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되는 인생

매실주 그리고 노래

by 조새늘

우리집 베란다 한편에는 오래된 유리병들이 줄지어 놓여져 있다. 한때 매실로 가득했던 그 병들엔, 이제 매실을 건져낸 술만이 고요히 남아 있다. 세월이 흐르며 투명하던 빛은 짙은 호박색으로 변했지만, 매실주 속에는 여전히 사라진 매실의 향이 은은히 머물러 있다.


매실철이 오면 엄마는 어김없이 아빠를 불러 생매실들을 내밀었다. “당신, 이거 좀 닦아줘.”시큰둥한 표정의 아빠는 투덜거리면서도 이내 베란다로 나가 큰 대야에 물을 받았다. 그 안에서 매실을 한 알 한 알 굴리듯 씻고, 꼭지를 이쑤시개로 정성껏 떼어냈다. 깨끗하게 닦여진 초록빛 매실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매년 6~7월쯤이면 볼 수 있는 우리집 고유의 풍경이었다. 아빠가 깨끗이 닦은 매실을 유리병에 차곡차곡 담으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담금주를 콸콸 부었다. 술이 매실을 단단히 감싸 안으며 투명한 병 속에서 매실주가 탄생했다. 그리고 시간은 그 술을 천천히 달게 익혀 주었다. 나는 베란다를 지날 때면 그 병을 신기한 눈으로 들여다보곤 했다. 맑던 술빛이 점점 짙어지고, 매실이 천천히 가라앉아 가는 모습이 어린 내게는 작은 오브제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매실주를 담그는 날이면 주방 한켠에서 매실청도 함께 담그셨다. 설탕과 매실을 번갈아 켜켜이 병에 담으면서 “이건 나중에 소화가 안 될 때 물에 타 마시면 좋아.”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나도 매실청을 물에 타 달달하게 마시는 것을 무척 좋아했었는데, 그 음료가 워낙 달콤하니 당연히 매실도 달달한 과일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매실주와 매실청을 담그던 어느 날, 나는 맛있어 보이는 생매실 한 알을 집어 베어 물었다. 그 순간 혀끝이 오그라들 만큼 쓰고 떫은 맛이 입 안을 강타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매실이 달다고 느꼈던 건 매실의 맛이 아닌 설탕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침 그때 주방으로 들어오시던 엄마는 내가 생매실을 베어 문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치셨다. “그거 먹으면 안 돼! 당장 뱉어!”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란 나는 입 안에 있던 매실을 바로 바닥에 뱉어냈다. 몸에 큰 이상이 생긴 건 아니었지만, “먹으면 안 되는 것”이라는 엄마의 한마디가 어린 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덜 익은 청매실에는 ‘아미그달린’이라는 독성성분이 들어 있어서, 그냥 먹으면 구토나 현기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매실은 반드시 설탕에 절이거나 담금주에 담가 독을 제거한 뒤에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단지 신기했다. 설탕의 달콤함이 독을 녹인다는 건 왠지 그럴듯했다. 하지만 매실이 독한 술과 만났을 때 매실의 독성이 제거되고 건강주로 변모한다는 사실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인생 역시 그런 역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서로 다른 상처가 만나 위로가 되고, 어긋난 성격들이 만나 균형을 이루며, 때로는 결핍이 결핍을 채운다.


나는 오랫동안 노래와는 인연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그 믿음의 씨앗은 초등학교 시절 합창단 부활동에서 시작된다. 친했던 친구들이 단체로 학교 합창부 오디션을 보러 간다기에 나도 덩달아 호기심에 따라나섰다. 오디션 결과, 나는 메조소프라노 파트로 배정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음치일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고 문제가 터졌다. 합창 연습 도중 선생님이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말씀하셨다. “지금 누군가 음정이 안 맞아요. 다시 한번 해봅시다.” 모두 다시 처음부터 불렀지만 같은 지적이 계속 반복되었다. 순간 ‘설마 나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몰래 입만 벙긋벙긋거린 채 소리를 내지 않아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연습이 아무 막힘없이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작은 목소리로 내 파트를 넣어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이 연습을 중단하며 말씀하셨다. “거기 누구야, 또 음정 틀린 사람 또 있어.” 확실히 알았다. 문제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였다.


그날 집에 오자마자 나는 영어 공부용으로 사 두었던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의 녹음 버튼을 누른 뒤 혼자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재생하여 들어보았더니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내가 부른 노래는 음정, 박자, 고음 모두 형편없었다. 심지어 타고난 음색 마저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합창단 오디션에 왜 붙었는지조차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리고 그때 처음 깨달았다. ‘아, 나는 음치구나.’ 어린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낙인을 찍었다.


그 후 합창단 연습 시간에는 입만 뻥긋거릴 뿐 끝내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합창단활동은 내게 점점 재미없고 수치스러운 시간이 되어 갔다. 나는 그렇게 노래와 완전히 멀어졌다.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 놀러가도 결코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대신 탬버린을 손에 쥐고 흔들며 분위기 띄우는 역할을 자처했다. 흥은 많은 편이라 그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사실 탬버린만큼 편리한 악기도 없다. 박자만 맞추면 가창력은 감쪽같이 감춰지고 분위기는 한껏 살려주니 말이다. 나는 스스로 ‘노래방 공식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했다. 가끔 누군가가 “너도 한 곡 불러봐”라고 권할때면, “난 춤추는 게 더 좋아”라며 웃어넘겼지만 속마음 한구석은 쓰라렸다. 노래를 못한다는 열등감이 마음속에서 늘 곪아 있었다.


견디다 못한 나는 대학생 때 결국 아르바이트비를 털어 보컬 트레이닝 강습까지 받아봤다. 나는 레슨 때마다 “입을 더 크게 벌려 보세요”라는 지적을 가장 많이 받았다. 의식하고 입을 크게 벌려 노래하려 하면 금방이라도 턱뼈가 빠질 듯 욱신거렸다. 바로 그 순간 내가 내린 결론은 얄팍하지만 단호했다. ‘아, 난 애초에 신체적으로 노래를 잘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노력해도 소용없겠네.’ 그렇게 나는 노래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접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레씨가 “불러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는 다소 로맨틱한 말을 하며 나를 코인노래방에 데려갔었다. 그는 놀라울 만큼 노래를 잘 불렀다. 거의 프로 가수를 방불케 할 정도의 가창력이었다. 몇 곡을 연달아 부른 그는 이내 목이 쉬었다며 “안 부를 거면 나갈래?”라고 물었다. 그 순간, 내 안의 짠순이 본능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몇 곡은 남아 있었고, 이미 투입된 돈이 떠올랐다. 데이트의 분위기나 낭만보다도 그 몇 천원이 아까워서, 나는 조용히 곡 번호를 눌렀다.


정말 오랜만에 잡아 보는 마이크였다. 가사도 군데군데 놓치고, 고음 부분에서는 목소리가 계속 갈라졌다. 음정이 불안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잔뜩 주눅이 들어 노래하면서 곁눈질로 그레씨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얼굴을 찌푸리고 있지는 않을까? 내 노래를 창피해하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정작 그는 내 노래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내가 열창하는 동안 옆에서 휴대폰 화면을 보는데에만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이 사람은 내가 노래를 못하건 말건 신경도 안 쓰는구나!” 그 깨달음과 함께 묘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레씨의 무심한 태도는 내게 뜻밖의 해방감을 주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되자, 온몸에 잔뜩 들어가 있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목소리도 점차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음정은 여전히 엉망이었지만 노래가 오랜만에 정말 즐겁게 느껴졌다.


그날 나는 신나면서도 엉망진창으로, 그러나 온 마음을 다해 여러 노래들을 불렀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가수가 될 것도 아닌데 노래를 잘 부르는 게 그렇게 중요할까? 내게 노래는 누군가를 감동시키기 위한 수단도, 평가받아야 할 업무도 아니었다. 그건 그저, 나 자신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혼자서도 종종 코인노래방에 가서 마음껏 노래한다. 놀랍게도 마음 편히 즐기며 부르다 보니 노래 실력도 점차 늘기 시작했다.


물론, 무심함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차가움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외로움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원래 세상의 소음에 예민하던 나에게는 그 무심함이 안정과 균형을 가져다주었다. 늘 과열되어 있던 내 감정의 불을 식히고, 불필요한 긴장을 덜어내게 만들었다. 매실이 독한술과 만나 독성을 잃듯, 나의 예민함도 그의 무심한 온도 속에서 조금씩 순해졌다.


나는 원래 낯선 무리 속에 오래 머물면 금세 기가 빨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혼자 밥을 먹고, 나만의 속도로 숨을 고를 때 비로소 에너지가 다시 차오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안의 새로운 가능성은 언제나 타인을 통해 자극 받고, 관계 속에서 조금씩 자라났다. 그레씨의 무심함은 예민했던 내 감정을 느슨하게 풀어주었고, 선생님의 따뜻한 한마디는 발표를 두려워하던 내 입을 열게 만들었다. 주차장에서 만난 퉁명스러운 아저씨의 거친 조언조차, 어설펐던 초보 운전 시절의 나에게는 든든함으로 다가왔었다.


결국 사람과의 만남은 발효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서로 다른 기질과 감정이 부딪히며, 조금씩 반응하고, 천천히 숙성되었다. 내 결점이 누군가의 단점과 엉켜 서로를 중화 시키기도 하고, 타인의 너그러움과 섞이며 부드럽게 익어 가기도 했다. 그러니 결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군가를 배척할 필요는 없다. 사람과 사람의 차이는 우리를 더 깊게, 더 넓게 발전시키는 연료가 되기도 하니까. 나는 여전히 혼자 있어야 충전되는 사람이지만, 그 고요 속에만 머문다면 결코 익을 수는 없다는 걸 알기 떄문에, 적당한 거리에서 중심을 잡아가려 한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그 사이에서, 조금 더 익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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