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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kingmom B May 08. 2022

번외편 #3. 불효총량의 법칙

장성한 자녀를 뒀어도 육아가 끝나지 않은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

 2021년 11월 터질 것이 터졌다. 침잠의 그림자를 끝내 지우지 못하고 달고 다니던 나는 엉뚱하게도 회사 회의 시간에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회사에서 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퇴근을 하고도 클라이언트와 연락을 주고 받아야 하는 일의 특성상 힘든 것 또한 사실이었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버거워지니 10년 해온 회사일도 낯설어졌다. 핸드폰을 보는 나를 마뜩치 않게 보시는 시어머님의 시선도 부담스러워졌다. 버거울수록 부담스러울수록 열심히 했다. 그 열심의 결과가 더 깊은 우울일 줄은 몰랐다. 

  결국 한 달 동안 친정 엄마를 호출했다. 시어머님께도 한 달 휴가가 생긴 셈이었다. 엄마를 호출하기 전까지만해도 시어머님 말고 아이를 봐줄 사람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인지가 조금 더 빠른 아이는 사람을 가려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것은 마음에 쉽게 닿지 않는 일이었다. 내 필요에 의해 아이를 불편한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이 마음을 힘들게 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도 가장 힘들 때 엄마를 찾는 것처럼, 나도 엄마를 찾았을 뿐이라고. 아이가 이해해줄 것이라고. 그렇게 매일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엄마가 집에 와서 계신다고 나의 마음이 말끔히 정리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엄마가 계시는 집에 가는 것은 따뜻한 밥이 있고 대화의 시간이 있었다. 따뜻한 눈빛이 있고 격려가 있었다. 하하호호 웃지만 경계가 서려있는 아이와 엄마 사이의 외줄타기만 무시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집이었다. 

 이제까지 엄마 손을 빌리지 않고 얼마나 동동거리며 살아왔는가. 결혼 준비를 할 때도 엄마가 도와줄 수 있다는 상상초자 못해본 내가 아닌가. 갑자기 이제와서 엄마 손을 빌리는 스스로가 어색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언니의 말처럼 엄마 손을 빌리지 않았던 시간을 소급 적용한다 생각하고 미안함보다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


 그렇게 꿈같은 한 달이 지나가고 봄이 되어도 추운 겨울을 지나는 듯 했다. 아직도 터널 안에서 불안함에 몸을 떨고 있노라고 그제서야 엄마에게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한다름에 달려오셨다. 이렇게 시골에서 소환된 부모님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병원 복도에 부모님과 나란히 앉아 있노라니 웃음이 났다. 내 편이 있다는 안도의 웃음과 나이 마흔을 앞두고 교무실 복도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는 듯한 학부모의 모습을 환갑 지난 부모님에게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제서야 흰머리 성성한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늙으셨구나. 나 때문에 오늘은 더 늙으시겠구나.


 의사 선생님께서 엄마와 아빠와의 면담을 통해 내가 훨씬 더 섬세하고 치밀하고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셨다고 했다. 내 가면의 이면을 의사 선생님께서도 미쳐 다 보지 못하고 계셨다니 선생님 앞에서만큼은 솔직하자 했는데도 그것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후 엄마에게 불안함과 내적 고단함을 털어놓으며 마음의 무게를 조금씩 털고 있는 만큼 엄마의 마음의 무게가 무거워 지고 있는 것을 모른척 하고 있다. 스스로 효녀라고 자부했었는데 결국 이런 불효를 저지른다. 불효에도 총량의 법칙이 적용되나. 어릴 때 사고 치지 않고 스스로 잘 성장한 사람이 곧 마흔을 앞두고 부모님을 대동하고 정신의학과를 찾는 불효라니. 


 나는 감정을 참는 법을 배웠지, 세련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스스로 몹시 부끄러워 했다. 그리고 자책했다. 아이를 양육하는 시간동안 나의 부정적인 감정은 스스로에게 존중받지 못하여 더 소화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듯 감정도 흐르게 둬야 하는데 감정을 붙들고 늘어져 고달프게 산다. 그 감정 처리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아이에게 쓸 에너지조차 남기지 못한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아이가 쉴 곳이 없다. 그게 지금의 나의 현재 상태이다.


 아직도 부모님의 마음이 어떤지 정확하게 헤아리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 아이가 내 나이가 되어도 영영 모를지도 모르겠다. 아이 키우고 잘 사는가 싶었던 믿음직스럽던 딸의 우울증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으니까. 엄마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마음이 아프시다고 했다. 딸도 엄마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이 시간이 엄마에게 조금 덜 아픈 시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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