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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kingmom B Sep 21. 2022

출근/회사 #7. 엄마의 회식

 엄마가 되고 가장 달라지는 것은 시간과 이동의 자유를 잃는다는 점이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시간을 사용할 수 없을 뿐더러, 물리적 이동도 쉽지 않다. 어렵게 이야기 했지만 쉽게 말하면 아이가 없는 곳에 엄마가 가기도, 오랜 시간 머무르기 힘들다는 뜻이다. 회식도, 동호회 활동도, 운동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아이가 잘 때 홈트 하면 된다는 딴지는 사양한다. 우리 아이처럼 늦게 자는 아이를 둔 엄마에게 홈트는 요원한 이야기다.) 테트리스처럼 시간을 잘 짜맞추다보면 일주일에 이 중 하나쯤은 할수가 있다. 물론 그 중 우선순위를 꼽자면 직장인에게는 당연히 '회식'이다.


 회사 업무 특성상 내부 회식에 참석하는 것보다는 회사 거래처 접대 회식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거래처 접대 회식에 참여하다보면 다른 개인적인 저녁 모임은 가지기 어렵다. 회사 전적으로 인해 아웃사이더가 된 나는 있으나 없으나 티가 나지도 않는 존재다. 회사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거기에 아이를 낳고 나서 급격히 나빠진 기억력으로 인해 안면 인식이 어려운건지 사람들 외우기가 힘들어져 인사를 나눠도 금방 잊어버리곤 한다. 사람은 시간을 보내야 친목을 쌓기 마련인데 시간을 보낼 수 없으니 아이와의 관계가 돈독해질수록 사회적 친목과는 멀어지게 된다. 그저 아이를 보거나 일이나 하고 돈을 벌 뿐.


 엄마의 회식은 엄마 본인보다도 주변 사람이 더 눈치를 본다. 날짜를 정할 때부터 팀장님의 눈빛의 종착역은 팀내 '유일한 아줌마'인 나다. 다들 내 입에서 YES가 나오길 간절히 기다리는 눈빛을 바라 볼 때면 나의 위치는 애 딸린 아줌마 포지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어머님께 여쭤볼게요."

 평일에는 시어머님과 함께 지내고 있는 나로서는 시어머님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아이가 아프거나, 어머님 컨디션이 좋아보이시지 않거나, 공적이든 사적이든 내 외출이 잦았다면 회식을 참여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 룰이다.


 그 모든 생각을 뒤로 하고 회식 자리에 참여하면 늘 돌아오는 단골질문.

 "애는 누가 봐주세요?"

 "시어머님이요."

 다들 뜨악한다. 나보다 시어머님을 더 신경쓰는 눈치다. 사람들의 눈치의 눈치를 보다가 1차가 끝나면 자리를 떠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된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2차 가보자, 마음을 먹는다.


 "김과장, 집에 안 가? 애보러 가야지."

 눈치 없는 모 부장은 꼭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알고 있다. 그냥 하는 이야기라는 걸. 평소 1차만 마치면 서둘러 택시를 잡아 타고 집으로 가니 그런 질문도 당연하다. 그런데 왜 뒷맛이 개운하지 않을까. 오가는 술잔에 알콜쓰레기인 나는 방황하다가 다들 바람 쐬고 자리를 비우고 시들시들해질 무렵 부랴부랴 나와 택시를 잡아 타고 집으로 간다. 9시반인데 너무 늦었나.

 가는 택시 안에서 스쳐지나가는 취객들을 바라본다. 다음 행선지를 정하는 모양이다. 엄마가 돌아갈 곳은 유일하게 아이가 있는 집이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이 난다. 언제쯤 시간 따위 신경쓰지 않고 3차를 갈 수 있는 날이 내게 올까. 과연 그런 날이 오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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