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른 한 그릇
학창 시절, 한 달의 마지막 날이 되면 교실의 아이들은 저마다 새 급식 메뉴판이 나오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월요일엔 닭강정, 이 날은 스파게티... 돈가스 나오는 날은 언제지?"
이런 대화들이 교실 구석구석에서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 역시 받은 급식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그리곤 좋아하는 메뉴를 찾은 순간 형광펜을 들어 날짜 위를 쓱 긋곤 했다.
생각해 보면 당시 급식으로 나왔던 음식들은 대개 미지근하거나 종종 식어 있었고, 국이나 소스는 짜게 느껴지기 일쑤였으며, 몇몇 반찬은 유난히 달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런 부족함조차도 “오늘은 무슨 음식이 나오는 날”이라는 설렘 앞에서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특히 돈가스가 나오는 날,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교실은 항상 술렁이기 시작했다. 종이 울리기 몇 분 전부터 우리는 책상 아래로 발끝을 조금씩 내밀며 언제든 급식실로 달려 나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점심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 우리는 모두 기다렸다는 듯 복도로 튀어나가 급식실을 향해 전력질주했다. 그날만큼은 선생님조차도 아이들의 열정적인 행렬을 말리지 않으셨다.
급식실에서 받아 든 한 그릇의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친구들과 마주 앉아 웃고 떠들며 나눴던 재잘거림, 좋아하는 사람을 향해 몰래 보내던 수줍은 시선, “나중에 커서 뭐 될까?” 하며 막연한 미래를 이야기하던 순간들까지 모두 그 식판 위에 함께 담겨 있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은 그렇게 하루의 중심이었고, 그 한 그릇엔 우리의 우정과 꿈, 그리고 설렘이 가득했다.
다 함께 어울리는 식사 자리를 좋아했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고립을 택했다. 준비하던 공무원 시험에서 거듭 낙방하면서 자존심에는 서서히 금이 갔고, 그로 인한 자격지심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나를 한 발 한 발 멀어지게 만들었다. 무리 지어 몰려다녔던 지인들의 연락도 피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혼자 밥을 먹는 일이 늘어났다. 처음 혼밥을 시도하던 때, 나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주변 눈치부터 살폈다. 모두가 삼삼오오 둘러앉아 식사하는 풍경 속에서 유독 혼자 밥을 먹는 내 모습이 몹시 외로워 보일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한 채 밥을 먹으니, 혼자 먹는 밥상이 의외로 편안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난 그 순간, 식당 한구석 내 자리만 따스한 섬처럼 느껴졌다. 혼자 하는 식사는 그렇게 예상 밖의 평화와 함께 내게 찾아왔다.
그 무렵 내 일상은 매일 똑같은 날들의 반복이었다. 오전엔 인터넷 강의로 공부하고 오후엔 그날 배운 것들을 복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단조로운 하루 가운데 점심과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일만이 유일하게 내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이자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무엇보다 잡념이나 대화 없이 마주한 한 그릇의 식사는 음식 본연의 맛에 깊이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게 오롯이 음식과 나만 남은 조용한 순간은 비록 잠깐이지만 내게 주어진 확실한 자유였다.
결국 나는 힘겹게 붙잡고 있던 공무원 시험 준비를 내려놓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첫 출근 날, 퇴근길에서 속으로 '앗, 망했다'라고 생각했다. 출근 첫날 나와 나이도 취향도 다른 사람들 속에서 하루 종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지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 환경에서 어떻게든 사람들과 친해져 보겠다고 억지로 밝은 웃음을 지으며 살가운 척을 계속했고, 매사에 말 한마디 한마디까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 이후로도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려 애쓰는 날들이 이어졌다. 매 순간이 정신적으로 꽤나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피곤했던 시간은 바로 점심시간이었다. 1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마주 앉은 식탁에서 공감하기 힘든 대화에 억지로 끼어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 같이 먹다 보니 무엇을 먹을지 정하는 일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남의 입맛과 취향에 타협해야 하는 식사가 이어지자, 나는 점점 불만 섞인 투덜거림을 삼키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출근길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마음속 작은 외침이 튀어나왔다.
“아, 차라리 혼자 맛있는 거나 먹고 싶다!”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내게 진정 필요한 건 오롯이 ‘나’만을 위한 점심 한 끼라는 것을. 사회성도 예의도 잠시 내려놓고 내 안의 피로와 소음에서 도망칠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나만의 쉼표, 그것이 간절했다. 오전 회의 내내 공허한 마음이 진동처럼 울렸고, 뜨끈한 순대국밥 한 그릇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동료들이 있는데 혼자 따로 밥을 먹는다는 게 어쩐지 어색했다.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그래도 결국 참다못해 용기를 냈다. 그렇게 나는 입사한 이래 처음으로 혼자 회사 근처 순대국밥집 문을 열었다.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 사이로 고소한 들깨 냄새가 퍼졌다. 국물 위에 살짝 흩뿌려진 파 조각이 보글보글 끓으며 반짝였다. 조심스레 한 숟갈 떠 입에 넣는 순간, 그 따뜻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온몸을 데웠다. 쫀득한 순대와 담백한 내장을 씹을 때마다 마음속 응어리까지 조금씩 풀려나갔다.
국밥 한 그릇을 비우는 동안은 긴장도 눈치도 내 곁을 따라오는 법이 없었다. 혼자 먹는 점심 한 끼는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지친 나를 위한 작은 배려이자 귀한 위로였다. 그날 이후로도 나는 종종 혼자 점심을 먹으러 나가곤 했다.
텐동의 튀김 한 조각이 입안에서 바삭 소리를 내며 사르르 부서질 때면, 하루 종일 쌓였던 스트레스가 시원하게 풀린다. 알덴테로 삶아진 파스타의 탱탱한 면발을 씹으면 하루의 피로가 스르르 녹아버릴 때도 있다. 어린 시절 급식 시간에 단맛 가득한 토마토소스 한 국자에 감탄하던 나는, 갖은 종류의 파스타를 모두 다 맛보며 나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어른이 되었다. 오일의 담백함, 크림의 부드러움, 토마토의 새콤함 속에서 그날그날의 기분과 피로를 달래는 법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인간관계에서의 선택지는 좁아지지만, 식탁 위의 세계는 오히려 넓어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맛을 배우고, 나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일 말이다.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아도, 이 한 그릇의 온기만큼은 내 뜻이다. 아마 그래서 나는 음식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입맛을 지키려 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성공이라는 건 거창한 성취보다,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작은 자유들을 늘려가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