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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kingmom B Jan 03. 2022

출근/회사 #2. 엄마의 우울증

Workingmom B의 조금 불편한 이야기

 3개월 출산휴가만 쓰고 회사에 복귀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보통 출산휴가 후 상당 기간 육아휴직을 쓰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나의 이른 복귀를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했고 또는 강하다고 이야기 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독하다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다. 육아휴직을 쓸 이유는 많았지만 육아휴직을 아껴둬야 할 이유는 더 많았다. 일단 휴직이 길면 대체 인력이 내 자리에 들어온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포지션의 일 이외에 우리 회사에서 더 매력적인 일은 없었다.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두번째 이유는 본사가 판교로 이전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현재도 포항-부산 주말부부인데 포항-판교라니. 이사도 해야하고 아이 어린이집도 알아봐야 한다. 휴직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아기가 초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곁에 조금이나마 있어주고 싶은 것이 세번째 이유였다. 


 

 3개월 출산휴가 후 복귀를 하면 시어머님이 아이를 봐주시기로 했다. 시어머니의 짐을 최대한 덜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똑게육아 같은 초보엄마들 필독서를 읽으며 아이 수면 패턴을 잡으려 애썼다. 그게 3개월 아기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모른체 고정된 수면 패턴을 잡는 것이 내 도리라고 생각했다. 아기가 한 80일 즈음 친언니가 방문했었는데 방문자인 언니를 두고 아이의 수면 패턴을 위해 씻기고 재우는 모습이 유난스러웠다고 했다. 그런 내 모습이 유난스러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유난을 떨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회사 복귀 첫 날 아침 발걸음이 산뜻했다. 간만에 입은 멀끔한 옷과 또각또각 구두. 회사 앞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주문해서 손에 들고 화려하게 다시 내 자리로 복귀를 했다. 회사에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적응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끝나지 않은 일을 집에 가져와야 하는 나의 운명을 간과했다. 저녁시간 집에서 울리는 핸드폰이 나를 괴롭힐수록 아이는 내게 더 매달렸다. 저녁 식사는 먹다가 멈춰지기 일쑤였다. 몸은 축났다. 잘 자던 아이는 갑자기 통잠을 자지 못했다. 엄마가 낮에 없는 걸 알기나 하는 듯 새벽이면 엄마를 찾았다. 아이가 찾을 때마다 나는 잠을 잊어야 했다. 웃음도 몸처럼 말라갔다. 

  

 다시 웃고 싶었다. 행복이 다시 돌아왔으면 했다. 집요한 성격 탓에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를 알기 위해 온갖 책을 다 뒤졌다. 내가 찾아본 책에 따르면 전형적인 산후 우울증이었다. 할 일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조급해졌으며, 함께 해줄 수 없음에 죄책감을 느꼈고 그로 인한 우울감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분리불안을 아이가 겪은게 아니라 내가 겪고 있었다. 아이와 떨어져 있는 죄책감에 늘 괴로웠다. 

 그러나 아이와 같이 있어도 힘들어했다. 아이의 요구 사항은 많아졌고 나의 체력은 반비례했다. 그런 나를 신랑과 어머님은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눈치였다. 가족에게 이해 받지 못한다는 것은 내게는 고립이었다. 눈도 닫고 입도 닫고 귀도 닫아야 버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울의 골짜기는 깊어갔다. 혼자서는 건널 수 없는 골짜기였다.


 결국 병원을 찾았다. 병원 검사결과는 대인관계 빼고는 엉망이었다. 잠을 자지 못해 자율 신경계는 다 무너져있었고 뇌는 풀가동되고 있었다. 선생님은 더하고 뺄 것 없는 중증 우울증이라고 하셨다. 약을 1년은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스스로 이렇게 무너질때까지 모르고 있었다니 가장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교만이 부른 참사다. 나의 우울증 진단이 불러오는 우울함까지 한겹 더해져 침잠해야 했다. 


 우울증을 앓는 엄마가 가장 두려운 것은 아이에게 나의 우울함을 들키는 일이다. 오늘도 나의 우울을 들키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내 우울 앞에서 보란듯이 더 웃음 짓는다. 아이 앞에서 더 많이 웃는다. 때로는 얼굴 근육이 아파와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부디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길 기도한다. 세상 모두가 알아도 내 아이만 몰랐으면 하는 나의 우울, 이게 바로 엄마의 우울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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