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Workingmom B
Jan 06. 2022
출근/회사 #3.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동상이몽
워킹맘의 조금 불편한 이야기
원래 다른 그룹사에서 일하던 나는 지금의 회사로 전적을 당했다. 갑자기 중고 신입이 된 기분이었다. 기존 회사와 다른 도시에 위치한 모르는 사람들 100%로 구성된 회사로 옮겨졌다. 나와 부사수, 팀장님 이렇게 3명이 한꺼번에 전적을 했는데 우리도 모르게 우리는 새 회사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우리팀은 매출 단위가 높아서 새로운 회사 사람들의 관심이 높았다. 나중에 듣기로는 어떤 팀으로 배치 받을지부터가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남초회사에서 부사수와 나, 여자 실무 둘로 구성된 우리 팀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여러모로 눈총이 불편했다. 어릴 때는 이런 시선을 즐길 베짱이 있었는데 회사 10년 이상 고인물이 되고 나서는 주목이 불편하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회사라는 곳에서는 저절로 회식자리를 마련한다. 나도 초대되었다. 낯선 사람들 사이 기대감 반, 실망감 반 사이 어디쯤 나는 위치해 있었다.
옆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나보다 선배인 거 말고는 특이사항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계속 지금 하는 일만 하는 건 아니지 않겠어요? 우리 일도 해봐야죠."
정말 우리를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너희들이 와서 여기서 주목을 받고 있으나, 너희도 우리 일을 해야 결국 우리 소속이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일종의 텃세였다. 알고 있었다. 그 꼰대가 우리의 주목을 불편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본인도 관종이라 주목을 받고 싶었다는 사실을. 나도 그때는 그저 웃어 넘길 여유가 없었고 그냥 진지한 자세로 듣는 척 했다.
갑자기 그러다가 그 꼰대가 <82년생 김지영> 이야기에 공감하냐고 질문을 했다. 책이 내 이야기라고 여길 만큼 소름 돋게 비슷한 내용이 많았지만 굳이 내 의견을 밝히지 않고 웃고만 있었더니, 꼰대가 말한다.
"그 이야기 좀 오바스럽지 않아요? 아니 요즘 세상에 그런 일들이 있긴 있어요?"
"아뇨. 그렇지 않던데요. 제가 겪은 이야기도 많아요."
역시 프로불편러인 내가 참을 이야기가 아니었다. 뭘 알기나 알고 하는 소리인지. 내가 지금의 회사로 옮기면서 첫 출장때 여자 혼자서 출장을 갈 수 있냐는 말도 들었었는데 말이다. 뭘 모르는 양반 같으니라고.
이제까지 내 회사생활을 반추해보면 성차별도 많았고 성희롱도 있었다. 팀장이 팀원들 중에 여자가 많아 불편하다고 한 적도 있었고 신입을 뽑으면 꼭 남자를 뽑아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했었다. 여직원들이 제일 가기 싫은 회식 장소가 노래방일 때도 있었다. 멀쩡한 인간들도 노래방만 가면 마치 여자 직원을 도우미인 듯 취급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내 가슴 크기를 운운한 인간도 있었다. 안자고 하는 인간도 있었고 뽀뽀를 하려는 화상도 있었다.
어릴 때는 성희롱에 어쩔 줄 몰라 대응을 못했고, 조금 머리가 크고 나서는 그것을 잘 받아주는 것이 센스있는 것이라 생각해 농으로 잘 넘겨드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반응은 한결같다.
"신고할겁니다."
나는 회사에서 수많은 김지영을 목격했다. 출산을 하면 그만 두는 경우도 있었고, 워킹맘의 삶을 살다가 주변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해 결국 항복해 버린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경력단절을 힘들어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육아를 위한 사표는 자의보다는 아이를 볼 사람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본인이 없는 삶을 괴로워하는 이 시대의 김지영이 내 주변에 이렇게나 많은지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서야 알았다. 전업은 아니지만, 나도 'B'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수많은 김지영을 지켜보며 김지영의 삶을 산다. 어쩌면 미치지 않은 것 말고는 모든 것이 다 김지영을 닮았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