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마치 곤충과도 같다. 머리, 가슴, 배로 나뉜 듯 나의 인생은 정확하게 4등분으로 나뉜다. 동정받던 10대 이전, 그런 그들을 경멸하며 흔들리던 10대, 방황하던 내 삶에 갑작스레 찾아든 혼돈과 맞닥뜨린 20대, 그리고 이제야 조금의 안정기를 찾은 듯한 30대 중반.
나를 향한 관심이, 나에 대한 관심이 아닌 동정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로부터 나는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 드라마를 좋아하고, 소설 속 주인공들을 동경해왔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다 디즈니 만화속에서나 펼쳐지는 이야기라며 세상을 초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른 아이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선 물거품이 되어버린 원작과는 다르게 두 다리를 얻어 왕자와 결혼을 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디즈니 인어공주를 본다거나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날던 알라딘과 자스민을 보며 그들을 동경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 인터넷 소설이 엄청난 유행이었다. 내 또래들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봤을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등 우리 또래에 엄청난 히트를 친 책을 써낸 귀여니를 가슴속 깊게 시샘하면서도 모순적이게 그녀가 쓴 소설들을 빌려 보곤 했었다. 나는 이것보다 더 잘 쓸 수 있는데, 이렇게 이모티콘을 남발하지 않아도 나는 멋지게 더 잘 쓸 수 있는데 싶은 착각을 하곤 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가 글을 더 잘 쓸 수 있다는 자만이 아니라 흐름을 읽지 못하고 그저 아이로만 남은 나의 오판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물 안 개구리였달까.
교내 글짓기 대회, 교내 방송부 작가로 지내면서 '작가'라는 그 호칭이 좋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해보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나는 지금도 글쓰기를 놓지 못하고 있다. 그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많지 않을지언정.
그래도 '이제는 그런 숫자 따위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라고 생각해왔지만 정작 나의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눌린 공감수가 적은 것을 보며 위축이 되는 건 내가 그저 말로만 쿨한 척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 되어버렸다.
뭐.. 어쨌든 나는 어른 아이의 가면을 쓴 채 살면서도 유아적인 행동을 버리지 못했었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그 해 가을, 나의 여동생이 전학을 왔다. 너무 갑작스러운 여동생의 등장. 다시 말하지만 나에게 형제는 없다.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나의 아버지가 재혼을 하셨고 새엄마에겐 나와 동갑인 딸이 하나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커왔다면 좋았겠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애는 동갑내기,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인 중학교 때 우리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 애와 나는 성향부터가 달랐다. 관심 있는 또래 친구가 생겨도 말을 걸지 못한 채 주위에서 빙빙 겉돌며 관심을 끌려고 하는 나와는 달리 그 애는 붙임성도 좋았고 남들 눈치를 보는 성격도, 낯을 가리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런 그 애의 성격이 부러웠지만 나는 어떤 내색도 하지 못했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살아왔기 때문에. 차라리 다른 학교로 갔었더라면 그 애와 내 사이가 조금은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하지만 어차피 부질없는 생각일 뿐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다른 그 애와 난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가 없었다. 쾌활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우울감이 보이는 나완 달리 같은 조건 속에 자랐어도(부모 없이 할머니와 함께 산 배경) 우울감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그 애가, 누구와도 서슴없이 친해지는 그 애가 그렇게나 미울 수가 없었다.
나보다 덩치도 한참 작은 데다가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1월생, 그 애는 11월생이라 1년 가깝게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그 애는 내게 언니라고 불렀으니 친구들이 이상하게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조손 가정에 무당의 손녀딸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혼 가정이라는 소문을 다시 감당하는 것이 너무도 버거웠지만 어른들이 같은 학교로 보낸 이상 친구들에게 아주 쉽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2년 후, 나에게 아주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그게 무엇이 되었던 나는 착각 속에 살아왔다. 작가가 될만한 재주가 있다고 믿은 것, 내 또래에 큰 성공을 거뒀던 귀여니를 질투하는 게 아니라 여겼지만 사실은 아주 많이 시샘하고 있었던 것, 나와 달리 사교성 좋은 그 애를 미워하지 않았다고 얘기했던 것 전부 다. 착각이 아니라 망각이었고 나를 나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 믿고팠던 것뿐.
물론 나의 10대가 교만과 시샘만으로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오늘 내가 나의 10대의 첫 키워드를 교만과 시샘으로 잡은 이유는 그렇게 어렸던 나에게, 그렇게 철없고 어리석게 못된 마음을 먹었던 한때의 나에게 그리고 그런 나를 닮은 듯한 지금은 그 나이들에게 낯선 누군가를 조금 덜 경계해도 된다고, 재주 많은 친구와 내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친구를 마음 놓고 부러워해도 된다고 전해주고 싶어서였기에.. 아무도 내게 그런 얘길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나는 너무도 험난하게 방황했었으니까.
아무도 미워하지 않아도, 마음껏 부러워해도 네가 너를 잃는 것은 아니다. 네가, 네가 아닌 것도 아니다. 나는 그걸 서른이 넘어서야 깨달았지만 나보다 더 현명한, 서른넷보다 나은 열여덟, 서른넷보다 현명한 열일곱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