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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kingmom B Dec 21. 2021

임신 #2. 가정편 : 못 이룰 두번째 효도

워킹맘의 조금 불편한 이야기

 난 좀 별난 딸이긴 했지만 착한 딸로 컸다고 자평한다. 숙제도 알아서 잘하고 동생 숙제까지 봐주는 착한 딸이었다. 문제집을 사주면 미루는 법 없이 이틀만에 한달치를 풀어 엄마한테 혼나기도 했다. 혼날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적도 남부럽지 않게 잘 받아 부모님께서 공부하라, 더 좋은 성적을 받아오라 잔소리를 하시는 걸 들어본 적도 없다. 다행히 내가 잘못해서 부모님이 경찰서나 학교에 불려온 적도 없었다. 나름 괜찮은 대학을 나와 취업도 남부럽지 않게 했다.

  그런데도 그 누구보다 덤덤했던 우리 부모님. 속으로는 좋으셨겠지만 별난 딸이 또 잘난척을 할까 싶어 크게 칭찬해주지 않으셨다. 그래서일까. 난 늘 스스로를 부족한 딸이라 여겼다. 더 공부를 잘해서 특목고를 갔으면 어땠을까, 대학도 SKY 정도 나오면 어땠을까. 부모님의 기대에 조금 더 만족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 멀고먼 효도의 길. 부모님의 강요라기 보다는 스스로 만들어 낸 자책이었다. 어쩌면 부모님은 내가 그 무엇이 되든 받아주실 준비가 되어 있는데 내가 그저 특별한 무언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우리 부모님은 경북 북부 특유의 유교 사상에도 불구하고 남녀 차별 없이 우리 삼남매를 키워내셨다. 그래도

486세대 특유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계셨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가정을 꾸려야 당신들 숙제가 끝난다는 것. 나는 늘 그런 부모님을 비난하곤 했다. 결혼은 선택이고 자식 또한 선택이라고.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기도 했지만 그렇게 말해왔던 건 결혼에 자신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게 많고 하고 싶은 건 꼭 해야하는 성격 탓에 스스로가 결혼에 맞는 사람인가 늘 의문을 가지던 찰나 정신 없는 남자 하나가 나타나 나랑 결혼을 하자고 했다. 결혼의 인연이 어떤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지만 나는 그 남자 앞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 못난 모습을 보여도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그 사람이 좋았다.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혼 자체에 대한 많은 물음표들은 계속 쌓여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가 프로포즈를 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 하고 싶어하는 일 많지만 잠깐 미뤄두고 나랑 결혼해줄래?"

 내심 좋았지만 두려웠다. 과연 내가 결혼해서 잘 살 수 있을까,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을까. 나는 그 남자에게 물었다.

 "나랑 잘 살 수 있을 거 같아? 어떻게 확신해?"

 "자기랑은 잘 살 수 있어. 나는 만프로 확신해."

 나의 조금 부족한 확신에 넘치는 그의 확신을 더해 결혼을 했다.


 결혼 생활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만족스러웠다. 간섭하는 시댁도 아니었고 유별난 친정도 아니었기에 신랑과 둘이서 넘치게 행복했다. 2세에 대한 걱정이 비집고 들어오기 전까지 말이다. 결혼 3년차가 되자 주변에서 몰려오는 아이의 압박. 나는 과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고 과장 승진을 핑계로 임신을 1년 더 미뤘다. 과장 승진을 하니 더 미룰 핑계가 사라졌고 결국 나는 임신에 순순히 협조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주변만큼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엄마를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줄여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을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홍콩 여행을 가려던 날 아침 뭔가 그냥 느낌이 이상했다.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었는데 그냥 느낌에 임신인 것 같았다. 엄마의 직감이란 이런 것인가.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두 줄을 확인하고 여행길을 나섰다. 나와 같이 사는 남자는 내가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큰 일이 생길 것처럼 여행 내내 날 보살폈다. 그리고 돌아오는 주말에 바로 병원을 가서 검사를 했다. 초음파로 아기집 정도가 확인되었다. 임신 6주였다.


 그리고 얼마 후 친정 부모님께서 집으로 놀러 오셨다. 신랑과 나는 몰래 상자에 두 줄이 선명한 임신테스트기와 초음파 사진을 넣어 서프라이즈를 해드렸다. 상자를 열고 얼마간 얼떨떨하게 쳐다보던 엄마 아빠는 임신을 눈치 채시고 세상에서 가장 기쁜 얼굴을 하고 계셨다. 내가 대학 합격을 해도, 취직을 해도, 승진을 해도 기쁜 내색을 크게 하지 않으셨던 엄마는 좋아서 펄쩍 뛰셨다. 엄마의 발이 땅에서 한 1m 정도는 떨어진 것 같았다. 이제까지 태어나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노력으로 어려운 임신에 두 분이 이렇게 기뻐하시는 걸 보니 허무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9달 정도가 흐른 후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어떤 아이보다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키우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엄마로서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출산 휴가를 쓰고 바로 복귀한 탓이었을까, 신랑이 멀리 있는 탓이었을까. 하나의 원인으로 귀결되지 않은 나의 우울증은 자꾸 깊어갔다. 하루하루 버티는 날이고 쳐내는 날이다. 나는 그저 오늘만 살아도 버거운 사람이 되었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두번째 효도는 힘들 것 같다.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책임질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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