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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kingmom B Dec 27. 2021

번외편 #1. 집안일

 하루는 나랑 같이 사는 남자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물었다. 망설임 없이 두 글자로 답했다.

 "휴식"

 그럼 본인이 마산 본가에 아기를 데리고 갈테니 주말에 쉬라는 것이었다. 아기의 기침과 가래로 격동의 일주일을 보냈기에 모자란 잠을 보충하려고 나도 그러자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작정이었다.

 

 드디어 다가온 금요일. 퇴근 후 분주하게 아기 짐을 챙기고 남자에게 아기를 맡겼다. 처음으로 둘이서 차로 한 시간 거리를 이동하는 탓에 덩달아 나도 긴장이 되었다. 아이가 울거나 떼를 쓰면 어쩌지. 그리고 나혼자 이렇게 쉬어도 되는건가. 이유 모를 죄책감. 빈집에서 느끼는 공허함. 혼자 있음에 주어지는 홀가분함. 약간의 심심함. 여러 개의 감정들이 마음을 뒤섞어 놓았다.


 이윽고 한시간이 지났다. 본가에 잘 도착했다는 신랑의 메시지를 본 순간, 갑자기 입맛이 돌았다. 아껴둔 떡볶이 밀키트를 냉장고에서 꺼내고 가스불을 켰다. 육수를 냄비에 붓는다. 끓으면 소스와 떡, 어묵을 넣고 6분 30초 끓이면 완성이 되는 간단한 밀키트. 좋은 레스토랑을 가서 스테이크를 써는 것보다 혼자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며 떡볶이를 먹는 행복. 엄마들이라면 한번쯤 가져 보고 싶은 시간.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의 쉼은 여기까지가 마지막이었다.




 떡볶이를 먹은 후 설거지가 시작되었다. 떡볶이를 먹은 그릇, 수저, 프라이팬을 닦는 것을 시작으로 지난번 만족스럽게 닦이지 않은 스탠팬과 냄비를 꺼내서 오염을 제거하기 시작하는 설거지옥이 시작되었다. 철수세미로 온몸의 힘을 손으로 집중시켜 더러운 부분을 닦아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후드가 보였다. 기름 때에 찌든 후드를 구연산과 베이킹 소다를 넣은 뜨거운 물에 불려 닦아냈다. 물 빠진 그릇들을 닦아 찬장에 넣다보니 커피 포트가 눈이 띄었다. 하얗게 낀 물 때. 구연산을 넣어 화라락 끓여내고 물을 버렸다. 다시 수돗물을 받아 끓이고 버리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금요일 노동은 끝이 났다.


 다음 날이 밝자마자 빨래를 필두로 하여 나의 집안일은 계속 되었다. 아기 어린이집 낮잠 이불을 세탁기에 세제를 넣고 돌린다. 다음에 돌릴 빨래들을 분리해둔다. 갑자기 베란다의 먼지가 눈에 들어온다. 청소기를 들고와서 베란타 청소를 한다. 이왕 청소기를 든 김에 온 집을 청소하고자 마음 먹는다. 창문을 모두 열고 정전기 청소포로 높은 곳의 먼지를 먼저 닦아낸다. 그리고 바닥은 청소기를 돌린다. 건식으로 쓰는 안방 화장실도 청소기가 한 번 다녀간다. 안방 화장실도 청소가 끝났으니 거실 화장실 물청소를 해야한다. 선반에 있는 모든 물건을 거실로 옮긴다. 욕실 화장실 청소도 똑같이 위에서 아래로 진행된다. 선반에 먼저 거품 타입의 세정제를 뿌려 때를 불린다. 그리고 세면대, 욕조와 변기에 차례로 세제를 분사한다. 화장실 벽면과 타일 바닥까지, 특히 줄눈에 더 열심히 거품을 뿌린다. 거품을 뿌린 순서대로 닦아낸다. 특히 묶은 먼지가 많이 낀 바닥 타일 준눈은 칫솔로 닦아낸다. 어느새 빨래가 다 돌아갔다. 마무리된 빨래는 건조기에 집어 넣고 남은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잠시 휴식. 주린 배에 곡기를 불어넣는다. 다시 힘이 조금 난다. 다시 설거지를 시작으로 주방일이 시작된다. 설거지를 마치고 개수대의 음식물 쓰레기를 비워낸다. 그릇들을 꺼내어 정리한다. 차곡차곡 예쁘게 쌓아둔다. 컵도 보기 좋게 진열한다. 반찬통도 오와 열을 맞춰 정리한다. 아이의 간식과 통조림 캔, 라면 등도 가지런히 정리해둔다. 건조기에 넣은 아이 낮잠 이불을 꺼내 개어놓는다. 건조기에 먼지함에 먼지를 제거 후 다시 건조기에 돌릴 빨래들을 분류해 넣는다. 일부 빨래는 건조기에 넣으면 망가지기 때문에 탈탈 털어서 빨래 건조대에 널어둔다. 이불 빨래를 해야하나 생각하니 갑자기 하품이 쏟아진다. 이불 빨래는 참아야겠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간다. 더 이상은 익숙하지 않은 텅 빈 시간과 공간의 어색함을 줄줄이 사탕식 노동으로 채운 하루.


 한 번의 집안일은 나비효과처럼 폭풍 같은 집안일을 불러온다. 역시 집안일은 시작이 위험하다. 시작을 해도 끝을 볼 수 없다. 그리고 문제는 그렇게 닦아내고 정리를 해도 별 표시도 나지 않는다. 이럴 바에는 그냥 쉴 걸. 결국 쉬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며 토요일 문을 조용히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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