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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kingmom B Nov 08. 2022

출근/회사 #8. 엄마의 책과 글


 3개월 출산휴가만 끝내고 육아휴직을 쓰지 않은 채로 회사에 복귀했다. 아이의 주양육자는 자연스럽게 시어머님이 되셨다. 나의 훈육 방식은 적절한 통제였고, 어머님의 방식은 대부분을 허용하는 무한 사랑이었다. 나는 아이의 물놀이를 일정 시간만 하는 것으로 제한했다면, 어머님은 밤 11시에도 아이가 원한다면 물놀이를 하게 해주시는 분이시다. 아이는 당연히 허용 범위가 넓은 할머니를 더 좋아한다. 아이는 날 따랐지만 어머님을 더 많이 따랐고 종종 나를 거부하기도 했다. '엄마 싫어', '엄마 저리 가'라는 말은 죄책감 깊은 내게 마음의 상처였다. 아이의 말을 아이의 말로 받지 못하고 상처 받는 날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아이는 집에 가면 잠깐 밥을 먹는 것조차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놀아달라는 아이를 매몰차게 거부할 수 없어 아이와 놀면서 저녁밥을 우겨 넣다보면 체하기 일쑤였다. 제대로 먹지 못해 임신 전보다 체중이 덜 나갔다. 가끔 유튜브를 보며 쉬는 아이 덕분에 편히 먹는 저녁 시간은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또 아이는 새벽에 잘 깼다. 수면리듬이 깨진 나는 잠을 설쳤고, 불면의 밤은 길고 길었다. 지친 하루의 끝은 언제쯤 나는 걸까. 머릿 속 우주에서 내 발은 어느 곳에도 닿지 못하는 듯 했다. 주말이면 쏟아지는 잠을 자고 싶었지만 놀아 달라고 매달리는 아이 때문에 마음껏 자지 못했다.

 밥도, 잠도 허락되지 않은 삶에서 자기 조절감을 찾을 수 없었다. 기본적 욕구도 채울 수 없는데, 회사와 집만 오가며 내가 좋아서 할 수 있는 일과 욕구는 무시당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몰랐다. 하고 싶은 일을 참는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엄마의 삶이 커질수록 일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설거지, 청소 같은 간단한 집안일이 힘들어졌다. 좋아하는 요리가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이 되었다. 아이가 조금만 짜증을 부려도, 신랑이 조금만 화를 내도 성마른 마음에는 불이 났다. 그 불은 항상 꺼지지 않았고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생겨나는대로 다 태워버렸다. 그럴 때마다 다시 원래의 일상을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내가 앞으로도 이런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자동적 사고가 발동해서 부정적인 마음은 한꺼번에 시끄러운 사이렌처럼 뇌에 경고를 날리고 온 마음을 집어 삼켰다.

 

 내 속에 켜진 비상등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고 결국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내 속의 가득찬 감정을 하나씩 처리하는 일이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하루를 감정과 싸워 에너지를 탕진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아이가 쉴 곳은 없었다. 아이의 에너지를 감당할 힘이 없어지자 아이를 보는 일이 두려워졌다. 엄마가 아이 보는 일을 두려워한다는 죄책감은 늘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처럼 뇌 속을 둥둥 떠다녔다.


 결국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엄마'로서 충실히 역할을 해오던 내가 갑자기 손을 조금씩 놓고 미루기 시작했다. 늘 성실하게 준비하던 아이의 음식을 퐁당퐁당 준비했다. 늘 칼 같던 정리도 멈추었다. 가득찬 설거지통도 모른척 했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시어머님은 언성을 높였고 신랑은 화를 냈다. 시어머님은 너밖에 모르냐는 말을 하셨고 신랑은 이기적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말에 몸서리 치게 아팠지만 엄마라는 프레임에서 한발자국도 걸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이 더 괴로웠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이미 엄마로서 태어난 듯했다. 그러기엔 엄마가 너무 낯설었고 힘들었다.


그럴수록 책을 더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길이 보이는 듯했다. '엄마'라는 좁은 프레임에 갖힌 나는 내가 스스로 구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 시어머님과 신랑이 요구하는 나의 모습은 완벽한 워킹맘이지만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 그렇다면 누구의 손을 빌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나에게도 나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너밖에 모른다, 이기적이라는 말도 때로는 모른척 해야한다는 것. 그런 내 생각이 다를 순 있지만 틀리진 않았다는 것. 모든 사람을 설득하며 살 수는 없다는 것.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사유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


 엄마는 책에서 공간의 제약없이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19호실을 찾는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는 여인이 되어 보기도 하고, 돈 많고 화려한 개츠비의 생활도 경험해보며, 첫사랑에 가슴 두근거리는 소년도 되어본다. 이렇게라도 다른 세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위안은 생각보다 포근하다.


 흔들릴때마다 책을 찾는다. 가슴에 와닿는 문구를 몇번을 다시 읽고 필사를 해보기도 한다. 종종 내친김에 이렇게 글도 몇 자 적는다. 오늘의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래의 내가 이불킥을 할지라도 엄마로서의 기록을 글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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