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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삶을 확장하는 과정이다.

삶을 다시 배우는 과정

by Horang unnii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낯선 곳으로 떠나 내가 있던 곳을 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한때 여행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고,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으며, 누군가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그건, 여행의 일부일 뿐이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를 만나고 먹어보지 않은 것들을 먹어 보며, 가보지 않았던 곳을 가보는 것. 그런 단편적인 경험들이 여행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여행은 단편의 드라마가 아니다. 때로는 반전 드라마처럼 흘러가기도 하고, 상상도 못 할 미스터리 영화 같을 때도 있다. 어떤 날은 대하드라마처럼 길고 지루하기도 하며, 어떤 순간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깊이 남는다. 여행이 곳 삶이고, 삶이 곳 여행이라는 답을 얻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으면서 조금씩 변해갔다. 여행은 그저 단순한 자유라기보다는 삶을 넓히는 과정이었다.



나는 여행가이드로, 때로는 혼자 떠나는 여행자로 동남아 곳곳을 다녔다. 많이 돌아다닌 건 아니었지만, 그 경험들은 내 삶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끌었다. 마치 인생 3회 차라도 된 것처럼.



태국, 베트남, 라오스...

각 나라의 골목을 걸으며, 문화를 경험하고, 그들의 삶 속에 스며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라오스의 방비엥 시골마을에서, 나는 여행이 단순히 이동이 아니라 삶을 다시 배우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방비엥의 로띠 아줌마








그날은 유난히 피곤했다.

관광객들을 이끌고 카약 투어를 마친 뒤,

투어가 예상보다 길어져 해가 저물었고

고객 숙소까지 모두 배웅한 후 터덜터덜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평소라면 툭툭이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을 텐데, 그날따라 함께 일하던 현지 친구들은 먼저 퇴근했고 나는 늦게까지 남아 일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몸은 물에 젖어 축축했고,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무거웠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가는 길 다리와 어깨가 뻐근했고, 머릿속은 피곤한데도 이상하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허기를 느끼고 있었지만 딱히 뭘 사 먹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저 숙소로 가서 씻고 빨리 눕고 싶었다. 그때 길가 한쪽에서 허름한 자판이 눈에 들어왔다. 기름이 잔뜩 묻은 낡은 철판 위에서 바삭하게 구워지는 로띠. 바나나 조각을 올리고, 누텔라 초콜릿을 듬뿍 뿌리는 손길. 너무 지쳐 있었기에 그냥 지나칠 생각이었다.


아줌마가 나를 보며 웃었다.


"오늘 힘들었지?"


라오스 사람들은 친절하고 정이 많다.

눈이 마주쳐도, 아니 그냥 스쳐 지나가도 미소를 띠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날은 너무 지쳐서 그 익숙한 인사조차 무시한 채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멈칫했다. 우리는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나는 이곳에서 한 번도 로띠를 사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매상을 올려준 적도 없고, 그렇다고 나를 단골손님으로 여길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게 바나나 초콜릿 로띠 한 조각을 건네며 말했다.


"기운 없어 보여. 그냥 먹어."


순간 당황했다. 나는 가방을 뒤적이며 지갑을 찾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길을 지나치려 했을 뿐인데, 그녀는 아무 조건 없이 나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손을 저으며 돈을 내밀었지만

아줌마는 고개를 저었다.


"돈 필요 없어. 맛있게 먹어."


로띠 한 개에 1~2달러.

그들에게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나에게 기꺼이 건넸다.


난 조용히 로띠를 받아 들었다.

손바닥만 한 빵에서 따뜻한 열기가 느껴졌다.

한 입 베어 물자, 바삭한 겉면 안으로

퍼지는 부드러운 바나나, 달콤한 누텔라 초콜릿 향이 입 안에 가득 찼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오늘 하루도 살아내느라 힘든 줄도 모르고 버텼다는 걸. 종일 투어를 돌며 웃음을 만들고, 여행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며 정신없이 움직였지만 정작 나 자신을 위한 작은 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



여행이란

작은 로띠 하나로도

뜻밖의 순간에

따뜻한 온기로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었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들









여행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 쉽게 사람을 믿는 따듯함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가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여행 가이드로 일하면서 마주한 불편한 진실들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남자 여행객들은 이곳에 오직 '어린 여자아이들'을 찾으러 왔고 그들을 돈으로 사면서도 죄책감 없이 웃었다. 아마 모르긴 해도, 그들 중 상당수는 한국에 딸을 두고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 나는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어떤 여행은 아름다웠다.

어떤 여행은 불편했다.

어떤 여행은 나를 울게 했고,

또 어떤 여행을 나를 웃게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경험이 내 삶을 넓히는 과정이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여행을 한다는 건 단순히 타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사고방식이 깨지고, 나도 몰랐던 내 안의 관념과 맞부딪히면서, 자꾸만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가이드로 일하면서, 때로는 여행자로서 방황하면서

기존의 사고방식이 흔들리는 순간들을 수도 없이 마주했다. 어떤 때는 불편했고, 어떤 때는 머리와 마음이 충돌했다. 맞음과 틀림 속에서 싸웠고, 다름과 같음 속에서 울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불평을 토로하며, 감사하지 못한 나를 반성할 때도 많았고,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들의 웃음 속에서 나의 그늘짐과 삐뚤어진 더 가지고픈 욕망이 부끄럽게도 했다. 그 부딪힘 속에서 어떤 것들은 새롭게 배우고, 조금 더 넓어진 사람이 되어갔다.



동남아에서 내가 경험했던 것들,

그곳에서 순박하고 욕심 없던 그들 사이에서 배운 것들, 그리고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이 글은 그런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제 태양 아래서 만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매주 화요일, 그곳의 진짜 삶을 들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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