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애칭이 처음부터 '아기'는 아니었다.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존댓말을 써왔던 사이인 만큼 상대를 부를 때 호칭은 'ㅇㅇ씨'였다. (지금까지도 휴대폰에 내 아내는 ㅇㅇ씨로 저장되어 있다)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리는 진짜 모습을 더 알게 되었고, 그럴수록 각자의 부족함도 더 드러났다. 예를 들어 다음 날 먹을 거라고 냉장고에 음식을 놔둔 채 일주일 넘게 깜박한다거나, 새 옷을 사놓고 1년 내내 안 입고 옷의 존재조차 까먹고 있다거나, 이불 빨래를 제때 못해서 여름에는 겨울이불을 겨울에는 여름이불을 덮는다는 등. 우리가 공부 머리는 좋을지 몰라도 생활력은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러면서 아내는 나를 보고 하나하나 다 챙겨줘야 하는 게 꼭 아기 같다면서 호칭을 ㅇㅇ씨 대신 아기로 부르기 시작했다. 반대로 나는 내가 아내를 챙기면 챙겼지 왜 내가 아기로 불려야 하냐며, 그럴 거면 나도 아내를 아기로 부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40대 중반 남편과 30대 후반 아내는 서로를 아기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아기를 갖기로 결심하면서부터 '아기'라고 말하면 상대방을 부르는 건지, 아니면 베이비인 아기를 지칭하는 건지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아내는 "아기가 생기면 아기는 아기에게 잘해줄 거 같아요."와 같은 말을 실제로 한 적도 있었는데, 나는 그 문장을 맥락 상으로 이해해야 했다.
우리 부부는 누군가 실수해도 큰 소리 한번 안 내고, 뭐 사고 싶다 그럼 다 사게 해 주고, 밥도 꼬박꼬박 어떻게 누구랑 먹는지 확인하고, 이렇게 매사를 다 챙겨주는 이유 중엔 '아기'라는 애칭도 한몫하는 것 같다. 마치 아기를 돌보듯 항상 관심을 가지고 애정스럽게 대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태어날 우리 아기도 우리 부부가 이렇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하면서 자라면 좋겠다. 아기가 보기에 엄마와 아빠가 서로 아기라고 부르고 자기한테도 아기라고 부르니깐 ‘아기’의 의미를 다른 뜻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