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우리는 요리한다

요리의 역사, 그리고 나의 요리의 역사

by 조새늘

밀개와 긁개는 인류가 음식을 다루기 시작했다는 가장 오래된 증거이다. 그들은 돌멩이로 곡식을 찧고, 열매를 으깨며 ‘먹을거리’와 관계 맺는 방법을 배워 나갔다. 그 손끝에서 반복된 움직임 속에서 인간은 처음으로 ‘조리의 감각’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후 불 위에서 식재료가 끓고 익어가는 변화를 지켜보며, 인간은 음식이 단순한 재료의 조합이 아니라 시간과 온도의 예술임을 알게 되었다. 불을 다스릴 수 있게 된 인간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존재에서 ‘요리하는 존재’로 진화했다.


불이 만들어 낸 주방의 시대는 길고도 찬란했다. 하지만 먹을거리를 풍족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지금의 풍요를 내일로 옮기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신선함을 오래 붙잡고자 하는 욕망이 냉기의 기술을 낳았다. 그렇게 냉장고가 등장했다. 신선함을 붙잡는 기술이 생기자, 요리는 즉시성에서 ‘보관의 시대’로 넘어갔다. 남은 반찬을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으면 '오늘의 저녁’이 ‘내일의 점심’으로 이어졌다. 그 덕에 식탁의 메뉴는 다양해졌고, 냉장고의 일정한 ‘웅—’ 하는 소리가 집안을 채우게 되었다.


그러나 차가운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요리를 하는 데 있어 따뜻한 온기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불은 위대했지만, 언제나 위험했고 번거로웠다. 사람들은 더 빠르게, 더 편안하게, 더 안전하게 온도를 다루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 불 대신 전기를 이용해 음식을 데우는 기술이 등장했다. 바로 전자레인지였다. 전자레인지는 불의 흔적 없이도 순식간에 온도를 만들어 냈다. ‘띵—’ 소리와 함께 돌아오는 따뜻함은 겨울밤 이불속에 손을 넣었을 때의 온기처럼 은근하고 포근했다. 하지만 전자레인지는 오직 데움의 기술에만 머물러 있었다. 끓이거나 굽거나 튀기는 일, 즉 요리의 본질이라 할 만한 과정은 여전히 불의 몫이었다.


인간은 불의 위험을 피하면서도, 그 힘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조리 방식을 원했다. 그 열망이 만들어 낸 결과가 인덕션이었다. 불꽃이 사라진 부엌, 그러나 냄비 밑바닥은 여전히 달아올랐다. 불을 다루는 대신 전류를 조절해 온도를 내는 방식 그 정밀함은 이전보다 훨씬 안전하고 깔끔했다. 처음엔 낯설었다. 불이 보이지 않으니 요리하는 감각이 덜했다.

“그럼 지포는 어떻게 구워 먹지?”
하지만 팬 위에 올려 구워 보니, 지포는 여전히 제 맛이었다.


요리의 역사는 곧 인간이 음식의 온도를 길들이고 조율해 온 역사였다. 요리는 돌멩이로 곡식을 찧던 밀개에서, 시원한 냉장고 그리고 터치패드로 작동하는 인덕션까지 진화했다. 음식에게 온도를 더하는 방법은 달라졌지만 더 맛있는 요리를 해내겠다는 열망은 계속되었다. 그 마음이 나에게까지 번져왔으니, 이제 나의 첫 요리를 이야기해 보려 한다.


기억의 가장 오래된 서랍을 열어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토스터기에 식빵을 구워 잼을 발라 먹던 기억이다. 그러나 그것은 요리라기보다는 허기를 달래기 위한 간단한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먹는 기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시도한 ‘요리다운’ 요리는 달고나 만들기였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달고나가 다소 낯설지 모르지만, 내가 어린 시절이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달고나는 초등학교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국민 간식이었다. 하교할 때면 교문 앞 달고나 아저씨의 가판대 앞에는 늘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누군가는 바늘을 쥐고 별이나 하트 모양을 조심스레 떼어냈고, 누군가는 그 옆에서 결과를 지켜보며 응원했다. 달고나가 바늘 끝에서 ‘딱’ 소리를 내며 부러지면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졌고, 온전한 모양을 떼어낸 아이는 환호를 질렀다. 그렇게 성공한 아이에게는 아저씨가 보상으로 달고나 하나를 더 쥐여 주었다. 나도 용돈을 모아 달고나를 직접 사 먹어 본 적이 종종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다른 아이들이 바늘로 달고나의 모양을 분리하는 모습을 옆에서 구경하며 잔소리 섞인 훈수를 두던 날이 더 많았다.

“야, 거긴 그렇게 세게 긁으면 안 돼.”

“아, 조심해! 부러질 것 같잖아!”

달콤한 설탕 냄새와 아이들의 함성이 섞인 그 풍경은, 내 어린 시절 하굣길을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게 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이렇게 교문 앞 달고나 가판대 앞을 떠나지 못하고 붙어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달고나가 만들어지는 원리까지 눈에 들어왔다. 달고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설탕과 소다, 그리고 그것을 녹여낼 불과 국자뿐이라는 사실을 어느새 터득하게 되었다. 이 정도면 나도 집에서 몰래 한 번쯤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마음 한구석에 싹텄다.


문제는 엄마의 눈을 피해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일이었다. 엄마는 내가 공부 외의 일에 열을 올리는 걸 무척 못마땅해하셨다.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하거나, 종이학 천 마리를 접겠다고 하거나, 인형 뽑기에 빠져 지낼 때마다 어김없이 “하지 마!”라는 호통이 날아왔다. 달고나 만들기 역시 그 ‘하지 마 목록’에 오를 게 뻔했다. 열 살 인생, 엄마 딸 경력 10년 차의 감으로 그 정도쯤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그래서 엄마가 외출하시는 틈을 타 나는 비밀 작전에 돌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가 집을 나서자마자 평소 눈여겨보았던 국자와 설탕, 소다를 재빨리 꺼냈다. 매일같이 학교 앞에서 달고나를 만들던 아저씨의 솜씨를 지켜본 덕분에 만드는 법은 이미 머릿속에 훤히 그려져 있었다. “불이 너무 세면 금방 타버린다”라는 아저씨의 조언까지 들어 두었기에, 첫 도전이었지만 나는 자신만만했다.


약한 불 위에 국자를 올리고 설탕 한 스푼을 퍼 넣은 다음, 나무젓가락으로 저으며 녹이기 시작했다. 하얀 설탕 알갱이들이 서서히 녹아내리더니 금세 갈색빛을 띠며 보글보글 부풀어 올랐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나무젓가락 끝에 소다를 살짝 찍어 국자 속으로 넣었다. 그리고 재빨리 휘젓자, 갈색빛이 순식간에 노르스름하게 변하며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황금빛 달고나 반죽이 완성되었다! 나는 곧바로 국자를 기울여, 철판 대신 준비해 둔 쿠킹포일 위에 만들어진 황금빛 달고나 반죽을 조심스레 부어 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포일 위에서 동그랗고 납작하게 굳어야 할 달고나 과자가 오히려 포일과 한 몸으로 들러붙은 채 식어 버렸다. 당황한 나는 허둥지둥 쿠킹포일을 들어 흔들어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설탕 덩어리는 금세 식어 가며 포일에 더욱더 단단히 달라붙어 버렸다. 결국 내가 만들어 낸 것은 달고나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쿠킹포일에 들러붙어 버린 설탕 찌꺼기에 불과했다.

“이건 아니야.”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실패를 이렇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나는 엄마가 오기 전에 국자를 다시 불 위에 올렸다. 이번에는 쿠킹포일 대신 단단한 유리그릇을 바닥으로 써보기로 했다. 매끄러운 유리그릇이라면 달고나가 잘 떨어질 것 같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설탕을 녹여 달고나 반죽을 만들고, 첫 번째 시도 때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유리그릇에 국자 속 내용물을 부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쨍!”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그릇이 산산조각 나 버렸다. 뜨거운 달고나 반죽의 열기를 유리그릇이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듯 깨져 버린 것 같았다.


눈앞에서 유리 파편이 튀어 올랐다. 예전에 깨진 유리를 밟으면 안 된다고 들었던 말이 떠올라,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발에 유리가 박힐까 봐, 그대로 숨을 죽인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하지만 그 처참한 광경을 본 순간 머릿속에는 불같이 화를 낼 엄마의 모습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나는 조금이라도 뒷수습을 하려고 자리는 움직이지 않은 채 설탕과 소다를 선반 위에 넣었고 국자를 싱크대에 넣고 설거지하기 위해 수돗물을 틀었다. 그런데 국자에 있던 끈적끈적하던 설탕 덩어리는 찬물을 만나자 돌처럼 굳어 버렸고, 국자에 더욱더 단단히 눌어붙고 말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막막한 순간,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결국 내 생애 첫 번째 요리 실험은 처참한 실패로 끝나 버렸다.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사실 그날 이후에도 요리에 대한 나의 관심은 식지 않았었다. 하지만 불 앞에 설 용기를 내기도 전에, 엄마의 단호한 목소리가 늘 그 불씨를 꺼뜨리곤 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부엌은 엄마의 영역이었고, 나는 그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늘 그 불빛을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다시 요리에 도전할 기회를 맞이했다. 계기는 다름 아닌 치아 교정 치료였다. 치과에서 교정 장치를 조이고 돌아온 날이면 잇몸이 욱신거려, 딱딱한 음식을 도저히 씹을 수가 없었다. 죽이나 폭신한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운 음식으로 겨우 허기를 달랠 수는 있었지만, 그런 식사는 금세 허전했고 ‘밥을 먹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침 그 무렵 엄마는 일을 시작하셔서, 예전처럼 내 식사를 꼼꼼히 챙겨 주실 여유가 없었다. 결국 배고픔을 해결할 방법은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뿐이었다. 무슨 요리를 해 볼까 한참 고민하다가, 애호박 부침개가 떠올랐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애호박 부침개라면 씹는 즐거움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아픈 잇몸을 심하게 자극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몇 년 만에 다시 프라이팬을 꺼내 들었다. 달고나 실험 이후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메뉴였기에, 긴장이 되면서도 설렘이 올라왔다.


애호박 부침개를 만들려면 우선 채칼로 애호박을 얇게 써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덤벙대는 내 성격 탓에 날카로운 채칼 날에 손끝을 살짝 베어 피가 조금 맺혔다. 나는 급히 반창고를 붙이고는 “이게 다 요리의 길이겠지.”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래도 애호박 썰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이 음식은 말 그대로 내 생존과 직결된 것이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채 썬 애호박에 부침가루와 달걀을 넣고 잘 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달궈 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뒤 국자로 한 숟갈 듬뿍 뜬 반죽을 조심스레 올렸다. “치이익—.” 팬 위에서 반죽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 갔다. 고소한 기름 향이 부엌 가득 퍼지고, 부침개의 가장자리는 노릇노릇하게 색이 변해 갔다. 나는 바짝 긴장한 채 뒤집개를 쥐고 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혹시나 타고 있지는 않은지 몇 번이나 가장자리를 살짝 들춰 보며 가슴을 졸였다. 그러기를 몇 차례, 드디어 적당한 타이밍에 부침개를 단번에 뒤집었다. 이내 팬 위에는 동그랗고 먹음직스러운 애호박부침개가 말끔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내 손으로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깨끗이 한 끼를 비워 냈다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도 교정 치료로 입안이 얼얼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애호박 부침개를 부쳐 먹으며 부족한 끼니를 채워냈다.


길고 길었던 교정 치료가 끝나고, 예전처럼 애호박부침개를 부치는 일은 상대적으로 뜸해졌다. 하지만 애호박 부침개가 내게 남긴 의미만은 여전히 특별하다. 어린 시절 달고나 실패로 잃었던 요리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게 해 준 소중한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리의 역사는 곧 인간이 음식의 온도를 길들이고 조율해 온 역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은 단순히 온도를 조절해 온 역사가 아니라 실패를 견디며 더 나은 한 끼를 찾아온 인류의 도전과 인내의 역사였다. 그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냉장고가, 전자레인지가, 인덕션이 태어났다.


나 역시 국자를 태우던 실패의 순간을 지나며, 달고나를 태워 먹던 아이에서 애호박 부침개를 뒤집는 학생이 되었다. 애호박 부침개를 뒤집던 그날의 떨림은, 어쩌면 인류가 불을 처음 길들일 때의 마음과 닮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는 부침개뿐만 아니라 달걀말이, 된장찌개, 김치볶음밥까지 하나씩 만들어 갔다. 물론 맛이 없는 날도 있었지만, 실수 속에서 나만의 조리법을 익혀 갔다. 확실히 실패는 끝이 아니라, 더 나은 맛을 찾아가는 통과의례가 맞았다.


요리를 잘한다는 건 결국 삶을 다루는 일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삶은 늘 허기와 함께 새로운 재료를 내밀고, 우리는 그 재료로 무엇을 만들지 매번 선택해야 한다. 때로는 간이 지나치게 짜기도 하고, 불 조절을 잘못해 태워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실수들이 쌓여 나만의 레시피가 만들어진다. 요리는 결국 반복과 시행착오의 예술이다.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더 깊은 맛을 낳듯, 인류가 그랬듯 나 역시 매일의 조리 속에서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나는 오늘도 그 긴 조리의 한가운데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인생이라는 한 끼를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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