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
24장
다시 봄 (20년 후, 2025년 서울)
창밖에 봄이 피어났다.
벚꽃이 흩날리는 오후, 혜순은 미순과 함께 오래된 골목 안쪽의 한 주택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 집은 이제 70대가 된 어머니가 사는 집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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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참 많은 걸 바꿔놓았다.
엄마는 혜순을 처음 만났던 날, 단 한 번만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야 죄책감에서 조금은 놓여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만남 이후, 그녀는 혜순 모르게 멀리서 혜순을 몰래 바라보다가 가기도 했고 뉴스기사등에 혜순이 회사대표로 나오는것이 있는지 찾아보고 기사를 다 모아두었다.
엄마는 자신의 두 번째 가족에게 한 번도 말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말해야지, 언젠가는 털어놓아야지 하면서,
그 ‘언젠가’를 20년이나 붙잡고 살았다.
그 ‘언젠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왔다.
갑작스러운 병환, 짧은 투병, 평생 의지하던 남편이 눈을 감고 나자,
엄마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나 지금… 남은 세월을 이렇게 살고 싶진 않아.’
그렇게 결심하고, 딸들에게 말했다.
긴 침묵이 흘렀다.
첫째 딸은 처음엔 믿지 못했고, 둘째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언니… 지금도 살아계세요?”
“응. 내 옆에 살고 있어. 아주 멋진 사람이야.”
“엄마… 왜 그렇게 오래 혼자 아프게 앓고 있었어.”
세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를 안고 울었다.
그리고, 엄마는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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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순아, 미순아.
엄마가 정말 미안하다.
그땐 왜 그렇게밖에 못 했는지…
날 용서하지 않아도 좋아.
다만, 한 번만 더 셋이서 함께 밥을 먹고 싶어.
내 손으로, 따뜻한 집밥을 해주고 싶어.
엄마가
그날 오후, 혜순과 미순은 집 대문 앞에 도착했다.
엄마가 문을 열고 나왔다.
세월은 그녀의 어깨를 작게 만들었지만, 눈빛은 오히려 단단했다.
“딸들아.”
그 한마디에, 혜순은 눈물을 쏟았고, 미순은 엄마를 껴안았다.
“늦어서 미안해.”
“괜찮아요”
“엄마 이제 자주보면 되지”
“내가 너네 먹이려고 음식했는데 입맛에 맞을지... 배고프지?”
세 모녀는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처음으로, 서로에게 엄마, 딸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그들은 가족이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