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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Apr 07. 2022

사람을 잘 ‘쪼이는’것이 능력인가

갑-을-병-정 중에 당신은 무엇이라 믿고 있습니까?

<커버 이미지-얼마 전 ‘게티이미지(gettyimages) 사진전’에서 찍은 사진. 전시실 내 한 코너에서 보게 된 ‘Guess Who I am?’(나는 누구일까요?)라는 질문>

친구의 티켓 선물로 아프게 된 후 처음 다녀온 전시회였다. 너는 누구냐고-나에게 묻는 것도 아닌데 이 질문 앞에서 아득해졌다.

마흔 중턱에 걸친 이 나이를 먹고도 시원하고 명쾌하게 대답할 수 없어서.

방향을 잘 알고 굳건히 가고 있다 생각했던 인생길이 갑자기 미로같이 느껴지는 지금이라서.





서비스업 종사자


내가 회사에서 하는 업무를 분야로 따지면 명확히 ‘서비스업’이다. 직장생활 내내 나는 밖으로는 회사의 고객들을 위해, 안에서는 직원들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월급을 받았다.


워낙 밝고 명랑한 성격에 사람들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그러한 직무가 성향에 잘 맞았다. 그에 더해 내 첫 사수의 투철한 봉사정신과 서비스 마인드를 보고 따라 배웠으니, 몇 년 후 나는 뼛속까지 서비스업 종사자구나, 싶은 순간들도 생겼다. 이를테면 타인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느라 정작 나는 쫄쫄 굶어도 그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기뻤다. 나도 똑같이 직원인데 동료들과 함께 둘러앉아 편히 즐기지 못해도, 직원들이 내가 준비한 대로 잘 먹고 잘 자며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하지만 말 그대로 ‘서비스’ 업이니 그 현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든 일들이 하나도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특히 아직 영글지 않아 물러 터진 초년생 땐 전직을 생각해야 하나 싶은 일들도 종종 겪었다.


뭔가 심사가 뒤틀린 VIP 고객이 일면식도 없는 내게, 회사 이름표를 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난데없이 야, 너,를 부르고 삿대질을 하며 폭언을 하기도 했고, 또 왠지 불만이 가득한 직원이 나에게 감정적으로 불평을 퍼부을 땐 서러움에 화장실로 가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앞선 글에 썼듯이 어디든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인(人)통사고’가 일어나게 마련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만큼 나도 더 의연해지고 단단해졌다. 쌓이는 시간과 경험으로 조금 더 성숙해지고서야 내 직업에 진심으로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https://brunch.co.kr/@e8474647f0b24ea/28





영업사원들의 고충-갑질 


내가 아직 신입이었을 때, 사내 행사로 영업부 사람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었다. 내근직은 잘 모르는 영업의 세계를 간접 경험하는 질의응답 시간에 한 직원이 나이가 지긋하신 영업부 총괄에게 물었다.


“영업을 잘하시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이에 그는 웃음기 없는 한마디로 좌중을 압도했다.


“그냥,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합니다!”


그 이후 지점장님들, 영업사원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고객한테 무릎도 꿇어 봤습니다.”

“유럽 아니라 달나라를 간들 고객들과 같이 가면 고행이지요.”

“친한 고객이 성희롱을 하려고 해서, 결국 지점장님께서 지역을 바꿔주셨어요.”


멀리서 말로만 듣던 ‘갑질’에 대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도가 센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좋은 고객들도 많이 있지만, 당시 영업사원들은 고객들의 공식적인 일정뿐 아니라 사적인 일정에 운전기사 노릇을 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 영업을 위해 단 2분 얼굴을 보려고 2시간을 기다리는 일은 허다하다 말했다.


회사 명함을 달고 매일 근무라는 전투를 하는 게 직장인이라면, 영업사원들은 ‘최전선에 서서 지뢰밭을 뛰어다니는 전사들’이라는 생각을 나는 그때부터 하게 되었다. 그들이 우리 제일 앞줄에 서서 하루 종일 총알을 피하며 전투를 하는 것이 사실상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이고, 그래서 나도 월급을 받는 것으로 이해했다. 나는 저절로 그런 전우애 같은 동료애가 샘솟아 영업사원들을 도울 수 있는 한 최선으로 돕겠다 마음먹었다.


아울러 공/사 구분 없이 누구든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사람들을 늘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 대하려고 했다. 우리 회사에서 나는 서비스업에 몸담고 있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대행업체들과 파트너사들의 ‘고객’이기도 했다. 업무적으로 타업체 사람들과의 접촉이 사내 동료들과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당연하지만, 그들을 만날 때마다 세상이 규정해준 갑-을을 떠나 항상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관계를 맺겠다고 다짐했다.





360 피드백- ‘친절하라는 주문 


아마도 많은 회사들에 비슷한 것이 있을 텐데, 우리 회사 인사고과 시스템에 ‘360도 피드백’이라는 평가 툴이 있다. 매해 필수로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종종 스스로를 평가하기 위한 도구로(+사실 대부분 상사들의 지시로) 필요시 자진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나의 직무에 있어서 360도, 즉 ‘위-아래-양옆-비스듬 옆’까지 업무적으로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들을 무작위로 뽑아 다방면으로 나에 대한 평가와 피드백을 받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며 언제고 한 번 이상 해야 하는 것이었고, 답변이 익명으로 제출되기에 더 긴장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몇 년 전 나도 상사들의 제안으로 ‘360도 피드백’을 실시했다. (해당 직원의 상사들은 무조건 평가 설문을 작성하게 된다.)

그리고, 결과지를 받은 후 두 가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생겼다.


나는 당시 팀장이었던 D와 그 위의 부서장에게 결과지를 그대로 첨부한 후, 부족한 점은 더 노력하고 잘하고 있는 점은 더욱 잘할 수 있도록 계속 신경 쓰겠다는 소감과 함께 보고했다.

이후 상사들의 호출을 받았다.


만족스러운 듯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던 부서장의 방에서 나와 그다음 회의실에서 D를 만났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는 무심히 한마디를 툭 던졌다.


“J님, 360도 피드백 결과가 생각보다?! 잘 나와서, 제가 놀랐네요.”


혹시나,는 역시 역시나,였다.

아무리 고생하고 어렵게 가는 프로젝트를 잘 마쳐도, 어떤 진상(!) 고객을 만나 시달려도, 또 팀과 부서를 대표해 회사의 봉사활동이나 과외활동을 해도… 칭찬이나 격려는 고사하고, 말로써 나를 끌어내리는 그 사람 다웠다. 부하직원인 나에게 좀처럼 회사의 크고 중요한 일을 마친 후에 고생했다, 수고했다 말하는 법이 없었다. 전사적으로 진행되는 새로운 일에 부서 대표로 참여하면 다른 팀장들은 그 직원에게 상을 주는데, 그녀는 나를 ‘착출 된 사람’이라 불렀다. 업무적으로 곤란한 일을 겪고 있을 때 보고를 하면 나의 상사이자 같은 팀으로서 방패가 되고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이 내게 주는 고통에 숟가락을 더 얹기도 했다.

그녀는 늘 내게 그렇게 한결같았다.


애초에 그녀와 내가 좋은 관계가 될 수 없던 이유는 ‘잘못된 만남’ 같았던 인연이나, 서로 성향이 극과 극으로 다르다는 것 외에도 이런 자잘한 사건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어쨌든 360도 피드백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강점 및 약점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것들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비교적 긍정적이고 높은 점수의 피드백을 받은 가운데, 서술식 답변 중 당혹스러운 내용을 하나 발견했다.


대행사들에게 조금 덜 친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친절이 아니라 덜 친절하라고?’


난 순간 내 눈을 의심했지만 분명히 ‘덜’이었다. 그러자 그전에 어떤 현장에서 마케팅 팀의 한 직원이 나에게 충고하듯 했던 말이 생각났다.


“J님, 사람들을 잘 쬐는 것도 능력이에요!”


“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잠시 머뭇하다 곧 지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었다.


“저는 사람이 사람을 쬐어 일이 잘 된다고 생각 안 합니다. 대행사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일을 함께 잘 완성해야 할 파트너들이고, 모두 그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프로들이에요. 그런데 제가 그들을 쪼인다고 더 좋은 결과를 낼까요?

기분이 상해서 잘 협력해야 할 일도 하기 싫어지겠죠.

저는 제 파트너들을  믿고, 일을 맡길 겁니다.”


나보다 몇 살이 많고, 나의 내부 고객이라 해서 내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까지 무조건 네네, 하며 고객만족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을 할 때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에 대한 나의 철학은 확고한 ‘햇볕 정책’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 영업사원들과 내가 겪은 일들로 미루어보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쬐는 것이 ‘능력’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을 잘 쥐어짜는 것을 보여줘야 내가 일을 잘한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있었다. 심지어 갑질을 하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조소 섞인 충고를 하기도 했다.


내 머리와 가슴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람마다 얼굴 생김새가 다 다른 만큼 성향도 백인백색이었다. 그렇게 다 달라서 세상의 인간관계가 그토록 다채로운 동시에 어렵고 힘든 것이겠지.





세상 사람들의 갑-을-병-정 놀이


결혼하고 경단녀가 되었던 나의 ‘브이자매’ 언니가 어느 날 술잔을 기울이며 내게 말했다.


“회사 나오고 보니까, 외국계 기업에서 클라이언트(client;고객)인게 최고 ‘갑’이더라.

정말 내가 외자사, 국내사, 대행사, 대-대행사 파견에 프리랜서까지 다 해보면서 그야말로 ‘갑-을-병-정’을 모두 겪은 셈이잖아…그런데 진짜 외국계 갑으로 사는 게 최고였어. 우리 여자들에게 그만한 회사가 잘 없다. 아이 혼자 키워야 하는 자기에게는 특히 더 그럴 거고.”


언니의 갑-을-병-정 경험을 들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회사 밖은 너무 춥고 힘들다고, 회사가 전쟁터면 밖은 지옥이라고 하던 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관계의 그물 안에서 살아간다. 가족은 물론 친구, 사회인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다.

어릴 땐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 마음만 맞추면 되는 줄 알았고, 그랬다고 믿었다. 하지만 순진 내지 미련한 내가 잘 몰랐을 뿐, 부부와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조차 권력으로 인한 불균형은 존재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물리적인 힘, 나이, 사회가 부여해 준 자리와 입장, 경제력…등등  모든 인간적이지 않은 것들이 인간들에게 힘을 부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사람이 옷 벗으면 너나 나나 다 똑같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몹쓸 갑-을-병-정 파워게임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나를 비롯한 세상 모든이들이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갑-을-병-정’ 따위는 아예 없어야 옳다는 것을.

혹시 있어서, 지금 갑이라고 생각해 우쭐한들 그 자리가 절대 영원하지 않으며 그 순서 역시 언제나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하나가 아니라 갑-을-병-정의 모든 모자를 겹쳐 쓰고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 쓰고 있는 모자를 벗고, 서로 정중히 대해야 한다는 것을.




갑-을-병-정 중에
당신은 무엇이라 믿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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