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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 아니고 배아 냉동

by 킹오황

동기가 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아내가 태아 냉동 준비한다고 병원 다니고 있어. 미국 나가기 전에 냉동시켰다가 돌아와서 시험관 하려고"


동기가 빵 터졌다. "아니, 무슨 태아를 냉동해요. 이 사람 큰일 날 소리를 하네. 배아 냉동 아니야? 태아를 냉동하면 범죄예요. 그것도 구분 못하는 거 보면 이 사람, 아빠가 될 준비가 안 되어 있구먼."


그렇다. 아직 아빠가 될 준비는 전혀 안되어 있다. 하지만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고 있다. 지난달에 우리는 난자와 정자를 채취하여 체외수정을 시키고, 결과적으로 건강(?)한 8개의 배아를 냉동했다. 최대 아이를 8명까지 가질 수 있겠다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나누면서도, 한편에 내 마음속에서는 진짜 내가 아빠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에 살짝 울컥한 감정이 올라왔다.




아직도 우리 둘은 아이를 낳는 거에 확신이 없다. 한 살이라도 젊고, 기회가 있을 때 차곡차곡 준비할 뿐이었다. 주변에서는 아이를 가져서 너무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너무 좋지만 또 안 가지는 선택도 고민해 보라며 조심스럽게 조언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우리만으로 너무 좋은데 누군가 한 명이 끼어들면 더 좋아질지, 아님 좋음이 줄어들지 전혀 감을 못 잡겠다.

육아에 진심인 한 후배가 말했다. 결혼하고서도 아내랑 너무 잘 지내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싸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연인이었던 아내가 육아라는 업무를 함께 하는 동업자로 변했기 때문이란다. 재미있는 건,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면 또 과거 연인이었을 때로 돌아간단다. 비록 지금 부부 사이가 좋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낳고도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뼈 때리는 조언을 남겼다.


그럴듯했다. 하나의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둘이서 협업하다 보면 의견이 맞지 않기도 하고, 기대치보다 낮게 행동하는 상대에게 실망을 할 수도 있을 거 같다. 특히 아내는 내가 일하는 걸 듣거나 보면서, 정말 같이 일하기 싫은 타입이라고 한다. 평소와 달리 너무 쓸데없이 진지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둘이서 서로 마주 보던 사이에서, 아이를 향해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나는 불확실성을 싫어해서 뭐든 새로운 것에 조심스럽고, 아내는 모험심이 강해서 도전을 즐긴다. 나보다 아내가 더 아기를 갖고 싶어 하기에 나도 그녀를 지지한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해야겠다. 나는 아이를 위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아이와 잘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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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오황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공무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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