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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kingmom B Feb 15. 2022

출근/회사 #4. 여자의 적은 여자?!

Workingmom B의 조금 불편한 이야기

 작년 가을 어느 하루 꽉막힌 도로보다 내 답답했던 마음을 부여잡고 거리에 몸을 실었다. 부산에 위치한 회사가 판교로 이전하는 문제와 직장인과 엄마 사이에서 정체성 문제로 고민이 가장 깊었던 시기였다. 판교 이전은 내가 가겠다고 자원한 것이 아니고 회사가 옮겨가겠다고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높아지는 집값과 청산해야 할 주말부부의 삶이 길어진다는 사실에 집에서는 죄인이 되었다. 회사에서의 일이 늘 끝나지 않은채로 집에 돌아와야 하는 생활은 사람을 자꾸 지치게 했다. 어디 갈 곳도 없고 말할 곳도 없을 때 생각나는 엄마.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속이 너무 갑갑해서 걸으러 나왔어."

 "왜 속이 답답해? 무슨 일 있어?"

 "판교 가는 거 때문에. 가슴이 갑갑해. 애를 누가 봐주냐고. 회사는 이런 걱정 전혀 안해주니까. 그렇다고 애를 포항 아빠한테 맡기자니 엄마랑 떨어져 있으면 아이가 더 상처 받을 거 같고."

 "애는 좀 더 클 거고 가면 오히려 생활이 더 나아질 수도 있잖아."

 그렇다. 엄마 말이 맞지만 그때는 내 생활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하나도 가지지 못할 때였다. 주말에 먼 길을 오가며 체력을 길에 뿌릴 신랑을 생각하면 가엾기도 하고 과연 우리 부부 생활은 괜찮을까 걱정이 컸던 시기였다.

 "엄마, 결국 애 데리고 판교 가면 다 몫이야. 어린이집도 걱정이고."

 "애 좀 크고 학교 들어가면......"

 "엄마! 초등학교 들어가면 애들 학교가 12시반이면 끝나. 그때가 워킹맘들이 사표를 쓸까말까 고민이 가장 큰 시기야. 이게 대한민국 워킹맘의 현실이야."

 우리 둘 사이에는 꽤 긴 침묵이 흘렀고, 내 눈에서는 눈물도 흘렀다.




 회사에서도 어찌 됐든 아이가 있는 것은 내 개인 사정이다.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지 내 가정사를 걱정해주는 곳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회사뿐만이 아니다. 언니가 몸 담고 있는 곳에 여자분들도 꽤 많은 곳인데 그곳에서는 여자 선배가 더 무서울 때도 많다고 한다.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는 여자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언니에게 듣고 있자만 속이 갑갑해진다.

 "라떼는 말이야, 요즘처럼 휴직도 맘 놓고 못했어."

 "아이고, 아기 본다고 일찍 가는거야? 세상 많이 좋아졌다."


 하루는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좀 Dull해지셨어요."

 내가 가장 아끼는 여자 후배가 한 말이다. 그런 말을 듣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많이 무뎌지도 있다는 것 정도는. 아이를 낳기 전 날이 잔뜩 선 채로 일 할 때가 많았다. 예민하다는 뜻이기도 했고, 일에 그만큼 기민하고 예리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정신이 반쯤은 아이에게로 쏠려 있었고, 나머지의 반 정도는 회사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고, 나머지 반은 어디 갔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게 사라진 것 같았다. 친한 후배에게 내 속사정을 다 들키는 것 같아 조금은 부끄러웠다.

 아기가 어릴 때 엄마가 일에 집중하기는 정말 어렵다. 멀티 태스커가 되고 싶지 않아도 멀티 태스커가 되어야 하는 엄마의 운명을 나도 몰랐었고, 이 친구는 아직 알 수가 없으니까.

 

 오가며 만나는 아파트 엄마들은 시어머님이 아이를 봐주신다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좋겠다, 자기는. 어머님이 아이 봐주시고 집안일도 다 해주실 거 아냐."

 할 말은 많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웃을 뿐.


 의도치 않게 나도 다른 여자 동료의 적이 된 적도 있었다. 출산휴가 3개월만 쓰고 내가 복귀할 시점 즈음에 출산휴가에 들어가는 동료가 있었다. 그 동료의 출산 소식과 함께 육아휴직을 1년 쓴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런데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B과장은 3개월 출산 휴가만 쓰고 왔는데 그 친구도 출산휴가만 쓰고 나와서 돈 버는 게 낫지 않냐"는 말이 오갔다는 소식을 전해듣는 순간 나는 무너졌다. 어린 젖먹이를 떼놓고 나와야 하는 엄마의 마음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막상 그렇게 3개월 육아휴직을 쓰고 나오면 강하네, 독하네 이상한 말들을 내뱉어서 사람 신경 거슬리게 하던 사람들이 마땅히 양육자로서 누려야할 권리인 육아휴직을 쓴다는 사람이 나오니 말이 또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딜레마를 극복하게 해주는 나의 동지들은 결국 친애하는 적들이다.

 워킹맘으로서 외로운 억울함을 꾸역꾸역 이야기 해대는 나에게는 브레이크가 없음에도 묵묵히 들어주는 여자 후배들이 있다. 그들이 함께 억울해해주는 모습은 나에게 새로운 카타르시스다. 이해하기 힘든 세계임에도 경청의 자세를 보여주며 선배를 부끄럽게 만든다. 

 아파트에서 만난 엄마들은 시어머님이 계시는 편의만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시어머님과 함께 산다고 대단하다고 해준다. 그리고 일하고 아이까지 본다며 대단하다 이야기 해주면 그날 하루 열심히 살아갈 에너지 정도는 충전이 된다.

 그리고 미혼임에도 항상 나보다 내 맘을 더 깊게 헤아려주는 나의 친애하는 언니와 엄마. 그리고 아이를 봐주시며 뒷바라지 해주는 시어머님이 계시는 한 오늘 하루를 힘차게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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