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으면 모유는 그냥 다 잘 나오는 줄 알았다. 가슴의 크기가 모유량과는 상관 없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비록 가슴이 작아도 내 아이 하나 먹일 모유 정도는 잘 나올 줄 알았다. 그래도 슬쩍 불안감이 몰려오곤 했다. 모유가 안나오면 어떻게 하지.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것인지 나의 모유는 회사에서 나오는 특별휴가만큼 귀하디 귀했다. 설상가상 나는 심한 산후우울증으로 먹는 것에 흥미를 잃었다. 아침을 먹으며 점심 먹을 생각에 행복했던, 식사 시간을 칼 같이 지켜내던 내가 먹는 일을 자주 놓치고 잊기 시작했다. 젖은 말라갔다. 나오지 않는 젖을 물리니 아이는 늘 울었다. 아이의 울음을 견디기 힘든 나는 결국 분유수유를 택했다. 다행히 아이는 뽀얗게 살이 오르고 잘 먹고 잘 잤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가 설사가 좀 잦아지고 피부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가 잘 놀았기 때문에 묽은 변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약한 아토피 증상도 어릴적 내가 그랬으니 그러려니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산바라지 하러 오신 시어머님의 얼굴은 자꾸 길어졌다. 어머님은 아이의 면역력을 걱정했다. 아이의 면역력은 곧 나의 모유수유를 뜻했다. 그러나 계속 빈젖을 아이에게 물릴 수는 없었다. 나는 어머님의 바람을 모른 척하고 분유수유를 했다. 분유수유는 의외의 장점이 있었다. 아빠도 수유가 가능하다는 점. 주말에만 오는 신랑에게 아이의 분유량과 분유텀은 통 입력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토요일 새벽 수유는 신랑이 하는 것으로 정했다. 하지만 그 새벽 수유마저도 신랑이 시작하지만 결국 아이는 내 품에서 분유를 먹였다는 것이 함정. 대부분의 수유는 내 차지가 되었다.
어느날 어머님께서 돼지족을 삶아 먹는게 어떠냐고 하셨다. 먹는 것을 잊은 내가 돼지족 삶은 물이 삼켜질 것 같지가 않아 거절했다. 예상보다 어머님은 나의 거절을 쉽게 받아들이셨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가오는 주말에 본가에 가신 어머님께서 전화가 왔다.
"우리 조카도 너랑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았는데 모유가 많이 나오나보더라. 모유를 좀 얻어 갈까?"
나의 아기는 졸지에 효녀 심청이 되었다. 젖동냥, 그 이상의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어머님도 아주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어보셨지만 코로나급 충격이었다. 그 말이 휩쓸고 지나간 뒤 나의 마음은 벌거벗은 채로 외롭게 내동댕이 처졌다. 그래도 정신을 가다듬었다.
"어머님, 죄송해요. 뭐 그렇게까지 모유를 먹이고 싶진 않아요. 제 모유면 모를까. 그냥 분유를 먹일게요."
이 일도 이렇게 쉽게 일단락 되었지만 다른 사람의 모유를 먹이자고 하는 어머님의 마음을 나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님에게 나는 그저 손주의 엄마일 뿐인가.
그리고 올 봄 따뜻한 날 나의 사랑스런 조카가 태어났다. 내 남동생의 아이였다. 출산예정일이 일주일 정도가 지나 유도분만을 하러 간다는 올케는 하루가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더니 아직도 산통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고 했다. 세상의 빛을 보느라 고생한 조카는 태변을 삼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올케는 불안함을 손톱에 고스란이 쏟고 있었다. 물어뜯긴 손톱은 그녀의 마음 같았다. 나는 올케와 조카의 마음 아픈 이야기를 시어머님께 들려드렸다.
"초유가 중요하니 초유를 잘 짜두라고 해라. 모유를 먹어야지 그래도."
어머님의 반응은 다시 또 모유로 귀결되었다. 조카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시기였다. 아이의 생사 앞에서도 모유가 더 중요할 일인가.
"어머님, 지금 애가 아파서 하루이틀 하고 있는데 제가 초유나 모유 이야기를 하면 저희 올케한테 시집살이 밖에 더 되겠어요? 저는 아무 말 못해요. 굳이 모유를 먹이라고 하고 싶지도 않구요. 올케 선택이죠."
약간의 체증이 내려간 듯 했다. 나에게 모유를 권했던 어머님께 차마 하지 못했던 비난을 그나마라도 돌려 드린 것 같아 후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음 한 켠 며느리에게 조카의 모유를 권유하던 어머님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당신에게 모유가 대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면 아이의 생사 앞에서도 모유 이야기를 꺼내실까. 어머님께는 모유는 아기의 생명 같은 것이었을까. 치열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지만 나의 이해력은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