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수제비 좋아하세요?

음식, 오해와 반전의 역사

by 조새늘

어렸을 적, 비 오는 날이면 엄마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반죽을 넣고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치댔다. 빗소리와 끓는 육수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뒤섞인 풍경 속에서, 나는 투덜거리기 일쑤였다.

“차라리 밥을 하지….”

나는 밋밋하고 끈적끈적한 밀가루의 맛이 거북스러웠다.

“수제비 먹으면 속이 든든하잖아.”

엄마는 따뜻한 국물이 속을 채워줄 거라며 권했지만, 나는 그 온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라왔다. 맛이라는 것은 단순히 혀끝의 감각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에는 전혀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김치찌개 집에서 첫 번째 반전이 찾아왔다. 김치찌개를 시켰는데 사장님께서 “오늘은 서비스로 수제비를 넣어드릴게요”라며 국물 위에 반죽을 띄워주셨다. 처음에는 “김치찌개에 이걸 왜 넣는 걸까?” 싶었지만, 막상 수저로 한 조각 떠먹어보니 세상이 달라졌다. 매콤하고 얼큰한 국물 속에서 수제비가 의외로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고춧가루와 김칫국물에 어우러진 반죽은 어렸을 적 먹던 심심한 맛과는 완전히 달랐다.

“어? 이거 괜찮은데?”

그날 나는 같은 반죽이라도 어떤 국물에 담기느냐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두 번째 반전은 평범한 점심 식사자리에서 벌어졌다.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였다. 모두들 수제비를 시켰고, 나만 혼자 비빔밥을 시켰던 적이 있었다. 그러자 한 동료가 “이 수제비 진짜 맛있어요. 한 입만 드셔보세요.”라며 나에게 권했다. 나는 계속 사양했지만, 여러 명이 한 목소리로 추천하는 바람에 결국 숟가락을 들게 되었다. 그런데 한 입 먹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멸치 육수에 감자와 애호박을 은근히 우려낸 국물은 맑고 깊었다. 반죽은 혀끝에서 사르르 풀리며 씹을수록 고소한 맛을 냈다. ‘아니, 수제비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 나는 깜짝 놀라며 한 사발의 수제비를 허겁지겁 다 먹어 버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전에 별로였던 음식도 시간이 지나면 혀끝에 달콤하게 스며드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그 이후로는 비 오는 날이면 종종 엄마가 끓이던 수제비 냄비가 떠올랐다. 수제비만은 엄마의 음식 중에서 그리워하지 않을 음식이라 여겼었는데.... 그것이 바로 세 번째 반전이었다.


그리고 오늘, 마침 비가 오는 관계로 나는 엄마처럼 밀가루를 스테인리스 그릇에 붓고 물을 조금씩 섞어가며 수제비를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밀가루에 물을 부으니 닿은 부분만 반죽처럼 변하고 나머지 가루는 여전히 뭉쳐지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데…’ 싶어 물을 더 부었더니 이번에는 물이 너무 많았는지 반죽이 걸쭉해져 손바닥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스테인리스 그릇에도 걸쭉한 반죽 덩어리가 주렁주렁 달라붙었다. 급히 밀가루를 추가해 비율을 맞추었지만, 반죽은 여전히 매끈하지 못했다. 잠시 고민해 보니 엄마가 식용유를 넣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올리브유를 조금 넣고 반죽을 다시 조물조물하자, 이전보다 손과 그릇에 덜 달라붙었다. 반죽이 조금씩 매끈해지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재미있는데?’ 나는 몇 번 더 힘을 주어 반죽한 뒤 랩을 씌우고 한동안 휴지시켰다. 그리고 냄비에 물을 올려 멸치와 다시마 대신 코인 육수를 넣었다. 엄마는 언제나 말씀하셨다. “국물이 많든 적든, 국물 요리에는 반드시 코인 육수를 써.”라고. 국물이 점점 투명한 황금빛을 띨 때쯤, 나는 감자와 애호박, 그리고 당근을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었다. 이제 반죽을 뜯어 넣을 차례였다. 손끝으로 반죽을 조금씩 늘여 툭툭 떼어내자, 그것들이 맑은 국물 위에서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밀가루 반죽은 처음엔 물속에서 제대로 형태를 잡지 못했다. 꿇는 물의 흐름을 따라 자꾸 흐트러졌다. 하지만 충분히 끓기 시작하자 비로소 단단해져 제 모양을 내기 시작했다. 국물 속에서 천천히 모양을 잡아가며 부풀어 오르는 수제비 반죽을 바라보며 문득 옛날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도 저 반죽 같았다. 물컹거리며 제 모습을 잡지 못하고 자꾸 흘러내리기만 했던 시간들, 형태를 잃어가던 꿈들, 덜 익은 채 남겨졌던 선택들이 있었다. 또래들이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가며 자리를 잡아갈 때에도 나는 여전히 어디에 속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공부를 시작했다가 포기했고, 취직했다가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흩어진 반죽처럼 나는 자꾸 제 모양을 잃어버렸고, 흔들리며 설익은 채로 남았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나를 기다려주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 했으면서 결국 포기했던 때에도 엄마는 나를 다그치지 않으셨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이야기지만, 엄마는 몰래 내 사주를 보러 가셨다고 했다. 겉으로는 아무 말 없이 미소 지어 주셨지만,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마음 졸이셨을까. 그래도 엄마는 나를 기다려주셨다. 언젠가 내가 제맛을 낼 거라고, 방황과 흔들림마저도 삶의 국물 속에서 나를 익혀줄 것이라고. 힘겹고 기억하기 싫었던 시간들이 사실은 나를 천천히 익혀가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완성된 수제비를 한 숟가락 입에 떠 넣었다. 감자와 애호박은 입 안에서 부드럽게 풀리고, 반죽은 국물과 만나 천천히 녹아든다. 바지락 하나 들어 있지 않은 소박한 수제비였지만, 그 담백한 맛이 생각보다 훨씬 깊었다. 어린 시절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맛이, 지금은 이렇게나 따뜻하게 느껴진다. 사람도 시간이, 환경이, 감정이 스며든 만큼 조금씩 다른 맛을 내니, 어쩌면 음식의 맛은 재료뿐 아니라 그것을 먹는 사람의 ‘시점’이 만들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수제비를 드시며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이 맛이 참 좋지?”

그리고 고개를 세차게 젓던 나의 모습도. 문득 궁금해진다. 엄마는 알고 계셨을까? 내가 언젠가 이 맛을 좋아하게 될 거라는 걸.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그 질문은 내 안에서만 맴돈다. 그립다는 마음이 국물처럼 은근히 끓어오른다. 나는 뒤늦게 배운 이 맛을 천천히 씹으며, 나 자신에게 조용히 대답했다. ‘응, 이제야 알겠어. 이 맛, 참 좋다.’ 이렇게 내가 어렸을 때 싫어했으나 나이 들어 좋아진 음식은 수제비만 있는 건 아니다.


"혹시 곱창 좋아하세요?" 김그레 씨에게서 온 카톡 한 줄에,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답장을 썼다.

"저 곱창 먹어보고 싶어요."

카톡을 받기 전까지 나는 곱창을 단 한 번밖에 먹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TV에 나온 연예인들은 곱창을 ‘인생 음식’이라며 극찬하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곱창을 즐기는 사람들은 내 안에서 힙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내 자격지심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도 곱창을 먹어본 아이들은 묘한 우월감을 풍겼다.

“나, 곱창 한 번도 안 먹어봤어.”

“난 먹어봤는데.”

“곱창 어때? 무슨 맛이야?”

“쫄깃쫄깃하고, 정말 맛있어. 너도 한번 먹어봐.”

매일 야간자율학습에 지쳐가던 나는 커서 언젠가 곱창을 즐길 줄 아는 여성이 되리라는 꿈을 슬쩍 꿔보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곱창은 멀고도 비싼 음식이었다. 집안 형편상 간신히 공부할 수 있었던 시절, 고등학생인 내게 곱창은 머나먼 사치였다. 결국 나는 생일을 명분 삼아 아빠를 졸라 가족들과 함께 곱창집에 가게 되었다. 아빠는 동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늘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곱창집으로 데려가 주셨다. 가게는 깨끗하지 않았지만 오래된 노포 특유의 묵은 분위기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곱창집은 이래야지, 이게 진짜 멋이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빠는 당당하게 “곱창 4인분 주세요”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테이블 위에 놓인 곱창 접시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양이 너무 적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게 4인분이라고?”내 말에 엄마가 답했다.

"너 몰랐어? 곱창은 원래 고급 음식이야."

그 한마디는 내 기대감을 더욱 부풀렸다. 하지만 첫 입을 때는 순간, 느끼한 기름기가 한가득 밀려들어왔다. 파김치를 곁들여도, 콜라 사이다와 함께 해도, 그 기름진 맛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괜히 아빠에게 미안해져 억지로 “고소하고 쫄깃하네”라고 말하며 맛있는 척했지만, 그 이후로는 곱창을 다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난 후 어느 날, 김그레 씨에게 갑자기 날아온 카톡 하나.

"혹시 곱창 좋아하세요?"

곱창? 잠시 머뭇했지만, 이 저녁을 놓칠 수는 없었다. '저도 곱창 좋아해요'라고 쓰려다 양심이 걸렸다. 대신 나는 솔직히 적었다. "저 곱창 먹어보고 싶어요." 이건 사실이었다. 나는 무엇이 되었든 그와 함께 저녁을 먹어보고 싶었으니 말이다.


약속 당일 저녁, 합정역 앞에서 김그레 씨를 만났다.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단정한 옷차림, 깨끗한 피부, 환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나도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나는 인생 두 번째 곱창과 마주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곱창을 아주머니께서 능숙하게 잘라주셨다. 나는 먼저 소맥을 한 모금을 넘긴 뒤, 어느 정도 마음의 각오를 하고 조심스레 곱창을 입에 넣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 맛있었다. 고소하고 바삭하면서도, 술을 부르는 맛이었다. 김그레 씨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곱창 맛있죠? 저는 곱창 진짜 좋아해요.” 그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을 보자, 문득 곱창이 세상 최고의 음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마음이 찔렸던 나는 그에게 담백한 양심 고백을 했다.

“사실 어렸을 때 곱창 한 번 먹어봤는데 너무 느끼해서 좋아하지 못했어요. 근데 지금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때는 술을 못 마셔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리고 그는 맥주잔에 능숙하게 소주와 맥주를 섞기 시작했다.

“저는 곱창 먹을 땐 항상 소맥 비율이 바뀌어요. 처음엔 소주 1, 맥주 2로 시작하죠. 그때는 곱창이 막 익기 시작할 때라 맥주가 잘 어울리거든요.”

그는 소맥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

“몇 점 먹다 보면 느끼해지잖아요. 그때쯤은 소주 1.5, 맥주 1.5. 딱 중간이 좋아요. 그리고 마지막엔 결국 소주만 남아요. 끝까지 가면 결국 깔끔한 게 남더라고요.”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곱창을 더 맛있게 즐기기 위해, 술의 비율을 조절한다니. 그건 단순한 주당이 아니라 미식가의 멋이었다. 그레씨는 젓가락으로 곱창을 집으며 덤덤하게 덧붙였다.

“저는 곱창이 솔직함을 부르는 음식이라 좋아요. 조개구이나 장어구이도 그렇고요.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걸 보면, 괜히 속 얘기하고 싶어 지잖아요.”

곱창, 조개구이, 장어구이 어쩐지 다 술이 잘 어울리는 음식들이었다. 그리고 술을 부른다는 건, 결국 사람을 조금 더 솔직하게 만든다는 뜻이겠지.


돌이켜보면, 수제비도 곱창도 결국 다르지 않았다. 맛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변했을 뿐이다. 혀가 아니라 내가 자라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맛들이 있는 것 같다. 음식은 언제나 제때의 나를 비춘다. 어떤 음식과, 어떤 사람과, 어떤 순간에 마주 하느냐에 따라 같은 재료도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익어간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안다. "혹시 곱창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단순히 취향을 묻는 말이 아니다. 내 삶에서 익어온 맛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에는 나도 그레 씨에게 물어보려 한다.

"혹시 수제비 좋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