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끌어안기 2 - 감정에 머무르기

by Little Tree

“하. 너무 힘들어요.”

8시 35분, 물 먹은 빨래처럼 축 늘어진 팔로 힘겹게 위클래스 문을 연 A는 늘 앉던 의자에 철푸덕 몸을 맡겼다.

매일 아침을 한숨으로 맞이하는 A의 삶은 참 고단하다. 부푼 꿈을 안고 특성화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기저질환으로 인해 학교로부터 전학을 권고받았다. 그렇게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고 고3이 된 지금까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채, 아니 스스로 학교에 적응하기를 거부한 채 버티기를 하고 있다.


“아이들이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해요.” , “오늘은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했어요.”

이 말을 무표정한 얼굴로 덤덤하게 말하는 A에게 나는 “그래도 잘 버텼네. 졸업은 해야지. 친구한테 먼저 뭐라고 말 걸어볼까? 친구들이 너를 미워하는 것은 아닐 거야.”라는 같잖은 위로를 보냈다. A는 그런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A의 보호자와 통화를 했다. 학교에서 적응 못하는 것도, 친구에게 말을 걸지 못하는 것도, 미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 A탓이라 말하는 엄마를 보며 나도 A에게는 엄마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미 그룹이 형성된 친구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 어려워서 또래를 미워하기로 결정했고, 학생들은 시험기간이라고 공부에 집중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은 하찮아보이는 A에게 학교는 고통 그 자체였다. 그런데 엄마도 나도, 학교 선생님도 A의 고통(감정)은 무시한 채 노력해보자는 말만 되풀이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어김없이 상담실 문이 열렸고 “너무 힘들어요. 학교는 왜 다녀야 할까요.”라고 담담히 말하는 A에게 “그러니까, 진짜 학교는 왜 있어 가지고 A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 학교 때려칠까?” 라고 힘있게 말했다. 그 말 때문이었을까. A는 무표정에서 화난 표정으로 바뀌었고, 자신의 자살 시도마저 덤덤하게 말하던 목소리는 점차 격앙되었다. A의 마음은 이랬구나. 화가 났던 거였구나. 화로 가득 차 있는 마음에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를 운운했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섣부른 긍정화와 의미 찾기는 타인의 입을 다물게 한다. 자신의 감정이 무시당했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는 힘든 상황에서의 좋은 면과 의미를 찾아주려고 한다. 그러나 상대는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감정)이 무시당하고, 자신의 존재까지도 무시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감정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정혜신은 ‘당신이 옳다’에서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 위치한 곳은 내 감정, 내 느낌이며, 내 고통에 진심으로 주목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치유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상담자로서, 어른으로서 나는 A의 고통에 먼저 집중하고 머물렀어야 했다.


이후에도 나는 A가 느끼는 고통과 분노에 한참을 머물러 주었다. 그 고통에서 빨리 꺼내주고 싶은 마음과 이 정도면 되었겠지 라는 나만의 기준은 버렸다. 학교를 폭파시키고 싶은 A의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위클래스에서 몇 시간 이야기하는 것으로 가라앉기에 학교는 A에게 너무 거대한 고통의 자리였다. 그것을 인정하고 감정에 머물러주기를 하다 보면 A는 조금씩 차분해진다. 그리고 난 후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된다. “자퇴할까?” “엄마가 안 된대요.” “너는 어때?” “검정고시 볼 자신이 없어요.” “그래. 그럼 졸업장을 따야겠네.” “네.” “그래, 우리 3학년 때까지 잘 버텨보자. 졸업장 따야지.” “그래야죠.”


A와 나는 매일 아침 학교를 다녀야 하는 현실에 대해 욕을 했다. 그리고 교실로 올라가기 전 ‘그래도 졸업장은 따야죠.’로 결론을 냈다.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대화를 반복했다. 지겨울 때도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학교 다니기 싫고, 자퇴하고 싶다는 학생에게 졸업장 따야지라는 말을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지금 나는 A에게 ‘졸업장은 따야지.’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전문대학교와 취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연애 이야기,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이야기를 한다. 언제부터였을까. A가 고통을 안고 학교에 있기를 택한 것이.


A는 고통 속에서도 불편함을 견디며 ‘졸업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마주한 현실이 부대끼고 아프고 외롭고 억울했지만 그것을 견뎌야 했던 이유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A의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주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면에 힘이 있는 사람들은 이 과정이 자연스러울테지만 이제 막 힘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의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그 사람이 붙들어야 할 중심과 목표를 잊지 않도록 반복적으로 말해주어야 하는 지지자가 ‘나’와 ‘우리’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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