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정체성
“너 한국인 맞아?”
"너 어른 맞아?"
나는 라면을 먹을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밑반찬으로 나온 김치를 집지 않는다. 그런데 이 말을 누군가에게 꺼내면, 꼭 이런 반응이 따라온다. 마치 김치를 먹는지 여부가 한국인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기준이라도 되는 듯한 질문이다. 하지만 나는 생김치 특유의 날 것 같은 식감과 맛이 맞지 않을 뿐, 김치를 싫어하는 건 전혀 아니다. 불과 양념을 거쳐 다시 태어난 김치볶음밥이나 김치찜, 고기와 함께 구운 김치, 칼칼하게 끓인 김치찌개는 오히려 굉장히 좋아한다. 프라이팬 위에서 기름에 닿은 김치가 치익- 소리를 내며 익어갈 때면, 침샘이 먼저 반응할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늘 장황한 설명 끝에 김치를 ‘나름대로’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해 왔다.
유년시절엔 김치를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일종의 성장 시험지였다. 고춧가루를 살짝 털어낸 순한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 어른들은 “와, 이제 정말 다 컸구나!”라며 환호했다. 조금 더 자라면 “혹시 매운 김치도 먹을 수 있니?”라는 새 시험이 이어졌다. 김장철이면 유치원에서는 김치를 직접 담가보는 체험 수업이 열렸다. 작은 장갑을 낀 어린 손으로 무에 양념을 바르며 만든 깍두기가 식탁 위에 오르자, 엄마는 “김치도 담글 줄 아는 걸 보니 정말 다 컸구나”라며 흐뭇해하셨다. 김치를 먹고, 만들 줄 안다는 건 내가 내가 성장해 가고 있다는 걸 인정받는 작은 통과의례처럼 느껴졌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된 나는 앞서 말했듯이 생김치에는 선뜻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종종 한국인 주류의 입맛에서 살짝 비껴가 있다는 막연한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어쩌면 그런 감각이 나를 더 적극적으로 김치 바깥의 한식 세계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비빔밥의 다채로운 조화, 약과의 눅진한 달콤함, 개성주악의 쫀득하고 고소한 풍미, 금귤정과의 상큼함, 식혜의 묵직한 단맛, 잡채의 화려한 색감, 송편의 반달 모양 속에서 나는 내 나름의 한국적인 맛을 탐색해 나갔다.
그리고 그 흐름의 절정은 언제나 명절이었다. 설날에는 평소에는 잘 꺼내지 않던 고운 한복을 입은 채로 떡국 그릇 앞에 앉았다. 동그랗게 썰린 떡이 국물 속에 차곡차곡 담겨 있는 모습을 보며 ‘이제 나도 한 살을 더 먹는구나’ 하는 감각 때문에 평소와는 전혀 다른 시간의 결이 느껴졌다. 떡국은 단지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를 새기는 하나의 의례였다.
추석의 기억은 또 달랐다. 나에게 추석은 송편의 날이었다. 나는 추석 때마다 “예쁘게 송편을 빚으면 예쁜 아이를 낳는다”는 엄마의 말을 흘려듣고, 고물을 욕심껏 넣다 송편을 터뜨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작은 실패마저도 모두가 함께 웃는 즐거운 놀이의 일부가 되었다. 할머니, 엄마, 아이들이 한데 모여 반죽을 나누고 모양을 비교하는 그 풍경 자체가 한국적인 유대의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반달 모양 송편을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한 깨소금이나 고소한 녹두 맛이 퍼졌고, 그 순간 나는 음식을 통해 세대와 세대를 잇는 끈을 느꼈다.
하지만 우리 집 명절상에는 진짜 주인공이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LA갈비였다. 명절 전날이면 엄마는 커다란 양푼에 갈비를 한가득 담아 양념에 재워 두셨다. 다음 날 불판에 갈비를 올리면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기름 방울이 튀었고, 달콤 짭짤한 연기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 냄새는 지금이 명절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신호탄 같았다. 하지만 나는 가끔 의문이 들었다. 명절이라면 좀 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중심에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왜 우리 집 식탁에는 이름부터 이국적인 ‘LA갈비’가 중앙을 차지하고 있을까?
처음엔 그게 우리 집만의 독특한 명절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많은 가정에서 명절 음식으로 LA갈비를 즐기고 있었다. 인터넷에 'LA갈비 명절'이라고만 검색해도 '명절음식 LA갈비'란 제목으로 쓰인 글과 기사들이 한가득 나온다. 어떻게 ‘LA 음식’이 한국의 대표 명절 음식이 된 걸까? 나는 그 궁금증을 뒤쫓기 시작했다.
LA갈비의 뿌리는 미국의 한인 이민사회에 있었다. 전통적인 갈비 대신, 미국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플랭크 컷 즉 갈비뼈를 가로로 썬 넓적한 고기를 갈비의 양념에 재워 구워 먹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렇게 이민의 땅에서 탄생한 음식이 되레 한국으로 역수입되어 오늘날 명절상 한가운데를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낯선 경로는 한식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한국음식의 범위란 단단히 고정된 유산이 아니라, 시대와 환경, 사람들의 선호에 따라 부드럽게 재구성되는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점이었다. 형편에 맞춰 만들어진 이민자의 음식이, 어느새 한국 명절의 대표 메뉴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내가 대학생 시절, 친구가 어학연수를 갔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각국 학생들이 자기 나라 음식을 소개하는 시간이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친구에게 불고기를 추천했다. 달달하고 간단히 조리할 수 있는 불고기가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한국 학생들이 모두 불고기를 준비해 왔고, 외국인들은 “떡볶이는 없냐” 혹은 “떡볶이가 먹어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식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매운맛’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 보았던 텔레비전에서는 외국인들이 김치를 한입 먹고는 이마에 땀을 흘리거나 물을 급히 들이켜는 장면이 엄청 자주 등장했다. 그래서 나는 매운 음식은 한국인만의 고유한 기호라고 믿었고, 외국인들이 그 맛을 좋아하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매운맛을 거부감이 아닌 놀라움과 호기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불닭볶음면이 전 세계 편의점과 마트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한국의 매운맛이 하나의 놀이이자 도전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더 놀라웠던 건, 한때 전통 떡으로만 여겨졌던 꿀떡을 우유에 말아먹는 '꿀떡 시리얼' 방식이 외국 SNS를 통해 유행처럼 퍼졌던 일이었다. 그런 새로운 조합과 즐김 방식은 실제 한국 문화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경험들을 마주할수록, 음식만으로 정체성을 규정짓는 일은 얼마나 협소하고 단편적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김치를 안 먹는다고, 혹은 전통 방식대로 음식을 즐기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낯선 조합을 즐기고 새로운 방식으로 그 맛을 풀어내는 시도가 우리가 현재 이 문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점은 해외여행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탈리아에 여행 갔을 때 일부러 두 곳을 찾아갔다. 하나는 ‘최초의 까르보나라’를 표방하는 집, 다른 하나는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가 최고라 부르는 맛집’이었다. 원조집의 까르보나라는 놀라울 만큼 단출했다. 계란 노른자, 페코리노 치즈, 그리고 구운 관찰레만이 접시 위에 올려져 있었다. 크림도 화려한 장식도 없었다. 그것은 전쟁과 가난 속에서 남은 재료로 허기를 달래야 했던 시절이 만들어낸 생존의 맛이었다. 반면, 현대의 유명 맛집에서 맛본 까르보나라는 크리미 하고 세련되게 다듬어져 있었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요리로 자리 잡은 현재의 모습이었다. 한 접시는 “왜 이 음식이 탄생했는가”를 보여주었고, 다른 한 접시는 “어떻게 이 음식이 세계로 퍼졌는가”를 증명해 주었다. 까르보나라는 단순한 파스타가 아니라, 한 나라의 삶과 문화가 어떻게 이어지고 변주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였다.
이렇게 문화는 전통이라는 오래된 선 위에 현재의 기억을 덧그리며, 매 순간 새롭게 쓰이고 있다. 전통은 과거를 반복하라는 지침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잊지 않도록 해주는 마음의 좌표다. 낯선 조합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맛이 재구성되더라도, 완전히 흩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뿌리 같은 것 말이다. 결국 어떤 음식이 우리를 한국인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둘러싼 경험과 감각이 오늘의 한국인을 설명해 주는 단서가 되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 그리고 한국인의 정체성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능동적인 선택과 변주로 채워지는 생동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