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먼저 병원부터 예약했다. 마침 난임 클리닉으로 유명한 산부인과 병원이 집 근처에 있어 거기 다니기로 했다. 그동안 우리는 아기를 가지려는 시도가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병원에선 내 나이가 40대 중반에 결혼도 5년 차라 그런지 우리를 당연히 난임 부부로 여겼다.
난임이라고 그러면 으레 남편보단 부인이 더 힘들다고 한다. 병원에서 받는 검사를 봐도 남성보단 여성에 대한 게 훨씬 많고 번거롭다. (정자 검사는 검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다) 약도 여성이 먹고, 주사도 여성이 맞는다. 주기적으로 하는 초음파 검사도 부인만 받기 때문에 사실 남편은 병원에 있을 필요도 없다.
거기다 인공수정이나 특히 시험관 아기를 시술받기라도 한다면 여성의 고통은 엄청나게 늘어난다고 한다. 삼신할배라 불리는 병원 원장님은 우리에게 시험관 아기를 권장하고 있지만, 망설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직은 아기를 못 가지는 상심보다는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는 아픔이 더 클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우린 난임 부부이면서도 지금까지 자연임신을 고집한다. 매달 원장님께 배란일이 언제인지 검사를 받고, 자연적으로 아기가 생기길 노력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도 안다. 계속 아기가 생기지 않으면 언젠가 가까운 미래에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을 것이고, 뒤늦게 '왜 이제 와서야 결심했을까'라는 후회를 할 것을 말이다.
부부가 함께 아기를 갖는데, 그 부담과 고통, 힘듦은 다 아내의 몫이 대부분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심지어 지금 나는 쉽게 연가를 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어서, 평일에 병원도 함께 가지 못한다. 실질적으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보니,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 해서 아기를 갖는 데 기여를 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아내가 시키면 군말 없이 하는 게 있다. 바로 병원 진료가 있는 날 새벽에 가서 대기 명단을 올리는 것이다. 세종시가 젊은 부부도 많고 다른 지역에 비해 출산율이 높다고 그러지만, 그만큼 난임 부부도 많아서 산부인과는 항상 붐빈다. 미리 예약도 받지 않고, 새벽 6시 반까지 대기하다 병원 문이 열리면 오픈런하듯 들어가서 대기 명부에 이름을 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병원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아내도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아침 시간에 병원에서 대기하는 것도 부담이 크다. 내가 병원에는 같이 못 가줘도 새벽에 일어나 이름을 적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거기다 새벽부터 명단을 쓰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다. 이들도 아는 것이다. 본인들이 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 가지라는 것을. 새벽에 만나는 동지들은 다들 씻지 않은 채 모자를 푹 눌러쓴 부스스한 모습으로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게 핸드폰만 바라본다. 그렇지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우리 남편들 수고한다, 다음에는 병원에서 만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