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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Jun 29. 2022

일상이 기적이라는 그 말

우울증약 10개월 복용 후 약을 끊어 낸 과정

<커버 이미지 - 몇 달 전 게티이미지 사진전에 만난 '일상(everyday life)' 코너에서 찍은 사진>

코로나 창궐 이후 모두가 일상의 소중함을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게 된 이 시대에, 쉽지 않았던 개인적 경험까지 더해진 후 난 정말 일상이 기적’ 임을 매우 일상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10개월의 약물 복용과 치료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들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른 지가 어느덧 10개월이 넘었다.

처음에는 1주, 2주마다 만나던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을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만나고, 또 한 달에 한 번 가던 심장내과는 3개월에 한 번으로 그 간격이 벌어졌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좀 어떠세요?”


매번 똑같은 이 질문에,


“그럭저럭 잘 지내요. 그냥 전반적으로 처음보다 많이 괜찮아진 것 같습니다.”


라고 대답을 할 수 있을 무렵부터, 선생님들은 다음 약속까지의 사이를 점차 벌렸다.

몸도 마음도 상태가 많이 회복되어 가고, 안정적이라는 증거이리라.


10개월 전엔 말 그대로 내가 ‘죽을 지경’이었기에 당연히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에 매달리는 심정으로 병원 치료와 약물 복약안내를 따르며 지냈다. 그저 선생님들이 나를 살려주는 절대자이겠거니 생각하고, 착한 어린아이처럼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건 실제로 회복하는데 너무나 중요했다. 어려움에 빠졌을 때 전문가의 말을 듣는 건 언제나 옳다.


몇 달이 더 흐르면서 스스로 모든 것이 괜찮아진 것 같아 약을 줄이거나 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심장내과 교수님도 마찬가지였다.


"고혈압 약을 먹으면서, 다른 변화나 불편함이 없이 일상이 유지되는 게 우리의 목표이고 그게 잘 되고 있으니까 잘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약은 계속 드시는 게 맞아요."


그러다 얼마 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서 나는 선생님께 또 한 번 여쭤보았다.


“선생님, 저 스스로 상태가 정말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잠도 잘 자고, 기분 문제도 전혀 없고요. 지금 먹는 약을 계속해서 먹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걱정이 되는데요…”


이에 선생님은,


“음… 그럼 잠을 주무시는 것에 별 문제가 없다면… 수면에 관련된 약을 먼저 줄여보는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씩이요.”


공식적이고 적극적으로 찬성 하시진 않았지만, 잠을 자는데 심한 문제가 없다는 전제 하에 감약에 대한 언급을 처음 들은 날이었다. 10개월 만이었다.






스스로를 믿고 감행한 감약 그리고 단약


취침 전 약 세 알 중 하나의 반을 잘랐다.

그다음 날에는 다른 또 하나의 반을 잘랐다.

(내 마음대로) 세 개 중 두 개 약물의 용량을 한알에서 반알로 줄였더니, 바로 그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7시간 이상 숙면을 취하던 상태에서, 갑자기 선잠을 자고 수면시간 역시 줄어들었다. 실로 즉각적인 금단현상이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 생각은 점차 더 굳건해졌다.


‘아, 이제 약을 그만 먹을 때가 되었어.’

‘나는 원래의 자리로 거의 다, 잘 돌아왔어.’

‘기분, 감정 문제가 전혀 없는데, 이렇게 여러 종의 우울증 치료제를 계속 먹어야 한다고…?!'


사람의 마음, 정신적인 문제가 언제 정말 싹 다 괜찮아지는지는 처음부터 나 스스로도, 의사 선생님들도 그 누구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다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취침 전 약을 줄이면서 1시간을 겨우 자는 나날들이 2주 정도 지속이 되었다. 그러니 어느 날은 무슨 마약(!) 중독자 마냥,  


'아 이렇게 잠을 못 자서 괴로운데, 그냥 다시 있는 약을 다 먹어버리고 잠 좀 편히 잘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나 스스로를 믿었던 것처럼, 이 시간과 상태는 스스로 고스란히 겪고 지나가야 끝이 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면의 양과 질이 엉망이 된 그 2주의 괴로움을 묵묵히 견뎠다.  

그리고 또, 자고 일어나서 먹는 대표 우울증 치료제를 그만 먹기 시작했다.


약을 끊으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전에 경험 하지 못했던 세계를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약을 중단함으로 인한 특별한 변화는 느끼지 못했다.

스스로 믿기에 그것은 오롯이 내가 단약을 감행하기 전 이미 상당 부분 정상 수준의 일상을 회복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고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일상을 되찾는 동안 나는 더욱 많은 나의 일상들을 되찾아 왔다. 육체적, 정신적 활동, 사회적 활동 모두를 예전보다 더 활발히 하면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내서 그런지, 약을 먹지 않아서 다른 신체적 정신적 변화가 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갔다. 그럭저럭 그 시간이 착하게 잘, 흘러가 주었다.  

밤새 뒤척이며 1시간 자던 잠은 2주가 지난 이후부터, 서서히 2시간, 3시간... 5-6 시간으로 늘어났다. 큰 무리 없이 살만한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일상유지, 그 목표  


약을 서서히 줄이고 또 완전히 끊은 후 이제 약 8주의 시간이 지났고, 추가적인 문제나 변화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결국 우울증 약물 칵테일 4종의 감약과 단약을... 나는 잘 해냈다.  


심장내과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다시금 생각난다. 약을 먹는다는 전제를 제외하고.


"내가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지낼 수 있는 게 우리 목표인 거예요. 그게 잘 되고 있으면, 우리는 잘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일상을 유지하고 지내면 되는 거예요."


다행히 나는 일상을 모두 되찾았고, 잘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물론 아직은 회사에 복귀해야 하는 일이 예정되어 있고, 돌아가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에 대한 숙제가 기다리고 있지만... 그건 또 그때 닥쳐서 해보려고 한다.


깨지고 다치고-암흑 속에 갇히고-그 어둠 속을 하염없이 기어 다니던 시간을 지나-서서히 빛을 향해 나와 걷고 또 이렇게 일상을 되찾는 과정을 통해 내가 삶에 대해 새로이 배운 것이 있다.


우리의 인생에서 어떤 문이 하나 닫히면, 쪽문이나 창문이라도 열리게 된다는 것.

때로는 문 하나가 닫히고, 두세 개의 다른 새로운 문이 한꺼번에 열리기도 한다는 것.

그래서 삶은 언제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며,

우리가 살아있는 한 어떻게든 살 길은 또 생기게 된다는 것을.


아무 일도 없었으면 생각지도 못 했고, 알 수도 없었던 것들을 겪고 깨달으며, 나는 한층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의 일상이, 일상적으로 잘 흘러가고 있다면 그게 우리 삶의 목표이고, 우린 잘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그저 그렇게 일상을 유지하고 지내면 되는 것이다.    


단약과 감약을 시도하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던 블로그를 소개합니다.

단약 디자인 연구소 코치(단디 코치)이자 '나는 수면제를 끊었습니다'라는 책의 저자인 정윤주 님의 블로그입니다.   


https://blog.naver.com/jasmin1211/222649825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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