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유명 연예인의 소장 책으로 소개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책이 있다. ‘삶은 고통’이라고 말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대한 책이었다. 대중들은 삶이 고통이라는 말에 왜 그렇게도 열광했을까. 각종 언론매체와 SNS에서는 소유와 성공한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를 연이어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불편하고 불안한 인생을 사는 자신과 그들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낙담한다. 또 다른 이들은 소유하고 성공하면 행복할 것이란 기대를 안고 애를 쓰며 살아가지만 도달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좌절하기도 한다. 나만 불행하고 힘든 것 같아 억울하고 외로운데 쇼펜하우어가 “삶은 원래 고통이고, 누구나 힘들어.”라고 말해준 것이다.
완벽하지 못한 나, 결핍된 환경, 알 수 없는 미래로 인해 인생은 늘 빈틈이 생긴다. 그 빈틈을 보고 있노라면 고통스럽다. 고통을 마주할 때 어떤 이들은 고통을 승화시켜 성장한다. 누군가는 고통을 인정하며 그럭저럭 고통과 함께 살아간다. 나는 어떠했을까. 한때는 고통을 무시하고 억누른 탓에 두통약을 달고 살았으며,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하며 침몰하기도 했다. 요즘은 빈틈을 보면서 질문한다. 빈틈 때문에 힘든 것인가, 아니면 빈틈을 고통이라고 바라보는 내 마음 때문에 힘든 것인가.
학생들을 상담하면서 깨달은 것은 자신의 고통을 수용하고 적절한 의미를 부여하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좀 더 빨리 안정을 찾는다는 것이다. 1년 전 상담했던 학생이 생각났다. 친구들과의 즐거운 학교생활을 꿈꾸며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적응이 어려웠던 학생이다. 한참 이야기하던 중 이런 말을 했다. “전학을 신청했는데 아직도 대기예요. 전학 못 가면 할 수 없는 거죠. 올해는 그냥 병 조퇴 내고 체험학습 쓰려고요. 늘 좋은 친구를 만날 순 없으니까.” 힘든 것은 힘든 것이고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인 학생은 다행히 2학년 생활에 만족해하고 있다.
빅터 프랭클은 고통 가운데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가치,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은 상황과 환경에 덜 흔들리게 된다. 책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스티븐 C 헤이즈)’ 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삶에서 마주하는 고통과 어려움들을 밀어내고 피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고통과 괴로움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나에게 중요한 가치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고통을 인정한다는 것은 고통을 안전하고 적극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수용(기꺼이 경험하기)’이라고 하는데 이는 고통스러운 상황이나 감정을 부풀리거나 억누르는 것, 감정을 통제하는 것, 색안경을 끼고 판단하는 것을 멈추고 현재의 상황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바보 같아.”라는 판단적인 생각 대신 ‘나는 나를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로 말할 때 우리는 실제와 내 생각이 다름을 발견하게 된다.
누구는 물을 것이다. “고통을 어떻게 기꺼이 안을 수 있죠. 너무 아프잖아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손가락이 좀 아프다 하여 잘라내지 않듯 우리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감정들도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살펴보고 돌봐야 하는 것이라고, 아픈 손가락이 나의 일부이듯 고통스러운 감정 역시 '나'의 일부라고.
그렇게 고통을 수용한 후에는 의미 있는 삶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내 삶에서 중요한 가치나 의미를 찾는 것은 고통이 내 삶과 인생을 망가트려서는 안 되고 그렇게 두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포함한다. 지금까지는 삶의 에너지를 고통을 없애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나에게 중요한 가치에 집중할 것이라고 선택할 때 나의 존재와 가치는 ’고통이 있다, 없다‘로 결정되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나의 1호 애제자는 작년에 졸업을 했다. 자살시도와 자해를 반복했던 이 학생과 3년 동안 정신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다루었다. 정신과 의사는 학생에게 짧은 손가락으로 조금 불편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짧은 손가락이 너무 싫어서 죽으려 했던 학생에게 중요한 가치와 삶의 의미를 찾는 것과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말하는 과정이 너무 길었지만 학생은 졸업할 때 나를 꼭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우울하다고 느끼고 있지만 가치로운 삶을 살 거에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삶은 고통‘이다. 어떤 고통은 내 선택과 의지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렇기에 더 아프고 억울하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을 바라볼 것인지, 의미 있는 것을 바라볼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이 쉽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통을 없애는 것에 나의 에너지를 쓸 것인지, 고통을 안고 의미 있는 것에 에너지를 쓸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