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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쿠스 Jun 22. 2024

10년 만에 다시 대학 간 이유

벙어리 탈출이 시급하다.

한국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이 많기도 하고,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어 보인다. 미드, 영화, 책, 유튜브, 영어로 된 미디어는 차고 넘치기에 배우려고 마음을 먹으면 배울 수 있고 실제로 말은 못 할지언정 알아듣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파라과이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네에 있는 Universidad Americana에 등록하려고 갔을 때, 나는 누군가 영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이름에 아메리카가 들어가서 은연중 생각한 것일까.


막상 가서 등록하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등록금만 결재하고 무슨 과목을 들을 건지 고르면 되는 것인데 1학년 1학기 그래픽 디자인을 선택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그나마 아는 과고, 언어를 덜 이해해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등록금은 1년에 한국돈으로 10만 원 남짓. 한 학기 수업료는 50만 원. 과외나 학원보다 훨씬 더렴하다고 생각하며 좋아했다. 다섯 과목을 선택하고 시간표를 프린트하여 차로 4분 거리의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2017년 3월, 나는 파라과이에 도착한 지 5개월째였다. 아직도 한 번도 과외도 어떠한 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집안에 우환이 있기 때문에 '나 언어나 배울래' 하면서 철없이 굴기가 눈치 보인다.


어느 날 어머니 사무실에 갔는데,  - 위층이 살림집이고 아래층이 사무실이기에 - 어머니는 왔다 갔다 일도 하시고 요리고 하시며 바쁘셨다.

"어머니 뭐 좀 도와드릴까요?" 묻자

"그래줄래? 그럼 전화 오면 전화.. 아참 너 아직 말을 못 하지! 내 정신 좀 봐라. 괜찮아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앉아만 있어."


나는 오랜만에 말도 못 하고 가마니처럼 앉아만 있게 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이태리에 살 때는 가기 전에 학교에서 수강을 1학기를 해서 기본 의사소통이 되었고, 엄마가 방학 때 학원을 등록해 주셔서 말도 조금 하는 채로 갔기 때문에 괜찮았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이것저것 많은데 스인어가 안되니까 어머니께, 혹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질 못했다. 도움도 못주고, 운전도 할 수 없으니 커피 한잔을 마실래도 누구한테 부탁을 해야 된다. 게다가 말을 못 해서 커피를 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웃지 못할 답답함이 나를 짓눌러왔다.


나는 몇 주 지나자 과외를 받기에는 돈이 들고, 학원을 가자니 택시도 못 타고 어딜 가려면 누구 신세를 져야 하니 가장 쉬운 온라인으로 앱을 다운로드하여서 공부하기로 했는데, 아! 나 신용카드도 이제 없다. 어머니 신용카드를 써야 한다. 모든 것을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 이민 초기의 나는 신세 지는 것도, 아쉬운 소리 하는 것도 싫고 부끄러웠지만 내가 살기 위해선 일단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답답함과 말 못 하는 상황을, 어떤 방법을 써서라라도 이겨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내 다리만 있으면 갈 수 있는 걸어서 10분 거리의 동네 대학교에 등록했다.

말이 안 통하지만 강의실 번호만 알면 들어가서 그냥 주구장장 앉아있으면 뭐라도 들리겠지, 생각이었다. 그리고 집에만 박혀 청소랑 빨래만 하는 것보다 어디라도 나가서 사람 구경이 하고 싶었다. 이제 앱으로 공부한 지 3개월. 파라과이 대학은 어떨까, 막연히 생각하면서 다음 주 월요일 첫 수업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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