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망각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던 간식은 단연 엄마표 떡볶이였다. 엄마의 떡볶이를 떠올릴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스치는 장면은 바로 빨간 케첩 병이다. 엄마는 늘 떡볶이 양념을 만들 때 케첩 한 줄을 쭉 짜 넣곤 하셨다. 매콤한 고추장 양념에 새빨간 토마토케첩이 뒤섞이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장면을 처음 봤던 날,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떡볶이에 케첩도 넣어?”
“그럼, 그래서 엄마 떡볶이가 맛있잖아.”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집에서 엄마의 떡볶이를 먹는 일이 뜸해졌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궁금해진 나는 바로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우리 어렸을 때 엄마가 케첩 넣은 떡볶이 자주 해주셨잖아. 그런데 왜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안 해주셨을까?"
동생의 답변은 나를 멍해지게 만들었다.
“떡볶이에 케첩을 넣어?”
내가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엄마표 떡볶이의 특징이 동생의 기억 속에서는 완전히 지워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급하게 메시지를 다시 보냈다.
“엄마가 떡볶이에 케첩 넣어야 더 맛있다고 하셨었잖아. 너 기억 안 나?”
하지만 동생은 영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되물었다.
“떡볶이에 케첩을 넣는다고? 그게 어떤 맛인데?”
그 물음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릴 적 그렇게나 자주 먹었던 간식인데, 정작 그 맛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도 익숙했던 맛이 전혀 기억나지 않게 되었다는 걸 느낀 순간, 나는 머리가 아찔해질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내 기억력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니.... 그 사이 동생은 한마디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중학교 이후로는 엄마가 떡볶이를 안 해주신 게 아니라 우리가 집에 잘 안 들어갔었잖아.”
그제야 퍼즐이 풀렸다. 고등학교 때는 늦은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인이 되면서부턴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집밥을 먹을 기회가 줄어들었던 것이었다.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떠올리지 못한 이유였다. 그 뻔한 진실이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를 불러일으키더니 내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그리고 케첩 떡볶이의 추억을 나를 제외한 유일한 경험자인 동생이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새삼 쓸쓸하게 느껴졌다. 당연히 공통의 기억이라 믿었던 장면이, 어느새 나 혼자만의 기억으로 바뀌어 있었다.
설마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걸까? 케첩 떡볶이가 정말로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나는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인터넷을 뒤지자 여러 요리 블로그에서 케첩 넣은 떡볶이 레시피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고추장의 매운맛을 케첩의 달콤함으로 부드럽게 중화시키고, 새콤달콤한 풍미를 끌어올린다는 설명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그리고 어린 시절, 매운맛을 잘 못 견디던 나와 동생을 위해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덜 넣고 대신 케첩으로 맛을 내주셨던 엄마의 혜안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의 케첩 떡볶이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우리들을 향한 세심한 배려와 사랑이 녹아 있는 추억의 맛이었다. 비록 이제는 그 떡볶이의 맛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 깃들어 있던 따뜻한 마음만큼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렇듯 오랜 세월 입에 달고 살았던 음식의 맛조차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데, 하물며 단 한 번 스쳐 지나갔던 새로운 맛은 얼마나 쉽게 잊혀질까? 놀랍게도,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최근에 경험한 적이 있다.
하노이로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나는 구글 지도에서 ‘떰비(Thumby)’라는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의 리뷰를 읽게 되었다. 놀랍게도 수많은 메뉴들 중에서 가장 많은 찬사를 받은 요리는 다름 아닌 두부튀김(Crispy Tofu Dipped in Green Onion Sauce)이었다.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에서 가장 평범해 보이는 재료인 두부가 최고 평점을 받고 있다니, 믿기지 않아 처음엔 두 눈을 의심했고 곧 궁금증에 휩싸였다.
며칠 후 찾아간 떰비 레스토랑은 정갈하고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두부튀김을 기다리면서 ‘과연 두부로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하고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잠시 후, 접시에 오른 두부튀김은 겉보기엔 여느 두부 요리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한 조각을 집어 소스를 살짝 적셔 입에 넣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바삭하게 튀겨진 겉면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동시에, 믿을 수 없을 만큼 크리미 한 속살이 혀 위에서 사르르 흘러나왔다. 그 부드럽고 고소한 질감은 내가 지금껏 알던 투박한 두부의 상식을 완전히 깨뜨렸다. 그리곤 방금 전까지 평범하게 보였던 두부튀김이 황금빛으로 빛나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 간 그레씨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바라보다가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거지?”
그로부터 몇 달 뒤, 대만 여행 중에 ‘진천미(眞川味)’라는 식당을 찾았을 때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놀랍게도 그곳의 시그니처 메뉴 역시 '튀김 생두부'였다. 메뉴판에서 그 이름과 음식의 사진을 보는 순간 하노이 떰비에서 맛보았던 두부튀김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실제로 접시에 나온 요리의 모양도 놀랍도록 흡사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젓가락으로 한 점을 집어 입에 빠르게 넣었다. 역시나 겉은 바삭하게 부서졌고 속은 푸딩처럼 스르르 녹아내렸다. 분명 맛있었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느꼈던 그 맛과는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다. ‘뭐가 다른 거지?’ 하는 의문이 피어올랐으나, 곧 내가 그 차이를 제대로 설명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몇 달 전 하노이 떰비 두부튀김의 구체적인 맛이 이미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느꼈던 겉의 바삭한 식감 그리고 속의 부드러운 느낌에 대한 막연한 감탄만이 남아 있을 뿐, 소스의 풍미나 재료의 미세한 차이 같은 디테일은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환상적이고 독특한 맛이라며 놀랐던 나 자신이 무색할 정도로 이제는 그 맛의 실체를 붙잡지 못했다. 결국 맛의 차이를 알아내고 싶다는 내 각오는, 나의 기억의 공백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이러한 미각 기억의 부재에 적잖이 낙담한 나는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단서들을 조합해 보니, 대만 진천미의 두부튀김에는 ‘계란두부’가, 하노이 떰비의 두부튀김에는 ‘연두부와 양파 소스’가 쓰였다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정보들 역시 리뷰에 기반한 추정이었기에,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글로만 보면 두 요리의 차이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차이를 혀끝의 기억으로 발현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돌아와 직접 두부튀김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유튜버 ‘휴일요리’의 영상을 참고했는데, 영상 속에서는 계란두부를 직접 만들어 사용했지만 나는 시판 중인 풀무원 제품으로 대체했다. 조리법은 비교적 단순했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송송 썬 대파를 볶아 향을 낸 뒤, 물을 약간 붓고 설탕, 진간장, 굴소스, 참기름을 넣어 걸쭉해질 때까지 졸였다. 그렇게 완성된 진한 소스를 노릇하게 튀긴 두부 위에 부어주었다.
하지만 완성된 두부튀김의 겉면은 기억하던 것보다 덜 바삭했다. 바삭함이 부족하다고 느낀 나는 전분을 고루 묻혀 두부를 다시 한번 튀겨 보았다. 부풀어 오른 튀김옷은 탕수육처럼 두텁게 살아났지만, 대만에서 맛본 두부튀김에 비해 훨씬 과하단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은 모두 만족스러웠다. 전분을 입혀 바삭하게 튀긴 두부도, 처음 시도한 소박한 형태의 두부튀김도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흥미로웠던 사실은, 영상 댓글들에서 이 조리법이 ‘대만 현지의 맛’을 잘 재현해 냈다고 평가하는 의견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만든 두부튀김은, 대만에서 먹었을 때 느꼈던 이국적인 감각보다는 오히려 익숙하고 친숙한 한국적인 풍미가 강하게 다가왔었다. 그 차이가 내가 사용한 두부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이 흐르며 기억 속 미각이 조금 변형된 탓인지 확실치는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어긋남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했다. 꼭 기억 속 맛과 완벽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내가 직접 만들어 낸 두부튀김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맛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요리를 하면서 대만 골목을 헤매며 식당을 찾아다녔던 그날의 풍경이 되살아났었다. 익숙한 주방 한편에서 희미해진 기억조각이 생생하게 피어오르던 순간, 나는 그 차이를 더 이상 실망이 아니라 선물처럼 느끼게 되었다.
한껏 고무된 나는 이번에는 하노이의 떰비에서 먹었던 두부튀김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번엔 AI의 도움을 받아 레시피를 구성했다. 연두부에 전분가루를 묻혀 노릇하게 튀긴 뒤, 다진 양파와 마늘을 식용유에 볶아 향을 낸 다음, 간장과 설탕 그리고 식초를 넣어 걸쭉하게 졸인 소스를 두부 위에 얹었다. 마지막에 고추를 약간 더해 매콤한 풍미를 살렸다. 촉촉한 연두부 안에 감도는 따뜻한 열기, 달큼한 양파소스의 풍미, 그 위에 맴도는 은은한 감칠맛이 입 안을 채우며 비록 기억 속의 그 맛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훌륭한 맛있는 두부요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잊고 있던 나의 추억의 맛을 더듬어 가던 여정은, 최종적으로 어린 시절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케첩 떡볶이로 이어졌다. 젊은 시절의 엄마를 떠올리며 나는 조심스레 냄비를 꺼내고 재료들을 하나씩 챙겼다. 떡볶이떡과 어묵, 대파를 손질한 뒤, 고추장 2큰술, 고춧가루 1큰술, 케첩 2큰술, 설탕 1큰술, 간장 1큰술, 물 2컵을 넣어 양념을 만들어 한소끔 끓였다. 이어 떡과 어묵을 넣고 국물이 자작해질 때까지 졸이다가, 마지막에 송송 썬 대파를 더해 마무리했다. 완성된 케첩 떡볶이는 매콤 달콤한 맛 뒤에 은근한 새콤함이 퍼지며 입맛을 당겼다. 다만 매운맛이 다소 강하게 느껴졌다. 어릴 적 내가 이런 강도의 매운맛을 즐길 수 있었을까 싶었지만, 그런 의문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중요한 건 정확한 재현이 아니라, 그 맛을 좇는 동안 마음속에서 다시 피어오른 풍경들이었으니 말이다. 떡볶이를 먹으며 엄마와 나눴던 사소한 이야기들, 주방을 가득 채우던 향, 엄마의 분주한 손길, 따뜻하게 불이 켜진 부엌의 온기까지 기억 속의 장면들이 잔향처럼 천천히 되살아났다.
혀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자극은 불꽃처럼 짧게 타오르지만, 그 순간 함께 나눈 온기와 감정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그래서 나는 그 여운을 오래 품기 위해 다시 손을 움직인다. 이번엔 냄비 대신 펜을 잡고, 음식 대신 문장들을 만들어 나간다. 나는 요리를 하듯 글을 썼다. 잊힌 음식들, 그리고 그 맛에 얽혀 있던 추억과 마음들을 한 줄 한 줄 기록하며 나만의 식탁을 다시 차렸다. 언젠가 잊고 있던 맛이라도, 글로 남겨둔 문장들을 다시 읽는 순간 그때의 추억이, 그 순간의 온기가 되살아 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기록은 기억과 망각 사이에 놓인 또 하나의 시간, 사라지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매개(媒介)의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