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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kingmom B Jan 24. 2022

출산휴가 #3. 친정엄마와 산후조리

엄마 미안해!

 집을 떠나 산지 벌써 20여년이 되었다. 시골 출신인 나는 다닐 학교가 변변치 않아서 안동에서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특별히 공부를 잘 해서 기숙사에 있었던 게 아니고 그냥 단지 집이 멀어서 기숙사에서 지냈다. 대학을 들어가서야 다른 친구들의 일상이 나에겐 커다란 이벤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와 밥을 먹는 것도, 마트를 가는 것도, 쇼핑을 하는 것도 나에겐 특별한 일이었다. 연례행사 같은. 하루는 엄마에게 억울하다고 말했더니 엄마가 딱 한 말씀하셨다.

 "나도 억울하다. 다 키운 딸들이랑 시간을 못 보내서."

 엄마는 그냥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나는 고등학교 때 니들 공부할 때 과일 한 번 깎아준 적 없는 엄마라......"

 말 끝이 흐려졌다.


 부모님을 여읜 사람이 고아라면, 엄마는 20대 후반에 고아가 되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영화처럼 차사고로 한 날 한 시에 세상을 떠나셨다. 엄마는 성인이 된 본인을 돌봐줄 엄마가 없었다. 날 낳았을 때 산바라지는 막내 이모가 와서 해주셨다고 한다. 그 추운 겨울 엄마는 가끔 쓰러지곤 했다고 한다. 널 낳다가 죽을뻔 했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들었다.

 이것도 늘 괜찮을 줄로만 알았다. 우리 엄마는 내게 늘 괜찮은 사람이었으니까.






 미지(未知)에는 두 가지 감정이 있다. 설렘과 공포. 출산예정일이 가까워지자 출산에 대한 미지는 공포쪽에 훨씬 더 가까웠다. 대학 입학 이후에 자취방 이사, 어학연수 준비, 결혼 준비도 혼자서 씩씩하게 잘 하던 나였는데 출산일이 가까워오니 출산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 되었다. 이 때는 아이가 나오면 더 무서운(?) 일이 많이 벌어진다는 것도 얼추 예상을 했던터라 엄마에게 산후조리를 도와달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엄마가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우리집 복숭아 농사가 중요하더라도 절대 내 출산이 후순위로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는 거절했다.

 "복숭아 농사가 너무 바빠서 엄마가 가서 도와줄 순 없을 것 같아. 대신에 출산 전에 가서 너 아이 낳는 건 보고 올라오마."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운 날 중 하루였다. 엄마의 말투는 분명 너무나도 따뜻했는데, 나는 엄마의 그 거절이 너무 차갑고 시려서 견딜 수 없었다. 남들은 엄마들이 와서 간섭해서 딸이랑 싸운다는데 그런 일은 내게 너무 분에 넘치는 일이었다. 엄마가 없는 사람 같았다. 고아가 된 것 같았다.






 결국 엄마는 출산예정일 2주 전에 오셔서 딸이 먹고 마시는 일에만 집중을 했다. 그리고 손녀가 태어나는 걸 보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시어머님이 와서 산후조리를 해주셨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도 시어머님이 좋아도 딱 석 달 출산 휴가만 쓰면서 편히 누워서 산후조리를 할 수 있는 간 큰 며느리는 세상에 많지 않다. 서투른 아이 돌봄과 아이 물건 세척과 소독, 빨래와 아이 재우는 일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적응이 되어 갈즈음 나는 출근을 시작했다.


 출근이 시작되자 낮에 아이를 혼자 보느라 지쳐 있으신 시어머님께 새벽까지 아이를 맡길 순 없었다. 새벽 수유와 돌봄은 주로 내 몫이었다. 아이를 재우느라 일어난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 밤은 너무 길고 어둡고 깜깜했다. 새벽에 아이를 안고 있노라면 아이와 나만의 세상이 멈췄으면 하는 따뜻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피곤이 지배하는 힘든 날도 있었다. 그런 어두운 밤은 엄마가 간절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내 할 일을 위해 시어머님께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듯 엄마도 엄마의 일이 있다. 엄마가 특별히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다. 엄마는 내가 이해할 것이라고 믿고 계신다. 엄마도 출산이 무서웠을까? 엄마도 엄마가 와서 도와줬으면 했을까? 엄마는 엄마가 없어서 엄마한테 힘들다 말 한마디 못했겠다. 그 시절 그녀가 가여웠다. 20대 후반의 빼빼 말랐던 여자가 아이 셋을 낳고 어느덧 몸집이 풍성한 여자가 되어 환갑을 지나 더 깊은 나이로 접어들고 있다. 나는 그녀를 그렇게 닦달하고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야 했을까. 엄마의 갱년기도 그냥 무심히 넘긴 주제에. 멀리 있다는 핑계로 제대로 챙겨드리지도 못한 딸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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