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금의 사랑, 한 잔의 이별
이것은 길고도 긴 나의 이별 이야기이다. 나에게는 너무나 사랑했지만 결국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존재가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이별을 외면했다. 사랑이 상처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고도 모른 척했다. 그러나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존재가 나를 살게 하는 힘이 아니라, 천천히 갉아먹는 독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나를 구하기 위해 그의 손을 놓았다. 오랜 사랑 끝에 남겨진 것은 깊은 상처와 공허함뿐이었다. 이것은 내가 겪은 가장 슬프고도 쌉싸름한 사랑 이야기다.
1. 첫 만남
첫 만남을 떠올리자면 사실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희미하다. 그의 이름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다. 나 역시 그 호감의 흐름 속에 자연스레 휩쓸렸다. 하지만 주변의 어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절대로 그와 가까이 지내지 마라. 그런 걸 가까이하면 큰일 난단다.”
“네 속이 너무 아플 거야.”
“잠도 못 잘 거야.”
어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경고는 늘 비슷했다. 하지만 나는 의문이 들었다. 그가 그렇게 해롭다면서, 정작 왜 모두 그를 사랑하는 걸까? 모순된 조언에 호기심은 오히려 커져 갔다. 하지만 '하지 말라'는 철저한 금기에 겁이 나 선뜻 다가설 순 없었다. 매혹적이지만 위험한 존재. 나는 애써 그에게 등을 돌렸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언젠가 그 금단의 영역을 기어이 넘고 말 것이라는 예감이 피어올랐었다.
2. 관심
세월이 흘러 몸이 자라듯 마음도 자랐다. 한때는 어른들의 경고를 순순히 믿었지만, 이제는 스스로 판단하고 싶다는 자의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를 향한 호기심은 그렇게 금기에서 비롯된 첫 반항처럼 피어났다. 나는 단짝 친구와 작은 모험을 결심했다. 우리는 몰래 그를 만나보기로 했다. 다만 처음부터 정면으로 말을 걸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우회하기로 했다. 우리는 슈퍼마켓에서 더위사냥 아이스크림을 하나 집어 들었다. 종이 포장을 벗긴 뒤, 반으로 뚝 잘라 나눴다. 갈색의 얼음층이 그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한 입 베어 물자 서늘하면서도 달콤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이렇게 맛있는 걸 대체 왜 우리더러 먹지 말라고 했던 거지?” 첫 입의 충격에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이 실은 이렇게나 부드럽고 달콤하다니! 기세를 탄 우리는 곧바로 다음 도전에 나섰다. 이번에는 목욕탕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반투명 비닐에 든 황갈색 커피우유였다. 어른들이 뜨거운 탕에서 나와 즐기던 바로 그 우유. 우유의 맨 끝 분을 잘라 노란색의 얇은 빨대를 꽂고 한 모금 들이켰다. 역시나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아직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다. 궁극의 관문은 따로 있었다. 편의점 진열대에 가지런히 꽂혀 있던 작은 파란 캔 하나, 그 유명한 레스비였다. 한 캔에 500원 남짓하던 그것을 우리는 일부러 집 근처가 아닌 옆 아파트 슈퍼에 가서 사기로 했다. 괜히 뭔가 잘못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심장이 쿡쿡 찔렸기 때문이다. 다른 슈퍼을 향해 가면서도 우리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만약 아줌마가 ‘왜 커피 사니? 몇 살이야?’ 하고 물으면, 엄마가 사 오라고 했다고 하자.”
“좋아, 그게 좋겠다.”
슈퍼 냉장고 문을 열고 레쓰비 두 개를 꺼내는 그 짧은 순간에도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 캔 두 개를 조용히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예상과 달리 점원은 우리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무 말 없이 돈을 받을 뿐이었다. 그렇게 드디어 금단의 그를 내 손에 쥐게 되었다. 우리는 한 손에 레스비를 들고 주변 아파트의 계단을 몇 층 올라갔다. 그리고 주변을 살핀 뒤 조심스럽게 캔 뚜껑을 따서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강한 달콤함 뒤로 은근히 퍼지는 쌉싸름한 맛이 혀끝을 감돌았다. 묘한 매력이 있었다.
"커피, 먹을 만 한데?"
"아니, 맛있지 않아?"
"어 맛있는 것 같아."
그러나 그날 밤, 설렘으로 부풀었던 마음은 금세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정신은 또렷한데 몸은 지쳐 쓰러질 듯한, 이상한 각성 상태가 찾아온 것이다. 침대에 누워도 좀처럼 잠들지 못했고, 눈만 멀뚱히 뜬 채 새벽을 맞았다. 겨우 새벽녘에 잠깐 눈을 붙이고 등교했지만, 하루 종일 머리는 멍하고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커피는 그렇게 내게 아찔하고 강렬한 첫 만남의 기억을 남겼다. 그날의 혼란스러운 경험 이후, 나는 한동안 그를 멀리하기로 마음먹었다.
3. 재회
몇 년 후,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한 기회로 다시 그와 마주하게 되었다. 점심시간, 한 친구가 노란색 커피믹스 봉지를 뜯어 우유에 타는 모습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시절 우리에게 ‘우유 급식’은 초코레스퀵이나 딸기맛 제티를 타먹는 시간이었다. 커피믹스를 우유에 넣어 마실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친구는 내 놀란 표정을 보고 웃으며 커피믹스 스틱 하나를 내밀었다.
“마셔볼래?”
나는 잠시 망설였다.
“나 예전에 커피 마시고 잠을 못 잔 적 있어서…” 하고 내가 주저하자, 친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건 초등학생 때라 그런 거지. 이제 우리는 중학생이잖아.”
'아, 나 이제 중학생이지? 이젠 꽤 컸잖아. 어쩌면 이번엔 괜찮을지도 몰라.'그때의 나는 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 안달 난 아이였다. 커피는 여전히 ‘금단의 음료’ 같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마실 줄 안다는 사실이 어른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묘한 설렘이 피어올랐다. 나는 그렇게, 다시 한번 그 금기의 문턱에 발을 들이기로 했다. 내 우유갑에 친구가 준 커피믹스 가루를 몽땅 넣고 세차게 흔들었다. 우유에 섞인 커피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커피우유 맛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날 밤 나는 푹 잠들 수 있었다. 열네 살의 내가 그렇게 두려움을 딛고 다시 그의 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그 후 나는 용기를 내어, 한때 나를 밤새 뒤척이게 했던 레스비 캔에도 재도전했다. 이번에는 밤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커피는 내 일상의 일부가 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지 달콤한 믹스커피 한 잔이었지만, 레스비를 넘어서 편의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커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캐러멜 마키아토, 카페모카, 카푸치노… 이름만 들으면 어려워 보이는 메뉴들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마셔보고 싶었다. 왠지 똑똑한 사람들이 마시는 음료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편의점 커피들은 실제로 각각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캐러멜 마키아토의 진한 단맛은 나를 황홀함에 취하게 했고, 카페모카의 초콜릿 향은 지친 마음에 달콤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폭신한 거품을 머금은 카푸치노는 내 입술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포근한 행복을 전해주었다. 매일 새로운 얼굴로 다가오는 그의 유혹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종적으로 정착하게 된다는 그 세계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이르렀다. 새파란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너무 써서 ‘대체 저걸 왜 마시는 걸까?’ 싶은 이해할 수 없는 차가운 검은 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편의점 커피의 달콤함이 점점 입안에 물릴 무렵, 얼음을 동동 띄운 아메리카노의 깔끔하고 쌉싸름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오히려 입맛에 맞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밤새 시험공부를 버티기 위해, 대학에 가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기 위해, 사회에 나와서는 매일 아침을 깨우기 위해… 어느새 내 책상 위에는 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놓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피곤할 때만 찾았던 그가, 어느덧 내 하루를 굴리는 기본 연료가 되어 버렸다. 시원한 한 모금을 넘길 때면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고, 이어지는 또 다른 한 모금은 공허한 속을 달래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하루 섭취량은 조금씩 늘어 갔고, 커피머신을 구입해 텀블러가 빌 때마다 곧바로 다시 채워 넣는 습관까지 생겼다. 무심코 마시는 양이 어느덧 하루 1리터를 훌쩍 넘기도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검은 유혹에 완전히 잠식되어 있었다.
4. 결별
하지만 행복했던 나날도 거기까지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화장실을 다녀와도 개운치 않은 찝찝함이 남기 시작했다. 그리곤 잔뇨감과 아랫배의 묘한 통증이 찾아왔다. 병원을 찾으니 방광염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금세 나았지만 두 달도 안 되어 증상이 재발했다. 그 후로 두세 달에 한 번꼴로 비슷한 고통을 반복해서 겪어야 했다. 혹시 큰 병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선생님, 이게 정말 단순 방광염이 맞나요? 혹시 다른 큰 문제… 암 같은 건 아니겠죠?”
“방광염 같은데, 불안하시면 CT와 내시경 검사를 해봅시다.”
CT 촬영은 금세 끝났지만 내시경 검사를 앞두고 나는 한없이 초조해졌다. 검사 당일, 차가운 입원복을 갈아입고 긴 복도 끝 수술실 앞에 혼자 앉아 대기할 때 심장은 미친 듯이 크게 뛰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눈부시도록 하얀 조명 아래, 공기에는 강한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다. 마치 낯선 수술대 위에 홀로 누워 있는 듯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곧 차갑고 딱딱한 내시경 기구가 몸속으로 들어왔고,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압박감과 통증이 밀려왔다. 나는 참았던 신음을 토하며 의자 손잡이를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그 힘겨운 사투 끝에 돌아온 결론은 다행히도 여전히 방광염이었다. “큰 이상은 없습니다. 다만 면역력을 키우셔야겠네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은 안도와 허탈함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면역력이라니…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대체 내 생활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꾸라는 걸까? 내 생활습관을 하나씩 점검해 보기 시작했다. 물을 너무 적게 마시는 건 아닌지, 과로나 스트레스가 문제인지… 여러 원인을 의심해 보았지만 일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습관은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애써 고개를 저었다. 현대인이라면 모두 아메리카노를 매일 마시지 않냐고 반문했다. 단순한 우연일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은 점점 더 짙어졌다. 유난히 피곤했던 어느 날, 나는 텀블러를 계속 채워가며 하루 종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시원한 한 모금이 정신을 깨우는 것 같아 안심했고, 또 다른 한 모금은 달콤한 위로처럼 느껴져 좀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낯익은 통증이 찾아왔다.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거려도 시원치 않았고, 잔뇨감이 계속 남아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불편할 만큼 찌릿한 통증이 이어졌다. 순간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몇 번의 작심한 ‘실험’ 끝에 내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며칠간 커피를 완전히 끊으면 거짓말처럼 증상이 사라졌고, 다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많이 마시면 어김없이 통증이 시작되었다. 물론 의학적으로 이것이 명확히 증명된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몸은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었고, 반복되는 패턴이야말로 내게는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가, 실은 내 몸을 좀먹는 독이었다니….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내가 상처를 입는 관계라니. 그렇게 나는 결국 그와의 이별을 결심했다. 참으로 괴롭고 힘든 결정이었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이제는 그를 내 삶에서 떠나보낼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5. 이별의 후유증
깊이 사랑한 뒤의 이별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실감을 남겼다. 영혼에 구멍이 뚫린 듯 공허함이 몰려왔다. 머릿속은 안개에 싸인 것처럼 흐리고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마치 내 정신의 20% 정도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매일 오후, 늘 그와 함께하던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입 안이 너무 무료해 미칠 것 같았다. 나는 그 권태를 어떻게든 달래 보려고 달콤한 것들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진한 다크 초콜릿을 입안에 가득 머금어 보기도 하고, 바닐라 아이스크림, 과자, 젤리, 음료수등 새로운 자극을 계속 입에 채워 넣었다. 하지만 결국 입안은 점점 더 텁텁해졌고, 내 몸은 나날이 무거워질 뿐이었다. 53kg이던 체중은 61kg까지 불어났다. 건강을 위해 내린 결단이 또 다른 방식으로 내 건강을 해치고 있었다. 마치 나쁜 남자와 힘겹게 결별한 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또 다른 나쁜 남자에게 기대어 버린 꼴이었다.
6. 극복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정상적인 삶을 되찾을 돌파구가 필요했다. 내가 커피와 이별한 건 이렇게 망가진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은가. 그 무렵 나는 건강을 위해 차로 눈을 돌렸다. 보리차, 캐모마일, 루이보스… 이름난 차들을 하나씩 시도해 보며 몸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새로운 위안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녹차라떼였다.사실 처음엔 ‘녹차’라는 이름만 보고 안심했다. 녹차라니, 당연히 몸에 이로울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막상 마셔 보니 예상밖으로 진한 단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 단맛은 녹차 특유의 씁쓸함을 살짝 품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묘하게 첫사랑 같았던 레쓰비가 떠올랐다. 녹차라떼는 커피와 분명 다르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었다. 새로운 만남이지만 어딘지 익숙한 설렘이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명히 이전과 달랐다. 나는 경험이 쌓인 만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아마도 녹차라떼의 부드럽고 달콤 씁쓸한 맛을 완성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럽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럽은 절반만 넣고, 우유 대신 담백한 오트밀크로 바꾸었다.
그리고 하루에 점심 식사 후 한 잔만 마시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번엔 더 지혜롭게 사랑하고 싶었다. 내 몸을 해쳐 가며 빠져드는 사랑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지난날의 실패를 떠올리며, 나는 절제하는 법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녹차라떼는 내 취향의 낯익은 맛과 새로운 설렘이 공존하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한때는 무모하기만 했던 사랑을 조금은 성숙하게 이어가는 법을 배워갔다. 절제는 차가움이 아니라, 오래도록 사랑하기 위한 또 하나의 온기라는 사실도 함께.
한편 요즘은 디카페인 커피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내가 그와 이별을 결심했던 당시만 해도 이런 선택지는 드물어서, 새삼 ‘차라리 몇 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아주 많이 달라졌다. 가끔 식당에서 “후식으로 커피 드릴까요?” 하고 물어와도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아주 이따금 너무 느끼한 음식을 먹어 속이 더부룩할 때에는, 필요에 따라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켜 그의 그윽한 향과 맛을 잠깐 추억해 볼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애틋하게 집착하는 일은 결코 없게 되었다. 길고 길었던 혼돈의 끝자락에서야 비로소, 나는 이 이별을 온전히 극복해 냈다. 이제는 그를 떠올리며 담담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