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갖기로 한 후부터 우리 부부는 생각이 많아졌다. 우리는 둘 다 직장인이기 때문에 아기를 가진다는 것은 직장 커리어를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해서였다.
먼저 아내는 임신을 하게 되든, 임신을 하지 못해 난임휴직을 하게 되든 이번 유학의 기회는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에게 유학의 기회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아내는 휴직 한 번 없이 10년을 열심히 일해서 이제 겨우 유학의 가능성이 보이는데 그걸 아기 때문에 놓아줘야 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비서관 자리에서 나오면 어떤 자리로 갈지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상황에 따라 가장 가고 싶은 자리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1년을 넘게 고생하면서도 어떤 업무를 해볼까란 행복한 고민을 하며 버텼는데, (미래의) 임신한 아내를 보살피거나 (언젠가 생길) 아기를 돌보기 위하여 차선의 선택을 해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 직장뿐만 아니라 생활 면에서도 아기를 갖기 위해서 둘 다 절제하는 삶을 살고 있다. 최근까지 둘 다 좋아하는 술도 아예 안 마시고, 차가운 음료가 아기를 가지는 데(?) 안 좋다고 해서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마시지 않았다. 나는 하루에 서너 잔 이상 마시던 커피 자체를 한 잔으로 줄였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회사 선배에게 조언을 들었는데, 아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을 바꾸거나 제한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난 아기 때문에 유학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남편도 아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 못 마시고 그러지 말아요. 이제 마음껏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셔도 돼요."
그렇다. 우리가 아기를 가지려는 건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기 때문에 우리가 세운 미래 계획을 수정하고, 현재 행동을 바꾸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 아내와 나는 이 부분에서 같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속에 있는 대화를 나누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동안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아기란 부담 때문에 속에 응어리가 져 있었나 보다. 홀가분한 마음에 아기가 금방 찾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