.

이때를 농번기라 해서 논과 밭, 들이 무척 바쁜 시기이다.

어려서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큰 농사를 짓는 집으로 하루가 시작하는 새벽부터 부모님은 잠시 앉아 있을 시간도 없었다.

우리 1, 2, 3, 4호도 나름 자기 할 일이 있었고 또 나름대로 알아서 잘해야 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니들 알아서 하라고 내팽개쳐 두지도 않았다.

부모 역할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니 자녀로서의 일도 늘 함부로 하지 않았다.

K-장녀로 사는 지금도 보고 자란 것이 있으니 따라 하는 것도 있고 늘 가족이 먼저인 부모님의 심성을 이어받은 것일 게다.



 농번기 바쁜 시절에 엄마는 일도 일이지만 매 끼니와 일하다 중간에 먹는 들밥 혹은 새참이라는 것을 준비했다.

우리 집에서는 "새참"이라고 불렀는데 편하고 빨리 먹을 수 있는 국수가 주였다.

삶은 국수에 양념장을 올리고 그냥 비벼 먹거나 국물을 부어 잔치국수처럼 먹었다.

물론 준비하는 사람도 번거롭지 않아 손이 빠른 엄마도 많이 힘들지 않았고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부터 나도 혼자 그쯤은 할 수 있었다.

국물까지 준비 못 한 날은 양파, 애호박, 매운 풋고추를 간장 양념으로 짭조름하게 휘뚜루마뚜루 볶아 고명으로 올려 비빔국수처럼 간장 국수로 먹었다.



 국수에 양념장을 올린 간단하고 그리 대단하지 않은 한 그릇이지만 엄마 솜씨는 좋았다.

그리고 우리 집 들을 지나는 이웃들도 참 시간에는 오며 가며 한 그릇씩 드시고 가셔서 늘 생각보다 많은 양을 했다.

그래도 참이 남거나 또 부족한 적은 없었다.



 우리 넷이 어렸을 때도 밥 대신 특별히 조금 더 신경 쓴 음식으로 국수를 자주 해 먹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양념장이 매워 엄마는 우리를 위해 좀 특별한 국수를 했다.

그릇에 국수를 고 집에서 농사 지어 시장에 가 짜 온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리고 엄마 손으로 조물조물 무쳐 한 그릇씩 앞에 놓으면 오물오물 쪽쪽 빨대로 요구르트를 먹을 때처럼 잘도 먹었다.

입 가에는 반질반질 참기름에 반짝여도 맛있는 냄새에 온종일 짝거렸다.



(오랜만에 간장 국수 후루룩)



애호박, 양파에 간장 넣고 매실액 좀 넣고 기름에 휘뚜루마뚜루 볶아 국수 삶아 그릇에 담고 위에 얹어 살살 섞어 후루룩.

점심으로 먹기 딱 좋은 우리 집 메뉴이다.

이제 아버지는 몸에 안 좋아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 더 많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적어졌다.

그래도 미각은 절대 잃지 않아 늘 이러신다.

"국수는 양념장이 맛있어야 한다."

"국물은 멸치 비린내가 안 나게 해야 한다."

 하지만 간장 국수는 그런 아버지 입맛에도 괜찮으신가 보다.

 "국수 괜찮네."

어느덧 여름으로 가는 시간.

아무래도 자주 해 먹게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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